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 치료 지침에 따라 약제를 정하고 치료했건만
첫 항암제 탁솔은 환자에게 독성이 너무 심하게 나타나 치료를 4번 이상 유지할 수 없었고
두번째 항호르몬제는 약효가 없어서 병이 나빠졌다.
세번째 약제를 시작하기 전 찍은 뼈사진에서 새롭게 골반뼈 전이가 생겼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환자는 걸을 때마다 통증이 심했다. 전이 정도가 심한 것은 아니었지만 해부학적으로 통증을 유발할만한 장소에 병이 생긴 것이다. 환자는 이제 40대 후반. 뼈조심을 당부하며 활동성을 줄이라고 말하기에 다른 일반 컨디션은 괜찮은 젊은 나이다. 진통제를 처방했더니 바로 토한다. 일단 세번째 항암제로 젤로다를 선택했다.
젤로다를 먹고 3주만에 만난 환자.
간전이로 불편했던 복부팽만감이 호전되어 식사하는데 무리가 없으시다고 한다.
온 몸이 조이듯이 아팠던 것도 진통제 먹지않고 잘 조절되어 몸이 훨씬 가볍다고 한다.
더 다행한 것은 젤로다 독성이 거의 나오지 않아서 용량을 줄이지 않고도 잘 드실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이다. 특별히 어떤 검사를 한 건 아니지만, 이 환자에게는 젤로다가 잘 맞는 약이 될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보행시 통증.
뼈 전이에 의한 통증은 하루아침에 좋아지지 않고,
뼈가 손상되면서 주위 관절과 신경구조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태라
항암제 효과를 기대하기에는 시간이 걸리고
진통제와 같이 전신 치료제(systemic therapy)를 과량으로 많이 써야 하기 때문에 진통제 부작용이 우려된다.
특히 이 환자처럼 뼈전이로 인한 통증이 동반된 경우에는 국소적, 일시적으로 암세포를 소멸시킬 수 있는 방사선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런데 젤로다를 먹고 있기 때문에 방사선치료를 같이 하면 항암 방사선 동시치료의 범주로 들어가서 보험이 안된다. 혹은 나중에 삭감이 된다. 방사선 조사량과 범위에 따라 다르겠지만, 환자가 동시 치료 시 독성이 심해 치료받기를 힘들어하기도 한다. 이 환자에게는 젤로다를 계속 유지하는게 치료적으로 필요한데…
다행히 전이 부위 면적이 크지 않다. 직경 3cm 미만. 마침 우리병원에서 MRI 유도하에 자기장을이용한 국소치료를 하는 임상연구가 진행중이라 해당 연구를 설명드렸고 환자가 치료에 동의하였다.
나도 이 연구의 치료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한번 보는게 좋을 것 같아서
MRI 촬영을 하고 치료가 진행되는 과정을 따라가 보았다.
영상의학과 선생님이 환자 사진을 보여주시면서 이것 저것 설명해주신다. 앞으로 3개월 후에 MRI를 찍어서 뼈 상태를 재 점검하신다고 한다. 일반 진료에서는 MRI를 잘 찍지 않는데 임상연구라서 영상의학과가 알아서 다 스케줄도 잡아주고 환자가 비용을 내지 않아도 MRI를 찍는 기회가 생기니 평소에는 확인할 수 없었던 환자의 뼈 질을 평가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치료 과정에 시간이 꽤 걸리는데도 환자는 늠름히 잘 견디고 있다.
늦은 시간, 치료 대기실에서 남편을 만났다. 대기실에서 만나는 가족은 그 누구도 몰골이 초췌하다. 환자를 걱정하며 기다리는 동안 내 몸의 기운, 윤기가 다 빠져나가다 보다.
전이성 유방암의 첫 진단부터 병의 진행, 재치료 이런 모든 과정을 나와 함께 한 환자와 남편이다. 이들이 나를 신뢰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의사를 믿고 치료에 임하는 환자를 만나면 최선을 다해서 치료하고 반드시 효과도 좋게 해야 해다는 결심을 다시 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은 결심이 아니라 기도…
기존 치료보다 훨씬 안전하고 치료 효과도 더 좋을 것으로 기대되는 신기술 장비니까 너무 염려마세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네요. 식사는 하셨어요?
안사람이 저렇게 고생하고 있는데 제가 밥 먹으면 되겠어요?
그냥 기다릴래요.
시술이 다 끝나지 않았는데 내 방으로 돌아왔다. 계속 지켜보고 있기에 지쳤다.
요즘 기분도 울적하고 내 삶의 지지부진함에 대해 자괴감을 느끼며
혼자 쓸데없는 생각 속에 빠져있었는데
늦은 밤 시간 마다하지 않고 의사가 지시하는 대로 검사와 시술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최선을 다해 치료받으려는 노력하고
재발해서 통증이 악화되어도 그 몸과 마음의 어려움을 견디며 이겨내는 환자와 가족을 보니
정신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환자는 시술 후 통증이 좋아졌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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