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펠로우일기

항암치료 네트워크를 꿈꾸며

슬기엄마 2011. 2. 27. 11:22

항암치료 네트워크를 꿈꾸며

 

전남 목포에 사는 김씨. 대장암 수술 3년만에 재발을 진단받았다. 3년전 대장암 수술을 서울의 큰 대학병원에서 한 탓에 그동안 외래 추적관찰은 서울을 오가며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번에 재발된 곳은 다행히 간 한 군데라 수술을 시도해 볼 수도 있지만 위치가 양엽으로 3개가 있어 당장 수술하기 보다는 항암치료를 하면서 치료반응을 보아 향후 수술 가능성을 타진하기로 했다. 2주 간격의 항암치료를 위해 서울로 치료를 다닐 생각을 하니 치료도 치료지만, 시간과 돈도 걱정이다. 항암치료 중에 열이 나거나 항암제 합병증으로 고생하면 서울까지 가야하는 일도 막막하다. 그렇게 힘든 몸으로 서울 병원으로 가도 사람많은 응급실에서 환자 대접도 제대로 못받고 고생할 일이 눈에 뻔하다.

 

경남 창원에 사는 최씨. 특별한 증상 없이 소화가 잘 안되는 것 같아 내시경과 초음파 검사를 했다가 4기 췌장암을 진단받았다. 췌장암에 쓰는 항암제는 매주 주사를 맞는 다는데 한번 주사맞는데 걸리는 시간은 30, 30분 주사를 맞으려고 매주 KTX를 타고 진주에서 서울까지 와야 한다니, 치료비보다 교통비가 훨씬 많이 들 것 같다. 중간에 열이 나면 꼭 병원에 오라고 하는데, 그럼 매번 서울까지 와야한다는 생각에 굳이 서울까지 치료를 받으러 다녀야 하나 고민했지만, 그래도 암은 큰 병인데 서울로 다녀야 뭐라도 낫지 싶어서, 힘들어도 일단 시작해보기로 했다.

 

제주도에 사는 이씨. 이번에 직장암 수술을 하였다. 병기가 꽤 높아 재발을 막으려면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같이 해야 한다고 한다. 방사선치료는 매일 받아야 하는데, 집이 제주도이니 어쩔 수 없이 여관신세를 지게 되었다. 병원에서 방사선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청했지만, 방사선치료는 외래에서 받아야 한다고 한마디에 거절당했다. 매일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오는 지방 환자가 수백명이라는데 이들이 원한다고 다 입원해서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 병원에 다른 환자들이 입원할 자리가 없기 때문에 한된다고 한다. 그 형편도 이해가 되지만, 몸도 별로 편하지 않은데, 한달 이상을 머물 숙소를 잡아 치료받으러 다닐 생각을 하니 이래저래 서글프다. 입원비보다 여관비가 더 비싸니 작은 병원에서 입원해있으면서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오는게 비용이 더 적게 든다고 누군가가 귀뜸해준다.

 

다른 분야도 그런 경향이 점점 강해지지만 암 치료는 서울의 4-5개 큰 병원으로 환자가 집중된다. 생명을 좌우하는 병이니, 큰 규모의 병원, 첨단 설비, 경험많은 의사에게 진료를 받으려는 환자들의 입장을 생각하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에 상응하여 환자들이 치뤄야 하는 경제적, 심리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비용을 감수하고 선택한 행위이니 시장논리에 의해 대세가 결정된다고 볼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이건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발상인데, 이런 환자들을 보며 구상해 본 것이 이른바 항암치료 네트워크이다. 일정 지역 내에 큰 거점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종양내과 의사들이 근무하는 작은 단위의 병의원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다. 수술 후 보조항암치료는 대개의 암종에서 표준치료를 하게 되는데, 표준치료는 치료 과정 중에 합병증만 생기지 않으면 특별히 결정할 사항이 없다. 그러므로 표준치료의 약제의 종류, 용량, 투약 주기 등을 결정해서 치료를 시작하면 환자는 치료기간 내내 원래 치료를 시작한 큰 병원에 갈 필요없이 거주지 근처의 병의원에서 치료를 진행하는 것이다. 치료 중 발생하는 가벼운 합병증도 다 이곳에서 해결하고, 환자수가 몰리지 않으니 의사의 진료시간도 서울보다 더 안정적으로 확보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거점 병원을 중심으로 인근 병의원에서 암환자를 진료하는 종양내과 의사들은 1-2개월에 한번씩 정기모임을 갖고 치료 과정 중에 환자 진료와 관련하여 발생하는 문제나 제도적인 미흡함을 토론하며 시스템을 안정화한다. 아무래도 병원 규모가 작으면 임상연구에 참여할 기회가 적지만 이 항암치료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대규모 임상연구에 간접적으로 참여하고, 학계 연구의 흐름에 동참할 수 있겠다. 또한 자신이 처음 진단한 암환자도 거점병원을 통해 임상연구에 등록시킴으로써 치료의 기회를 확대시킬 수 있겠다. 이를 위해서는 거점병원과 지역병원의 의사들간에 의료적 커뮤니케이션이 원할하게 가동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할 것이다.

거점 병원은 지역병원에서 중환이 발생하면 즉각 입원하여 치료할 수 있는 pathway를 확보하고지역 병원에서 치료 중 발생하는 이벤트에 대해 모니터링, 직간접적 진료 지원을 해주는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큰 병원인 만큼 임상연구를 중심으로 수행하며 드문 암이나 치료가 어려운 환자를 집중적으로 진료하고, 지역 병원의 의사, 간호사에 대한 교육, 항암치료에 연관되는 지원 인력에 대한 교육도 담당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러한 연계 시스템이 환자 진료과정 중에 혼란없이 가동된다는 전제하에, 환자들도 서울의 대학병원 의사만이 최고의 진료를 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리고, 항암치료 주치의를 믿고, 중요한 이벤트나 재발, 치료 지침의 변경등이 필요할 때는 거점병원으로 의뢰하고, 일상적인 치료가 진행될 때는 집 근처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오히려 손해될 것이 없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하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병원과 의사, 이들을 연결하는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어려운 숙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가끔 지방 협력병원으로 환자를 의뢰하면 수액의 종류가 좀 달라도, 진료의 순서와 스타일에 약간의 차이가 있어도, 보존적 증상해결을 위해 투여되는 일반 약품의 상표가 좀 달라도, 큰 일이 난 것 처럼 그쪽 병원에서 항의하고 서울로 쫒아오는 환자들이 꽤 있다. 미리 설명이 되었으면, 의료진간에 좀더 정보 교환을 밀접하게 했으면, 별것 아닌 일에 환자가 저렇게 당황하거나 분노하지 않았을텐데협력병원의 처우에 대해 불평불만을 털어놓는 환자를 만나면 나도 일일히 설명하기 귀찮아서 그럼 그냥 우리병원에서 치료받으세요라고 정리해버린다. 특별한 임상연구 세팅이 아니라면, 항암치료를 하는 전국 어느 병원에서나 수술 후 대장암의 항암치료는 2주간격의 5FU/leucovorin/oxaliplatin의 병용요법을, 4기 췌장암 치료에서는 매주 gemcitabin, 수술 후 직장암의 치료는 5FU/leucovorin을 근간으로 하는 방사선항암 병용요법을 시행한다. 물론 다양한 regimen을 시도할 수 있고 병원 환경에 따라 임상연구가 덧붙여 지겠지만, 정립된 표준약제로 치료하는 경우에는 굳이 일류병원을 찾지 않아도 전혀 해가 될게 없다.

이런 시스템을 가동하기 위해 여러 모로 정비해야 할 것이 많고, 재원이나 운영 등 복잡한 문제가 많을 것이다. 의사의 진료수준을 표준화해야하고, 병원간 협력을 위해 검사, 투약 과정의 표준화, 행정적 지원방안등도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

뭔가 변화는 귀찮고, 변화시켜봤자 더 나빠질 것이라는 특유의 비관론이 우세하고, 병원이나 의사에 대한 환자들의 인식도 변하기 어렵고, 자기 밥그릇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사들의 이기심도 바꾸기 어려우므로, 내가 궁싯거려본 이 항암치료 네트워크는 그 누군가에 의해 그럴법하다는 동의를 얻어내기도 어려울지 모르겠다.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