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약 제대로 드신거 맞나요?

슬기엄마 2011. 9. 30. 16:17

유방암 항암치료와 표적치료가 끝난 건 2년 반 전.
오늘은 6개월에 한번씩 하는 정기검진을 하고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내원하셨다.
나랑은 처음 만나는 40대 중반 여자환자. 지금은 놀바덱스 호르몬제만 드시고 있다.
우리병원에서는 호르몬제만 복용하는 기간은 외과에서 추적관찰 하고 있는데
이 환자는 수술 후 표적치료 임상연구에 참여했던 환자라서
외과 보는 날 종양내과 진료도 같이 보게 되어 있어, 나도 호르몬만 복용하는 기간의 이런 환자를 만날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저랑은 처음이시네요.
이제 치료도 다 끝나고, 시간도 많이 지났는데 요즘은 뭐하고 지내시나요?"
"운동도 하고 뭐 그냥저냥 바쁘게 지내요."
"호르몬제 드시는 건 괜찮으세요?"
"네...."

대답이 어째 수상하다. 바로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나.

"호르몬제 제대로 드시고 있나요? 매일매일, 하루 한알, 꼬박꼬박?"
"네.... 거의 매일 먹어요."
"거의요?" (눈꼬리를 치켜뜨며 강하게 질문한다)
"아니, 사실...."
"매일 안 드시고 계시군요?" (마구 몰아세움)
"놀바덱스 그거 먹는거 너무 힘들어요. 온 관절이 다 아프고 몸이 아파서 어디 돌아다니거나 움직일 수가 없다니까요."
"그래서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금 두달째 쉬고 있어요. 몸 컨디션 좀 좋아지면 다시 먹으려구요."
"뭐라구요?

먹는 약이다보니
환자가 과연 약을 제대로 먹고 있는지 의사가 확인할 길이 없다.
체내 혈중 농도를 체크해서 제대로 복용했는지를 알 수 있는 지표가 있으면 좋으련만.
(예를 들면 철분결핍성빈혈 환자에게는 철분제를 투여한 후 한달 뒤에 피검사를 해보면 환자가 약을 잘 먹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 환자에게, 약 열심히 안드셨군요? 하면 환자는 눈을 똥그렇게 뜨고, 어떻게 아셨어요? 하며 놀란다. 그럴 때는 의사가 정말 있어 보이는데...)
환자에게 물어보고 환자가 하는 말을 믿는 수 밖에 없다.

만약 환자가 약을 제때 제대로 먹어야 한다는 중요성을 간과하고
잘 먹지 않으면서도 의사에게는 잘 먹고 있다고 대답하면 그걸로 그만이다.
오직 환자만이 진실을 아는 셈이다.

유방암 수술 후 복용하는 항 호르몬제는
재발율을 30% 이상 낮춘,
최근에 나온 어떤 신약도 이루지 못한,
역사상 유래없이 치료효과를 높인
훌륭한 약제이다.
폐경 전 여성에서는 타목시펜 5년을, 폐경 후 여성에서는 아로마테이즈 억제제를 5년 (혹은 10년) 복용하는 것이 재발율을 낮추는데 매우 중요한 약제라는 사실이 수많이 임상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한 연구에 의하면 수술 후 5년간 복용하게 되어 있는 항호르몬제를 계획대로 다 복용하는 환자는 전체 환자의 50% 정도 밖에 안된다는 조사가 발표된 바 있다.
매일
하루 한번
꼬박꼬박 약을 먹는다는 행위 자체를 성실하게 실천하는 것이 어려운 면도 있지만
독성도 심하지 않고, 부작용도 거의 없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환자에서 항호르몬제를 먹으면 나타나는 폐경기 증상, 관절통, 부종, 우울증 등의 부작용이 규칙적인 약물 복용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환자들은
이러한 부작용이
항호르몬제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고 힘들어 하기도 하고
약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의사와 상의하지 않은 채 임의로 복용을 중단해버리기도 한다.
때론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의사를 찾아와 열심히 호소해 보지만
의사의 해결방안 역시 뜨뜻 미지근,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하여 실망하고 병원에 오지 않기도 한다.

체내 에스트로젠 농도를 낮춤으로써 유방암의 재발을 막는 것이 치료의 원리인데
여성에서 에스트로젠 농도를 낮추니
인위적으로 폐경기 여성처럼 몸이 변하고
그렇게 약물로 유도되는 폐경기 증상은 자연스럽게 맞이하는 폐경기에 비해 증상이 더 심하게 나타난다.
유방암 진단전 여성 호르몬을 보충한 적이 있는 경우라면 폐경기 증상이 훨씬 극심하게 나타하고, 심한 경우 약 먹기를 포기하기도 한다.

환자에게
현재 투여하는 약의
정확한 약리 작용과 그 의미
약의 부작용과 대처방안을 미리 상세히 교육하는게 필요하다.
그리고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났을 때 자기 맘대로 약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와 다른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어야 한다.
환자에게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그냥 참으라고 하면 안된다.
항호르몬제로 인해 양 다리가 붓고 신발을 신기 어렵고 걷기가 어려워 운동하기도 힘들고
이와 함께 우울증이 찾아오고,
몸과 마음이 힘들어 바깥 출입을 하거나 바깥 바람 쐬러 다니는 것도 힘들다.
5년을 그냥 이 상태로 참으라고 할 수 없다.

수많은 만성질환과 마찬가지로,
암도 생존율이 증가되어 오래사는 환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환자교육(Patient education)이야 말로 진정 중요한 분야라고 생각한다.
환자용 그림, 쉬운 책자, 부작용 대처방안 설명서, 생활 속에서 부작용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한 노력, 의료진과의 적절한 커뮤니케이션, 그런 노력들이 병행되었을 때 약물을 처방대로 복용하고, 그만큼의 치료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부작용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참으라고 하지 말고-가 환자를 절망하지 않게 만들 것이다.

환자는 그렇게 중요한 약이라면 참고 다시 먹어야겠네요. 했다.
약에 대한 인지구조가 다시 형성되면
부작용도 조금은 더 의연하게 참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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