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당신은 나의 슈퍼맨

슬기엄마 2012. 4. 26. 00:31

 

3년전 4기 유방암 폐전이를 진단받았다.

나는 그녀의 진단 순간을 함께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최초 장면을 모른다.  나는 그녀가 3주에 한번씩 허셉틴을 맞으러 오는 그 평온한 순간에 그녀를 진료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 마음의 동요를 느낄 수 없다. 흉부 CT를 찍어보면 변화없는 폐 병변들이 그대로 자리잡고 있다. 처음 CT 에서보다는 많이 좋아졌다. 그렇지만 아직 병이 있는 건 확실하다. 그러나 증상이 없다. 평소 CT 결과를 묻지 않는 그녀가 오늘 나에게 묻는다.

 

선생님, 저 직장생활 다시 해도 될까요?

 

그럼요. 직장잡기가 어려워서 그렇지기회가 되면 해보세요.

 

그래도 되겠죠?

 

어렵게 직장 생활을 시작했는데 다시 재발되면 어떻게 하죠?

그 말을 물어보고 싶었을텐데 우린 그런 말 하지 않았다.

 

직장 구하고 월급 받으면 커피 한잔 사주세요.

 

그렇게 대답했다.

 

 

1년전 4기 유방암 폐전이 간전이 뼈전이를 진단받았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등이 아파서 제대로 눕지도 못한 채 병원에 왔다.

외래를 보고 당일 바로 입원을 시켰다. 상태가 너무 나빠서.

그녀는 산소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모르핀으로 통증을 조절해야 했다.

서둘러 조직검사를 하고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유치원생, 초등학생 두 아이의 엄마.

원래 얼굴이 하앴는지, 겁에 질려 하얗게 된건지 그녀의 얼굴을 너무 하얗다.

그만큼 하얗게 질린 남편의 얼굴.

그들은 나에게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간전이가 심해서 항암치료를 하다가 간세포가 많이 깨지면 항암치료를 받다가 사망할 수도 있을 거라고 경고하였다. 그들은 나의 이런 설명에 아무말도 못하고 그냥 겁에 질려 항암치료를 시작하였다. 항암제를 맞는 날은 하루지만 퇴원시키지 않았다. 집에 갔다가 간 때문에 갑자기 상태가 나빠질까봐.

그녀는 그럭저럭 몸을 움직이고 산소없이도 숨을 쉴 수 있는 정도가 되어 겨우 퇴원하였다.

괜찮은 임상연구도 있었지만 그녀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임상연구에 참여하기 어려웠다. 표준약제로 치료하였다. 세번의 항암치료 후 찍은 CT, 많이 좋아졌다. 나는 복직해 보시라고 권했다. 사무직 일이라 몸이 많이 힘들지 않으니 다시 도전해보라고 하였다. 회사에서 그녀의 몸 상태를 고려해 일도 조금 편한 곳으로 바꾸어주었다. 그녀는 매일 출근하기 전에 애들을 깨워서 둘째는 유치원 버스 태워 보내고 직장 월차를 내서 첫째 아이 학교 학부모 모임도 나갔다. 그녀는 그렇게 주어진 일상이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하였다.

치료 1년이 넘어간 그녀. 내가 만든 1년짜리 항암제 수첩을 다 써가지고 온 최초의 환자이다. 나는 그 수첩을 회수하고 새 수첩을 주었다. 그녀는 지금도 매일매일 자신에게 일어난 소소한 일상, 직장에서 상사에게 받는 스트레스, 남편과 싸운 이야기, 감기 걸려서 고생한 이야기, 집안 문제, 돈 문제 그런 걸 깨알같이 적어와서 진료실에 들어오자마자 나에게 제출한다.

오랜만에 오늘 그녀의 유방을 진찰했다.

 

유방 상태가 좋네요.

 

그녀와 나는 소리높여 웃는다. 세상에 왠 엽기대화인가!

 

4기지만 그렇게 씩씩하게 마음 단속하고 일상을 살아가는 그녀들

그들은 나의 슈퍼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