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돌아가신 환자의 딸이 조금 전에 나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 엄마, 왜 돌아가신 걸까요? 직접 사인이 뭐에요?
난
신장 수치가 정상이 아닌 환자
심장 기능이 약한 환자
75세 이상의 노인으로 항암치료를 하고 있는 환자
갑작스럽게 안 좋아질 가능성이 있는 환자에게 내 명함을 준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을 때 전화하시라고.
외래 전화번호, 종양내과 코디네이터 등 통화를 할 수 있는 전화번호가 있지만
이들과 통화가 연결되지 않는 오밤중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시면 전화하시라고 명함을 드린다.
환자들은 주치의 명함을 받는 것 자체로 안도감을 많이 갖는 것 같다.
나에게 실재 전화하시는 분은 많지 않다.
사실 환자에게 명함을 주는 건 만만치 않은 부담이 있는 행위다.
환자는 언제든 의사가 자신의 상태를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차트를 보면서 직접 환자를 눈앞에 두고 진료하지 않으면
긴장감도 떨어지고 환자 이름만 듣고서는 누군지 기억이 잘 안날 때도 많다.
(그래서 센스있는 환자들은 블로그에 글을 올릴 때도 우리 병원 ID를 같이 적어 보내다. 나더러 정확히 확인하라는 말씀이시지. 그렇게 확실한 정보를 주는게 좋다.)
외래 진료 중이거나 회진을 돌 때, 회의를 할 때는 전화를 못받을 때도 많다. 그래서 난 명함을 줄 때 일단 문자를 보내라고 한다. 나중에 내가 전화를 하겠다고. 환자는 믿을 수 없겠지만 하루일이 너무 늦게 끝나서 답신 전화를 할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리고 다음날 전화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까먹을 수 있다. 그래서 환자에게 핸드폰 전화번호를 주는 것은 별로 추천할 만한 방법이 아니다.
그래도 난 뭔가 위험요인이 있는 환자들에게 내 전화번호를 준다.
이 환자도 전화번호를 줄만한 사람이었다.
환자는 지난 주에 사망하셨다.
딸은 삼오제를 지내고 나서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는지 나에게 전화를 하였다.
온 가족이 엄마의 긴 투병에 지쳐 있었는데도
막상 돌아가시고 나니 여러모로 후회가 많은가 보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몇일 전에 아는 목사님을 통해 몇백만원짜리 전자매트를 샀는데요
그때 그 목사님이 이 전자매트를 대고 자면 감쪽같이 병이 낫는다고 했대요.
우리 가족은 그런거 없다고 사지 마시라고 그렇게 말렸는데요
엄마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에 그 매트를 사셨어요.
그리고 전자매트를 높은 온도로 맞춰놓고 10일 넘게 쓰셨는데
갑자기 돌아가신거에요.
그 매트 때문에 그럴 수 있나요?
글쎄요
그런 인과관계를 증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럴 가능성은 높아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돌아가시던 날 어머니가 응급실에 오셨을 때는 이미 너무 시간이 많이 지난 후라서
제가 뭐라 말씀드리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그 매트회사에 전화를 해봤는데
너무 괴씸해서요.
고소할 테면 해봐라 그렇게 나오는거에요.
제가 고소할려고 그런 건 아니었거든요.
말기 암환자한테 그렇게 사기쳐서 물건 팔지 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은데
이제 와서 그렇게 나오니 너무 괴씸해서요.
제가 전화했더니 녹음하겠다 할말있으면 다 해라 뭐 그런 식으로 나오는거에요.
섭섭하시겠지만 제가 그 사안에 대해 뭐라 말씀드릴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고정하시고 가족들과 상의해서 필요한 일을 진행하세요.
저는 노코멘트입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하는 환자의 마음을 내가 막을 권한은 없다.
그렇지만 그런 마음을 이용해서 수많은 건강보조식품이나 의료기기를 파는 사람들을 규제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나 같은 개별 의사의 노력일 수는 없겠지만 마음이 안 좋다. 때론 그 자리에 의사가 있는 경우도 있다. 정말 할말이 없다. 전화 통화를 하고 나니 마음이 정말 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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