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아들의 눈물

슬기엄마 2012. 3. 1. 20:01


60이 넘은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니는 30대 중반의 아들.
한창 일 할 나이라, 직장 생활 때문에 평일에는 병원에 올 틈이 없다.
아이는 두명, 한명은 갓난쟁이라 부인도 두 아이들에 묶여 있어 어머니 병간호까지 하기에 버겁다.
그래서 온 친척들이 돌아가면서 환자가 병원 다니는 걸 지원하고 있다. 온 가족이 모두 착하다.
그렇지만 난 주된 부양자와 환자 상태에 대해 정기적으로 상의하는게 필요했다. 환자 상태가 썩 좋지 않으니까.
그래서 매주 토요일 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이 환자는 나의 VIP, 그래서 진료가 없는 토요일도 이 환자는 따로 진료하고 있다.
가족들이 이렇게 헌신적으로 환자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나도 이 정도는 해야지 싶다.

환자는 재발한 유방암으로 4년째 치료 중이다. 뇌전이 이후 2년이 지났다.
거동이 아주 자유롭지는 않다. 그래도 병원에서 시키는대로, 꼬박꼬박 검사하고 치료를 다 받으신다. 병원 한번 오는게 쉬운 일이 아닌데도 절대 불평을 안하신다.
폐 전이 이후 숨이 많이 찼었는데
항암치료 하고 나서 숨찬게 좋아진 경험이 있으셔서
항암치료가 본인에게 아주 중요한 치료과정이라고 생각하신다.
HER2 양성인 환자는 표적치료제를 이용한 치료는 이미 다 한 상태다.
그 뒤로 표적치료제가 아닌 일반 항암제로 항암치료를 하고 있다.
6개월 정도 약효가 유지되다가 나빠지고
다시 약을 바꿔서 치료하면 또 6개월 정도 약효가 유지되다가 나빠지고 있다.
그래도 평균보다는 성적이 좋다.

지난주 찍은 CT를 보니
또 나빠졌다...

그 사이 HER2 신약을 포함한 임상시험이 들어온 게 있다.
이 환자가 그 임상연구에 들어오려면 조직이 있어야 한다.
원래 유방암 수술을 한건 15년전.
재발 이후에는 조직검사를 하지 않았다.
원 수술을 한 병원에 알아보니 너무 오래되서 보관된 조직이 없다고 한다.
임상연구를 위해서 조직검사를 새로 해야 하는 형편이다. CT를 보니 쉽게 조직검사를 할 곳이 없고 마취해서 수술적으로 폐막에서 조직을 떼는게 제일 낫겠다.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공휴일 평온한 저녁을 지내고 있을 가족에게 나쁜 소식을 전한다.

이번에 찍으신 사진을 보니 간도 나빠지고 폐에 물도 많이 차셨네요. 지금 쓰는 약은 이제 효과가 없는것 같아요. 이제 그만 쓰는게 좋겠어요.

네...

제가 지난 번 한번 말씀드렸던 임상연구 한번 해볼까봐요. 약 자체는 큰 독성도 없고, 표적치료제를 포함하고 있으니 어머니께는 치료적으로 도움이 될 거에요.
그런데 문제는 조직검사를 새로 해야 겁니다. 그런데 조직검사가요 부분마취로 쉽게 할 수 있을것 같지 않구요 전신마취를 한 다음 조직을 얻어야 할 것 같아요.
어머니가 전신마취를 한번 견뎌야 한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네...

한번 입원하시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시겠어요?

네...

아들은 조용히 대답한다.
수화기 넘어 아들이 간신히 호흡을 고르고 있는게 느껴진다.
재발 이후 평균 수명이 2년인데 4년 사신거면 두배 이상 사셨다.
공격적인 속성을 가진 HER2 양성인 타입인데도 꿋꿋히 잘 버티고 계신다.
난 이 환자의 향상된 예후는 가족의 사랑 때문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돌아가셔도 이만큼 더 사셨으면 잘 사신거라고 볼수도 있다. 그렇지만 환자와 이들 가족을 보면 그런 썰렁한 생각이 안든다. 
아들이 눈물을 꾹 참고 대답을 하는 걸 듣고 있으니
나도 눈물이 나려고 한다.

부디 조직검사가 무사히 잘 되고, 조직검사 결과가 임상연구에 적합하게 잘 나와서 
새롭게 치료를 시작하고
우리 환자에게 다시 한번 생명의 시간이 주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