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취미생활에 관한 정보를 슬기에게 얻는 편이다.
중학생이라고 무시할 일이 아니다. 슬기는 꽤 괜찮은 정보를 제공하는 나의 공급책이다.
나 : 너무 기운없어. 아무것도 못하겠다. 뭘 해도 의욕이 없어.
슬기 : 그럴 땐 좀 쉬어. 웹툰같은거 보면서.
나 : 괜찮은 거 좀 소개시켜 줄래?
슬기 : 이런 류를 엄마가 좋아할지 모르겠네. 네이버에 가서 러브판타지페이퍼를 쳐봐.
오호, 내가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지만 괜찮았다.
연구실에서 혼자 웹툰을 보며 흐뭇한 웃음을 짓는다. 무기력하고 기분나쁜 시간을 효과적으로 보낼 수 있었다.
나 : 러브판타지페이퍼, 괜찮았어. 완전 감동이나 완전 호감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괜찮더라.
내 취향에 맞는 걸로 몇 개 더 추천해주라.
슬기 : 그럼 다음에 가서 강풀의 미스터리심리썰렁물을 봐. 그게 딱 엄마 필이야.
나 : 여러 개야?
슬기 : 응. 일단 제일 최근에 나온 조명가게도 괜찮고, 타이밍이나 어게인이 엄마 취향이야.
강풀의 작품은 나를 한참 동안 구제해주었다.
몇 달에 걸쳐 조금씩 봤다.
순정만화 계열은 취향이 아니라 건너 뛰고
스릴러물을 다 보았다.
마지막으로 26년과 조명가게까지.
그 무렵 슬기는 나에게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mp3로 주었다.
나 : 강풀거 다 봤는데 또 없어?
슬기 : 이거 좀 유치하지만 나름 철학이 있는 만화야. 네이버에 가서 ‘목욕의 신’을 찾아봐. 괜찮을거 같아.
슬기는 매일밤 그날의 웹툰을 리뷰하고 잔다. 최소한 1시간 이상 걸리는것 같다.
중3.
특목고 원서 지원이 시작되고 있다.
어제 나 대신 학부모 회의를 다녀오신 엄마는 큰 충격을 받고 가슴이 벌렁거린다면서 술을 드시고 주무셨다.
난 그래도 슬기한테 물어본다.
나 : 슬기야, 요즘 재미있는거 나온거 없냐?
아침 회진을 돌면서 아이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 젊은 환자에게 제안한다.
심심하면 웹툰보세요.
뭐가 재미있어요?
조명가게나 목욕의 신 보세요
뇌전이로 방사선치료를 하고 있는 그녀는 어지러움증이 심해서 입원해 있다.
뭔가 할일이 생겼다며 좋아한다.
매일의 일상을
항상 최선을 다해
항상 충만하게
살 수는 없다.
때론 나를 내려놓고 휴식을 취할 때가 필요하다.
웹툰과 함께.
썩 괜찮은 아이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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