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나만의 VIP - 3

슬기엄마 2013. 8. 3. 10:34


환자를 보다 보면

왠지 그냥 정이 가고

안쓰럽고 

어떻게든 챙겨주고 싶은 나만의 VIP 환자가 생긴다.


그렇지만 

내가 그렇게 챙겼던 

VIP 환자들은 결국 다 돌아가셨다...


아무리 내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지만

병은 뜻대로 되지 않았고

환자 임종의 순간을 맞이하면 속상하고 허탈한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내 VIP 환자의 가족들은 환자의 죽음을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들은 가족으로서 최선을 다했고

환자의 예후에 대해 담당의사와 충분히 커뮤니케이션했고

사람의 힘으로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에

준비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가신 분들은 다들 연세가 꽤 있으셔서 환자 본인도 당신 죽음에 대해서도 예상하고 계셨고 

가족들의 헌신적인 사랑과 지지를 받으셨던 분들이었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 진료한 나의 VIP 는 30대 중반의 여자 환자이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재발되는 난소암으로 수술과 항암치료를 반복하고 있다.

이제 난소암 치료로 보험이 되는 약이 없다.   

산부인과에서 6년간 치료를 해 왔다.

환자 상태에 따라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그때마다 환자는 좋아졌다.

그러나 얼마전 세번째 수술 후 나에게 환자를 의뢰하셨다.

담당 선생님이 전과하시면서 신신당부를 하신다.

어떻게든 꼭 좀 치료해 달라고. 

젊은 환자고 컨디션 좋으니까 신약으로 하는 임상연구 같은걸 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부탁하셨다. 

ㅠ ㅠ 


그러나 나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수술을 했지만 수술 후 찍은 CT에서는 

그새 다른 곳에서 병이 재발되고 있다.

종양 수치도 1000에 육박한다.

환자 기록을 정리하면서 

난감했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나보다 열배 컨디션이 좋아보이는 그녀

나보다 백배 예쁘고 고운 피부

지금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집안 형편이 어렵기 때문에 본인이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한다. 

내가 정리한 무시무시한 의무기록과 달리 생활인으로 열심히 인생을 살고 있는 그녀.

어떻게 이런 몸으로 치료받는 환자가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 겉으로는 멀쩡해 보인다. 


그녀가 

난소암 치료도 받고

본인의 일상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야 했다.

환자는 저 멀리 지방에 산다.

가족은 만나본 적이 없다.

늘 혼자 병원에 다닌다.

지난 6년간 그렇게 치료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토요일 진료를 하기로 했다.

내 진료 시간표와 상관없이 그녀의 일정에 맞추어 주기로 했다.

보험이 안되는 항암제 치료를 감당할만한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

사회사업팀에 도움을 요청했다.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얼마전 결재가 완료되었다. 

오늘 두번째 항암치료를 하는 날.

이번 치료가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독성이 있었지만 나름 잘 견딘 것 같다. 

다음 번 오실 때 CT를 찍고 종양표지자를 검사해 보기로 했다. 


옷차림도 깔끔하게

화장도 예쁘게

당당해 보이는 그녀

그런데 난 그녀의 외로움과 고뇌를 읽을 수 있다.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는 없다' 그런 말로 위로하기에

그녀는 너무 젊고 삶의 짐이 무겁다. 


그냥 기도할 뿐이다.

계속 나빠지는 병의 속도를 멈출수만 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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