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상담원함

슬기엄마 2011. 9. 28. 18:41


내일 외래 명단을 띄우면
담당 외래 간호사가 해당 환자의 외래 내원 사유를 메모해 놓는 칸이 있다.

'4번째 허셉틴'
'3번째 탁소텔'
'종양평가 후 항암제 결정'
'보험회사용 진단서'
'유방암 수술 후 첫 내원'
이런 식으로 간호사가 메모를 해 둔다.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환자, 고민이 필요한 환자부터 차트를 열어본다.
중요도에 따라 파악을 먼저 하고
루틴 케모만 하면 되는 환자는 제일 나중에 파악한다. 그만큼 이제 좀 능숙해진 것 같아 뿌듯하다.
명단만 보아도 어떤 환자인지 아는 경우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다행이다.

'상담원함'
이런 메모가 있으면 마음이 무겁고 착찹하다.
또 뭔가 어려움이 생겼구나...
이런 환자는 외래 제일 뒷쪽으로 순서를 옮긴다.
중간에 상담하는 환자랑 시간을 많이 쓰게 되면,
다음 환자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내 마음이 초조하기 때문이다. 환자 말을 끊을 수도 없고...

오늘은 '상담원함'이 세명이었다.

이미 눈시울이 붉어진 상태로 들어온 환자.
수술이 끝난지 1년. 수술 후 허셉틴 1년 맞던 것도 다음주면 마지막이다.
그저께 6개월마다 한번씩 하는 유방암 종함검사를 하셨다. 다음주에 외래오면 마지막 허셉틴을 맞으면서 결과를 들을 수 있는데, 그때를 못 참고 오셨다.
지난 6개월 전 검사에서 폐에 작은 덩어리가 발견되었는데, 크기가 너무 작아서 성상을 확인할 수 없었고, 적극적으로 진단하려면 폐의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통해 진단을 해야 하는데, 조금 기다려 봐도 될 것 같아서 수술하지 않고 경과관찰 하기로 했었던 환자이다.
손주혁 선생님 파트 펠로우로 있으면서 당시 내가 그 설명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왜 경과관찰 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설명했을 때는 순순히 잘 이해하고 알겠다고 했었다.
자기도 수술하지 않는 것에 동의한다고 했었다. 또 전신마취하는 거 하기 싫다고 했었다.
그렇게 말해놓고도 사실은 6개월 내내 고민하고 또 고민하면서 걱정했었나보다.
그 폐가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보고 싶어서 외래에 온 것이다. 몇일을 못 기다리고...
내가 보기에는 별거 아닌거 같다. 크기도 변화없고, 더 작아진것도 같고, 그렇지만 영상의학과 선생님께 푸쉬를 했다. 급한 건 아닌데 환자가 많이 불안해 하니, 편의를 위해 판독을 해 주십사고. 영상의학과 선생님의 판독도 괜찮은 걸로 나왔다.
환자는 괜찮다는 말에 눈물을 뚝 떨어뜨린다.

"선생님 죄송해요. 호들갑 피워서."
"아니에요. 저도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 이제 걱정 다 날려버리시구요 다음주 허셉틴 끝나면 어떻게 지낼지 계획이나 세워오세요."
"저 이제 병원 안 오면 뭐 하면서 지내죠? 갑자기 막막해요."
"다들 병원 다니는게 습관되서 그런 마음이 드시나봐요. 그러니까 다음 우리가 만나는 다음주 마지막 외래에 올 때까지 앞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인생계획을 세워오세요. 앞으로 제 외래에는 안 오셔도 되지만, 1년 정도 지나고 외과 외래 오실 때 한번 들르세요. 계획대로 잘 지내고 계신지 점검합시다."

이 환자의 '상담원함'이 가장 가벼운 케이스였다. 의사로서 보람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환자를 상담할 때. 진료와 상담이 겹쳐서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소리를 함께 공유하는 친구가 되어야 한다. 의사가 친구역할을 하는게 좋은 것인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때론 친구가 되어줄 필요가 있을 때도 있다.

오늘 내 친구들, 상담을 통해 도움을 받으셨나 모르겠다.
상담하고 나면 나도 상담이 필요해서, 산에 가서 산과 나무에게 상담을 받고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