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이제 의사가 다 됬어요

슬기엄마 2012. 3. 14. 14:16

뇌로 전이된 유방암.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이제 막 전이가 진단된 그때였다.
전이를 진단하게 된 사연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

여하간
나는 환자가 성격이 변한 것 같다는 가족의 말에 뇌MRI를 찍었고 
소뇌에 있는 종양의 크기가 크고 부종도 심해서 응급수술을 하였다.
응급 수술을 하고 전과하여 내가 다시 진료하게 되었다. 환자의 회복이 느리다.

우리 엄마보다 약간 젊은 환자.
나보다 약간 젊은 환자의 딸.
딸은 평소에 엄마에게 잘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크다고 했다.
한편으로 그걸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엄마의 전이 상태를 빨리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상태가 더 나빠지고 있는게 아니냐는 원망을 자꾸 나에게 한다. 그런 말을 해놓고 또 그걸 미안해 하고 그러기를 왔다갔다 한다. 불안정한 가족의 심리상태를 대변하는 것 같다.

뇌 부종이 쉽게 해결되지 않으니 스테로이드를 줄이지 못하고 꽤 오랫동안 유지해오고 있다.
그래서 얼굴이 풍선처럼 점점 부풀어 오르고 배도 나오고 살도 많이쪘다. 아직도 가끔 말을 어눌하게 한다.
뇌 수술의 후유증이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폐전이도 나빠지고 있어서 나는 젤로다와 라바티닙으로 치료를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항암제 부작용으로 입안이 벗겨지고 손발도 엉망이다. 설사를 심하게 하는 날은 10번도 넘게 설사를 한다. 젤로다와 라바티닙을 병용했을 때 부작용 교육이 필수적이다. 안그러면 환자들이 알아서 안먹어버리고 항암치료를 쉽게 포기해버린다. 약을 먹기 전 상세하게 교육하고 의문점이 있을 때 전화하여 안내받도록 해야 한다. 연구 간호사 한명을 붙였다.

환자와 남편은 일주일에 2-3번씩 병원에 와서 새로운 증상을 호소하였다.
나도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이 증상 막으면 저 증상이 나오고, 저 증상을 막으면 다른 증상이 또 나오고. 도대체 약을 제 날짜에 먹기가 힘들었다. 그 와중에 환자의 큰 아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그 전에 어지러움증이 도지면 안되는데, 항암제 먹고 토하면 안되는데 환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는 결혼식에 맞추어 항암치료 일정, 약물 복용기간을 연기하였다. 결혼식을 3일 앞두고는 매일 병원에 와서 컨디션 체크하고 수액맞고 영양제도 맞고 환자의 몸만들기 프로젝트에 동참해야 했다.

병원에 오는 날
남편은 그동안의 집에서 지내며 있었던 일, 투약일지를 잔뜩 써 오신다.
몸무게가 많이 빠져서  라식스 20은 먹고 알닥톤 50은 안 먹었다는 둥
뼈의 통증이 있는데 옥시콘틴 20 먹을 땐 괜찮았는데 타진 20 먹으니까 효과가 적은 것 같다는 둥
설사를 해서 로페린을 첨에 2알 먹고 다음에 1알을 4시간 간격으로 먹다가 안되서 2시간 간격으로 먹었는데도, 몇일째 설사를 계속 하고 있다는 둥
젤로다를 먹으니 손발 벗겨지는게 심하다는 둥
다리 붓는 건 젤로다 때문인지 타이커브 때문인지 모르겠다는 둥
내가 환자에게 한 교육 내용을 다 기억하고 있다가
환자 증상이랑 맞춰서 나에게 프리젠테이션을 다시 해 주는 셈이다. 그래서 이제 의사의 의학적 설명도 이제 금방 이해하신다.
오늘 신경외과 진료를 보고 왔는데, 뇌 병이 나빠진건 아니지만 수술 후 부종이 아직 남아있어서 가끔 헛소리를 하는 거 같다고 했다며, 그래도 장기적으로 스테로이드를 줄이는게 필요하니까 그냥 감안하고 참으라고 부인을 설득할 거라고 하신다. 의사의 설명 취지를 매우 정확히 잘 이해한다. 의사들도 가끔 정신이 없기 때문에 의사처방이 간혹 틀릴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항상 처방전을 받으면 다시 진료실로 들어와서 내가 처방한 약이 어떤 indication으로 먹는 것인지, 투약 방법, 간격 이런 것들, 꼭 먹어야 하는 약, 안 먹고 자기가 조절해도 되는 약 이런 정보도 꼼꼼히 되물어서 챙겨가신다.
(약국에서는 설명을 별로 들은 적이 없다고 하신다. 그리고 용법을 내가 투여한 목적/이유와 다르게 설명하기 때문에 더 헷갈린다고 하신다)

의사가 다 되었네요?
병원 생활 4년째, 그동안 병원에 돈 많이 내고 저도 의사가 되었나 봅니다.
글씨도 아주 잘 쓰셔요.
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공부 좀 했는데, 지금은 뭐 별 볼일 없습니다.

남편은 휘청거리는 부인을 부축하여, 대중교통으로 병원에 온다.
그의 투약일지, 대학노트를 보면 아무리 보호자가 귀찮게 질문을 해도 쉽게 그를 내칠 수 없게끔 
정리가 잘 되어 있다. 그래서 그가 그 노트를 들고 자꾸 방문을 두드려도 거절할 수가 없다.
환자와 가족이 의사처럼 똑똑해지니까 좋은 점도 있지만 미안하고 마음도 아프다.

3주기 항암제 복용 후 찍은 CT. 많이 좋아졌다.

나 손주 볼 때까지는 살겠지요?

환자는 아직 어눌한 말투로, 휘청거리며 발걸음으로
그러나 활짝 웃으며 진료실을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