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환자의 전시회

슬기엄마 2011. 10. 3. 09:31

아직 30이 안된 나이.
미술공부하러 유학까지 다녀왔다.
귀국해서 이미 전시회도 한번 열어 정식으로 데뷔를 한 상태이다.
이제 막 한국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계획하고 있는데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1기. 종양의 크기가 1cm도 되지 않는 조기유방암이다.
아직까지 0.5cm- 1cm 정도되는 작은 크기의 유방암에서 항암치료를 할 것이냐의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핫 이슈이다. 즉 위험도가 높지 않은데 과도한 항암치료가 환자에게 해를 줄 수도 있다는 주장, 아니면 유방암의 장기적인 경과를 고려했을 때 항암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여전히 수많은 임상연구를 통해 적절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한번에 3000불이 넘는 유전자검사를 통해 위험도를 예측하려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한국은 또 상황이 다르다.
왜냐하면 유방암의 평균 발생 연령이 서양에 비해 15년 이상 젊기 때문이다.
젊은 유방암 환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치료할 것이냐, 젊은 유방암 환자의 생물학적 코스는 또 다를 수 있다. 아직 미해결의 영역이다.
나는 환자에게 4번의 항암치료를 권유했다.
이상의 논란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보조적인 지표를 고려했을 때 이 환자에서는 항암치료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되겠다는 나의 견해를 밝혔다.

환자는 아직 남자친구도 없고 결혼도 하지 않았으며, 장차 아이를 낳겠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항암치료를 하거나 하지 않거나 환자는 5년간의 호르몬제를 복용해야 하기 때문에, 어차피 임신을 하면 안되는 상태이다.
우리는 진료시간에 이러한 대화를 여러차례 나누었고 환자는 항암치료를 받기로 결심하였다.

그런데 본인 전시회 일정이랑 치료 기간이 겹쳐져 있다.
항암치료 날짜랑 전시회 준비하는 일정을 맞추어야 했다.
1번 항암치료 하고 나서 치통으로 크게 고생했다. 그래도 환자는 꿋꿋하게 두가지 일을 병행하였다. 전시회를 한번 하려면 준비해야 할 일이 매우 많았다. 먼지나는 일을 하려면 언제언제는 피하는게 좋다, 사람들 만나는 기간은 이때 즈음으로 하는게 좋겠다, 물품 구입하는 일을 하러다닐 때는 꼭 자가용으로 다녀라, 이것저것 전시회 준비하는 과정에 제약이 많아 졌다.
그리고 세번째 항암치료를 해야 하는 기간에 전시회를 오픈하였다.
항암제 맞은지 3일째, 나는 그녀의 전시장을 찾았다.

외국유학에 대한 동경심을 품고 출발한 20대 중반의 철부지 아가씨. 
공항에 내리자마자 한국에서 왔기 때문여 결핵보균자인지를 확인하는 가슴 엑스레이를 찍는 것부터 그 환상과 동경심이 깨졌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 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고민하며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그녀의 작품은 한국의 33명의 보살을 테마로 하고 있고, 유럽의 로코코 양식을 접목시켜 표현하였다. 33명의 보살은 보살마다 상징하는 바가 다른데, 그것을 상징하는 배경, 소품, 그리고 자신의 표현을 통해 동양과 서양의 가치관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세계를 선보이고 있었다.
내가 이런 설명을 듣는다고 얼마나 이해하겠는가.
나는 그녀가 진료실에서와는 달리 생기있게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그 의미를 해석해주는 걸 들으며 진심으로 그녀에게 박수를 보냈다. 

눈화장은 원래 그렇게 쎄게 하고 다녀요?
ㅎㅎ 네, 제가 눈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이렇게 굽 높은 구두 신으면 너무 피곤할거에요.
ㅎㅎ 네, 안그래도 운동화 갈아신으려고 가지고 왔어요.

D+3일째 환자에게 필요한 몇가지 코멘트, 그리고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였다.
전시장에서 자신의 작품과 함께 있는 그녀, 그녀는 환자가 아니었다.
유방암은 그녀의 미래에 더 이상 장애물이 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