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펠로우일기

죽음을 통한 삶의 철학

슬기엄마 2011. 2. 27. 11:22

죽음을 통한 삶의 철학

 

얼마전 국립암센터가 주최한 품위있는 죽음을 위한 사회적 합의심포지움에 다녀왔다. 내가 만나는 환자들은 대개 말기 암환자이기 때문에 환자들은 앞으로 남은 자신의 인생 어느 가까운 시점에 죽음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죽기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의사는 통계적 자료를 바탕으로 산출된 평균 여명을 기준으로 환자의 운명을 가늠하고, 환자와 가족들은 드물게 기적처럼 좋은 예후를 보이는 사례를 믿으며 자신도 그 행운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오늘을 버틴다. 평균과 기적. 그 간극만큼 의사와 환자 사이의 거리가 유지되고 있다.

 

환자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

자신의 병이 암이라는 것, 그것도 완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4기 암이라는 것을 처음 듣는 순간, 어떤 실력있는, 친절한 의사가 이를 고지하더라도 환자와 가족들은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추가적인 치료가 환자를 더 고통스럽게 할 뿐이므로, 더 이상 치료적 관점에서 항암치료를 하는 것보다는 환자의 통증 완화를 목적으로 하는 보존적 치료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설명을 할 때, 호흡곤란이 심해져 중환자실로 가서 기도삽관을 하고 기계호흡을 하지 않으면 오늘밤을 넘기기 어렵겠다면서, 환자의 전신상태와 병의 진행을 고려할 때 기계호흡을 한다해도 환자에게 얼마나 득이 될지 모르겠다는 설명을 들을 때,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하는 순간에 연명치료 중단을 의미하는 사전의료지시서에 서명해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환자와 보호자는 눈앞이 캄캄해진다. 순한 가족들은 숨죽여 울고, 드센 가족들은 그동안 당신이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이제 와서 이게 무슨 말이냐며 멱살을 잡는다.

 

죽음을 고지하는 주치의

1년차 주치의 시절에는 DNR을 받는 일이 쉽지 않다. 악화일로를 걷는 환자를 눈앞에 두고 극도로 예민해져 있는 가족들에게,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더 이상의 연명치료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설명하고 설득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1년차 때 ‘DNR 전도사라는 별명을 가진 동기가 있었는데, 그는 심지어 자기가 모르는, 다른 파트의 환자인데도 동기가 힘들어하면 자신이 대신 가서 DNR을 받아주기도 했다. ‘환자분’, ‘보호자분이라는 딱딱한 말투 대신 어머님, 아버님이라는 호칭으로 손을 꼭 잡고 감정을 실어 목에 가시만 한 개 걸려도 얼마나 아프고 힘든데 이렇게 두꺼운 관을 목 속에 집어넣으면 환자가 얼마나 힘들겠냐며’, ‘어려운 결정이겠지만, 환자를 편안하게 해 드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촉촉한 목소리로 가족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하곤 했다. DNR을 받을 때 자칫 서두르는 인상을 주거나 환자와 가족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여 실수가 생기면 DNR을 받지 못하고 최선을 다하는 치료를 하게 된다. 그렇게 기도삽관을 하고 중환자실에 들어간 환자는 1-2달을 각종 첨단 의료기기와 약물의 도움으로 생명을 연장하다가 가족이 아무도 없는 낯선 공간에서 쓸쓸히 임종하는 경우가 많다. 

 

죽음을 앞둔 환자와 대화하는 법

의대생들을 대상으로 죽음학 강의가 신설된 대학이 있다고 한다. 죽음을 앞둔 환자와 가족들을 이해하며 의사로서 그들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강의 몇시간 들었다고 생기는 것은 아니겠지만, 공식 커리큘럼에서 이를 소화하고 있다면 긍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평균적인 의대생의 사고관념 속에 이런 과목이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할까 우려가 되기도 한다. 최신의 의학 지식은 아니더라도 병원내에서, ‘의료시스템내에서 현명한 의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교양과 상식을 주었던 인문과학 인접 과목 수업은 굳이 수업을 들을 필요없이 족보만 보면 되는 과목이었고 마음놓고 의자에 등을 대고 잠을 잘 수 있었던 고마운 수업이라고 생각하는 의대생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성장한 의대생은 앰부를 잡은 채 MP3를 듣거나 친구의 전화를 받는 인턴으로 성장하고, ‘머리에 피도 안마른 젊은 놈이 무성의하게 DNR을 받다가 멱살을 잡히는 주치의가 될 가능성이 높다.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시험에도 거의 안나오는과목에서 언급되었던 내용들은 의료현장에서 훈련되지 않은 피라미 의사가 진땀을 흘리며 해결해야 하는 골치아픈 사건이 되어 조우하게 된다.

 

평균과 기적의 간극처럼, DNR을 처음 고지하는 젊은 의사와 죽음에 대해 생각할 기회없이, 혹은 가족으로부터 정보가 차단되어 자신의 병명과 상태에 대해 정확히 모르는 환자 사이의 거리가 멀다. 그 간극을 좁히려는 첫 시도가 이번 심포지움의 형태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의학적주제이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주제라고 생각된다. 삶과 죽음에 관한 우리의 철학이 재정립되는 합의의 장이 마련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