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우울한 면담

슬기엄마 2013. 7. 7. 18:11


그녀를 처음 만난건 약 4년전.  

처음 유방암 진단을 받았을 때이다. 

겨드랑이 림프절까지 병이 진행되어서

당장 수술하지 않고 

수술 전 항암치료를 먼저 했었다. 

그때 우리병원에서 진행중인 임상연구가 있었는데 

당시 펠로우였던 나는 그 임상연구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환자 면담을 했던 기억이 난다. 


유방암을 처음 진단받으면 

환자 당사자나 가족들의 충격과 불안은 이루말 할 수 없지만

의사인 나는 솔직히 큰 부담은 아니다.

조기 유방암에 대한 설명

예후와 성적에 대한 데이터가 있고

설명해야 할 부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성의껏 설명하고

질문에 답하면 된다. 


그때는 내가 주치의가 아니었으니

임상연구 설명을 하고 첫 치료를 받고 퇴원한 이후 뵌 적이 없다. 




그를 다시 만난 건 올 1월.

허리 통증이 심해져서 다른 병원에 갔다가 유방암 재발이 의심된다는 말을 듣고 응급실로 왔다.

통증이 심할 법 했다.

간 전이가 심해서 그것 때문에도 등이 아플 수 있고

척추 전이가 심해서 그것 때문에도 등이 아플 수 있는 상황이었다.

뼈전이가 심해서 갈비뼈에도 병이 보였다. 

머리뼈에도 전이가 되었다. 

이 정도면 머리뼈 아래의 뇌막을 자극하여 두통이나 구토감이 생길 수도 있겠다. 


폐경 후 여성에서 

호르몬수용체 양성인데 

유방암 치료가 끝난지 2년이 막 지난 시점에 이렇게까지 광범위하게 전이되는 경우는 흔지 않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재발되면 예후는 좋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다.

평균 기대여명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응급실에서 만난 남편.

그는 부인의 재발에 크게 분노하고 있었다. 

사진을 보여드리며 설명할 때 그는 화면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리고 뒤돌아 울었다. 

정작 환자는 통증 때문에 자기 감정과 생각을 제대로 말하지도 못할 정도였다.


항암치료를 시작하였다. 

서너시간이면 끝나는 항암치료를 하고서도 환자를 퇴원시킬 수가 없었다. 통증 때문이기도 했고, 간 전이 상태가 심각한 상태에서는 항암제 반응이 좋아도 간에 있는 암세포들이 깨지면서 몸에는 위험한 일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일을 경과관찰하였다. 

환자는 몇일 사이에 통증이 많이 좋아졌다. 

위험한 일도 생기지 않았다. 

컨디션이 점점 좋아지면서 10일만에 퇴원하였다.


그들은 재발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많이 분노했지만

다행히 치료반응이 좋아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 갔다.


건축일을 했던 남편은 서울 집을 놔두고 

가까운 강화에 땅을 사서 손수 집을 지었다. 

남편은 성격이 매우 괄괄하고 급한 편이다. 

내 앞에서는 별 내색을 안하셨지만, 외래에서도 무슨 검사 스케줄이 어긋나거나 예정대로 일이 진행이 안되면 큰소리내시는 분이라 간호사들이 힘들어했다. 난 그래도 매번 CT를 찍을 때마다 환자의 병이 조금씩 조금씩 계속 좋아지는 중이라 나는 바깥일에 대해 모른척 눈감고 있었다. 부인을 위한 마음이 사랑이 극진해서 그런거니까 이해해주고 싶었다. 


환자도 치료 중 발생한 여러 크고 작은 합병증을 잘 견뎌냈다.


항암치료가 거듭되는 동안

강화도 집이 예쁘게 완성이 되었다. 

집에 수영장도 만들었다고 자랑하셨다.

서해바다가 바로 눈 앞에 펼쳐지는 집

매일 해지는 광경을 집 마당에서 그림처럼 감상할 수 있는 집이라고 하셨다. 

다 큰 자식들은 서울에서 일하고 

두 부부가 강아지 두마리 데리고 새 집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그들은 내 덕분에 많이 좋아졌다며 늘 감사하다고 했다.


그렇게 나름으로 최선을 다하는 그들에게 

나는 좋지 않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말하고 싶지 않았다.

많이 좋아졌냐고 물어보면 좋아졌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척추 뼈전이로 인한 흉추 미세골절이 악화되면 언제라도 통증이 다시 찾아올 것이고

머리뼈 전이범위도 넓어서 증상이 생기면 방사선치료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뼈도 심각한 상태지만

간이 더 심각했다.

재발된 간의 면적이 넓어서 항암치료를 할수록 간경변 환자처럼 간이 쪼글쪼글 해지고 있었다. 

간수치는 정상이지만 CT에서 보이는 간의 모양은 사실 그리 좋지 않았다. 

아직 암세포들은 남아있는데 간경변 환자처럼 간이 쪼그라지고 있다. 

항암제 반응이 좋으니 치료를 계속하는게 원칙이지만,  

환자의 간기능이 얼마나 버텨줄지 조마조마했다.

7번째 항암치료를 시작하면서 두가지 약제 중에 한가지만으로 치료를 유지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고민하여 7번째 항암치료를 한지 몇일 되지 않아

환자가 예정에 없이 외래에 왔다.

자꾸 토하고 배도 아프고 컨디션이 너무 나쁘다는 것이다.

머리뼈 전이가 악화되었나?

뇌로 전이가 되었나?

병이 다시 나빠지기 시작하는 건가?

입원해서 다시 검사를 하였다.

영상으로 보이는 뼈나 간이나 뇌는 큰 변화가 없다. 고만고만. 종양수치는 약간 상승하였지만 큰 변화는 아닌것 같다. 객관적으로는 큰 변화가 없어보이는데 환자 컨디션이 영 좋지 않다. 느낌이 좋지 않다.  사진에서 뚜렷하게 나빠지지 않았어도 환자 컨디션이 나쁘면 한두달 지나고 보면 CT가 나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뭔가 암세포들의 activity가 활성화되기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입원하여

매일 피검사를 하였다. 

간기능을 확인하기 위해.

입원할 때 2.4 였던 빌리루빈이 오늘은 13.5 다.

지난주 소화기내과 선생님과 상의를 하였다. 그때만 해도 빌리루빈이 7이었다. 

선생님은 사진과 피검사 결과를 비교해 보시면서

회생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딱잘라 말씀하셨다.

해줄게 없네요. 

검사도, 약도 없다.

그냥 기다리는 수 밖에.

 의사인 나도 수용하기 어려운데

그런 말을 환자와 가족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일요일 오후로 면담 시간을 잡았다.

평일에는 남편과 면담 시간을 잡기가 어려웠다.

남편과 1시간이 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이야기를 내가 많이 듣기도 했다.

그에게 최소한 한번은 

주치의인 나한테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게 해주어야 할 것 같았다.


한달전 PET-CT 를 찍을 때만 해도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 않았는가. 

왜 한달만에 말을 바꾸는가. 

이렇게 빨리 간이 나빠질 수도 있는가.

간기능을 회복시키기 위해 도움이 되는 약이 없단 말인가. 


그는 얼굴이 벌게져서 나에게 맹렬하게 질문을 한다.

그리고 한참을 운다.  

부인과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하고 

지금의 자기가 있기까지 

부인이 자신을 얼마나 꼼꼼히 내조하고 도와주었는지 말한다.

부인이 없으면 자기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빌리루빈 3을 넘으면 항암치료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

항암제의 이득보다 해가 많기 때문이다.

빌리루빈 10이 넘으면 갑작스럽게 돌아가실 수 있음을 고지하고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는게 좋겠다고 말한다. 만약 심폐기능이 갑자기 나빠지면 기계호흡이나 중환자실 입실 같은 건 하지 말자고 설명한다.

언제든 의식이 흐려지고 돌아가실 수 있으니 임종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제부터 우리 환자는 빌리루빈 10을 넘었다. 


환자 의식 더 흐려지기 전에

같이 외출해서

은행업무 보시라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 환자 명의로 된 재산은 환자가 죽고나면 정리하는 것이 매우 복잡하고 까다롭다 - 

차마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남편은

환자가 어제 관장을 하고 나니 컨디션이 많이 좋아졌다고

아직 그런 말은 환자에게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어제도 폰뱅킹으로 18자리 숫자를 다 외워 은행업무를 다 보더라고

아직 그렇게 상황이 나쁜 것 같지는 않다고

그러니까 지금 그런 말을 환자에게 하면 너무 충격을 받을 거라고 

조금만 더 경과를 보고 판단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남편과 긴 대화를 마치고

환자를 보러 가니

컨디션이 그리 좋아보이지 않는다. 

빌리루빈 13.5 인 환자 그 자체다.

그런 모습도 남편은 좋아진거라고 믿고 싶은 거다. 

환자는 내가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세수를 다시 하고 로션도 바르고

널부러져 있는 모습 보여주기 싫다며 휠체어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다. 

온 몸이 퉁퉁 부어있다.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그냥 환자를 위로하고 나왔다.

간기능이 아직 회복되지 않아 힘든 것이니 잘 견디시라고.


마음 속으로 앞으로 2주 넘기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언제 다시 말해야 하나...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해야 하나...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은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환자가 조만간 돌아가실 거라는 사실을 우격다짐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있다. 

면담을 하고 나니

아무런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내일 호스피스 팀과 상의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