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받아들일 수 없어

슬기엄마 2012. 3. 24. 09:43


외래를 보는 내가
목소리도 갈라지고 입도 마를거라며
홀스 같은 사탕,목을 보호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차
그런 걸 가져다 주시던 환자가 있다.

7년만에 유방암 재발을 진단받았는데
정작 본인은 별 증상이 없었다. 목이 좀 뻣뻣하고 허리가 좀 아프고 그정도.
HER2 양성이라 마침 임상연구가 있어서 소개해드렸다. 말은 임상연구이지만 표준치료랑 크게 차이가 없어서 보통 치료를 시작할 때와 큰 차이를 두고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신약도 아니고 특별한 검사가 더 있는것도 아니고...
임상연구로 치료를 하면
담당 임상연구간호사가 환자를 꼼꼼히 챙기기 때문에
검사일정이나 독성평가를 더 철저히 하게 된다.
환자도 불편하고 어려운 점이 생길 때 임상연구간호사랑 언제든 연락할 수 있고 의사에게 바로 연결이 되기 때문에 조치가 빠르다. 이 연구는 다국적 제약회사가 스폰서하고 있는 연구라 약과 검사가 모두 제공된다. 그래서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된다. 그래서 그런 정황을 설명드리고 치료를 시작하였다. 8개월전에.

그런데 사실 환자는 당시 재발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내가 했던 설명
자신이 받는 치료
그런 것들에 대해 충분히 생각할 여지가 없었나보다.
그저 무섭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고
일단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한 것 뿐이었다.
다행히 약효가 좋아서
환자의 병변은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었다.
CT 사진을 보여드리면 힘없이 웃으면서도 좋아하셨다.
좋아지고 있어요? 아이구, 무서워서 못 보겠어요.

그런데 2달전부터 환자가 자꾸 어깨가 아프다고 했다.
우리 병은 계속 좋아지고 있으니,
어깨 아픈건 재활치료를 해 보시거나 정형외과에서 상의를 해보자고 했다. 우리 병원을 다니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시간 많이 걸린다고 동네 병원 다니시겠다고 했다. 동네 병원에서 약도 주고 주사도 맞고 했는데 별 차도가 없어서 MRI를 찍어보자는 말을 들어셨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몇주가 흐르는 동안, 유방암 치료평가를 위한 CT를 찍는 날이 다가왔다. 이번에 찍은 CT를 보니, 깊은 목, 어깨, 겨드랑이 부근의 림프절들이 갑자기 다 커져있었다. 그런 것들이 속에서 다시 커지기 시작하면서 환자 통증이 시작되었나 보다.
나는 말을 바꾸는 사람이 되었다.

아마 병이 나빠지는 과정이라 아프셨나봐요.
목 디스크도 있다고 하던대요?
디스크가 악화된 것과 병도 나빠지는 것이 동시에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동안 병이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사진에서는 나빠지기 시작하네요. 아직 다른 병변은 안정적인데 겨드랑이쪽 림프절이 다시 커지기 시작하는거 같아요. 저항성이 생기기 시작하나봐요. 약을 바꾸어야 겠습니다.


환자가 말문이 막히는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는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죽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라고 하여 입원장을 드렸다.
어제 입원을 하자마자
병원에 있고 싶지 않다고 자의 퇴원을 해 버렸다.
오후에 다른 학회 모임으로 병원을 나와있던 나는 환자를 만나지 못하고 레지던트 보고만 들었다.
팔에 마비감이 시작되어서 입원시켰는데
환자가 죽어도 MRI는 찍지 않겠다고 했다 한다.
주사도 안 맞을 거라고.
약 처방을 해드릴테니 가지고 가시라고 해도 퇴원약도 필요없다면서
입원하자마자 퇴원하시겠다고 한다.

재발을 처음 진단하게 되었을 때 예후를 얼마나 자세히 설명해야 할까?
약을 쓰고 좋아진다고 하니, 계속 좋아질 줄 기대하셨나보다.
아주 점잖고 의사말을 잘 따르는 환자였고 나도 좋아하는 환자였는데
환자가 마음이 많이 상한걸 보니 나도 속상하다.
환자의 마음이 얼어버렸나보다.
오늘 전화나 한번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