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원망하는 마음이 풀리지 않으면...

슬기엄마 2012. 3. 7. 19:27


어제 오늘 외래를 보는 동안
병이 나빠져서
약을 바꿉시다
입원합시다
그런 말을 여러번 해야했다.

치료를 하다가 '병이 나빠졌으니 약을 바꿔야 한다'는 말을 하게 되는데
그 말의 의미를 
환자나 가족이 제대로 이해하려면
나는 사진도 보여드리고
대화도 충분히 하고
앞으로 치료적 계획도 말씀드려야 하고
등등의 많은 내용을 설명드려야 한다.
더불어 예후와 관련된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날, 어떤 주에
그런 환자들이 왕창 몰릴 때가 있다. 어제 오늘이 그랬나 보다.
그렇게 왕창 몰리면 
설명하느라 지치는 면도 있고
나조차 병이 나빠졌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감정적으로 힘든 면이 있어서 설명을 충분히 다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영문도 잘 모르고
다른 약을 맞고 가는 할머니
갑자기 방사선치료를 시작하는 할머니
엉겁결에 입원하게 된 아줌마
내 설명이 부족해서
치료 지침을 이해하지 못한 채
새로운 치료를 시작하게 된다. 환자 입장에서는 그냥 당하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불만이 쌓이면 폭발하시겠지.
그걸 다 알면서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내가 한심하다.

6개월 전에
유방암 0기(상피내암)로 진단받았다.
0기란
이론적으로 전이되지 않는 유방암인데
현실적으로는 전이가 되어 나타날 수 있다.
수술 후 최초 검사는 6개월 후.
미국은 상피내암이든 침윤성 유방암이든 1년에 한번만 검사하고 의사가 진료를 한다. 우리나라는 검사비도 싸고 의사 진료를 받는게 비싸지 않으니 6개월에 한번씩 한다.

그런데 환자는 5개월 째 목덜미에서 뭔가 만져지는게 있어서 병원을 찾아와 자청하여 검사를 했고 목림프절과 복장뼈에 전이가 된 것을 알게 되었다. 수술 후 유방 근처가 계속 아팠는데 병원에서 검사도 하지 않고 설명도 제대로 해주지 않고 방치하다가 재발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방치가 아니라고, 원래 상피내암은 유방 전절제 수술을 하면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를 하지 않는다고, 호르몬수용체 음성이니 먹는 약도 없이 그냥 6개월에 한번씩 검사만 하게 되어있다고 설명하였다. 그래도 환자는 5개월만에 본인이 재발을 발견하고 4기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환자가 계속 현실을 받아 들이기 어려워하니 나는 이런 저런 설명을 이어서 하게 되고 얘기를 하다보니 종양의 특성, 유방암 세포의 세세한 특징 그런 의학적인 내용까지를 환자는 자꾸 캐묻게 된다. 그리고 왜 그런 설명을 미리 안해줬냐고 역정이다. 그런 내용은 의과대학 수업에서도 강의하지 않는 전문적인 지식인데, 그걸 매번 환자와 공유해야 하나. 나도 점점 억장이 무너진다.

나를 직접 원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병원의 시스템을 원망하고 계신다.
환자가 마음을 열지 못하니 나도 치료를 시작하기 어렵다.
이제 치료에 대해서 논의하자고 해도 대화는 자꾸 과거로 회귀한다.
그때 그런 설명이 없었던 거라고.
환자는 너무 억울해 한다.
환자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겠지만, 어떻게 환자의 마음을 다독거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마음으로는 항암치료를 시작하는게 별로 좋지 않을 것 같네요.
내일 다시 만납시다.
제가 드린 말씀에 대해 잘 생각해보세요.
섭섭한 거랑
어쩔 수 없는 거랑
잘 나눠서 생각해보세요.

나도 머리가 너무 아프다. 목도 너무 아프다. 타이레놀 두알을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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