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종양내과 코드 블루

슬기엄마 2013. 8. 19. 23:39


입원한 환자에서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병원 전체적으로 코드 블루 (Code Blue)가 방송된다.


"** 병동 종양내과 코드블루"


아까까지 내 환자 중에 **병동에 입원한 환자는 없었으니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이구,

종양내과 환자한테

코드블루 상황이 생기면 안되는데... 쯧쯧.


4기 암환자는 

병이 치료되지 않으면

조금씩 컨디션이 나빠지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일상 생활을 할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무리 병이 위중하다고 의사가 말해도 

환자나 가족은 내심 지금이 아주 심각한 상황이라는 걸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마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갑자기' 나빠졌다고 생각한다. 


4기 암환자라 해도

병의 정도가 별로 심하지 않거나 전이된 장기가 여러개가 아니고 

항암제에 반응을 잘 해서 치료경과가 좋으면

코드 블루 상황에서 모든 조치를 다 하는 것이 원칙이다. 

중환자실도 가고 인공호흡기도 하고 필요하면 심폐소생술도 한다. 

이번 위기 상황을 넘기면 환자가 다시 회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면 최선을 다한 치료를 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좋아질 가능성이 높은데 

4기 암환자라는 이유로 치료를 소홀히 하면 안된다. 



그런데 때론 환자가 나빠져서 응급상황이 발생해도 최선을 다하면 안되는 때가 있다.

인공호흡기하고 심폐소생술을 해도 좋아질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되면

무리한 치료는 환자를 더 힘들게 하고 의미없는 생명연장 기간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환자 상태가 좋지 않아도 

인공호흡기를 유지한채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 소생이 아니라 - 각종 약과 기술을 이용해서 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그래서 이 환자가 인공삽관 상태에서 회복되지 못하고, 의식도 없이 진정제를 투여한 채 가족들과 얘기도 못하고 남은 여생을 보내다가 돌아가시게 될 거라는 판단이 들면, 적극적인 치료를 하지 않는게 낫다.


그런데 그런 얘기는 지금 당장 내 눈 앞에서 환자가 나빠져서 힘들어 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야할 이야기는 아니다. 상태가 나빠지는 코스로 가고 있다고 판단될 때 미리미리 해야 한다. 환자와도 지금의 상황을 솔직하게 얘기해서 위기상황시 환자의 뜻과 의지가 어떤지 미리 확인하는게 중요하다.


어떤 종양내과 환자에게 코드블루가 발생하면 이후 과도한 치료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미리 그런 상황을 예상하고 준비했어야 한다. 그래서 나도 방송을 듣고 혀를 끌끌 찬 것이다. 

그 방송이 내 환자로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치프레지던트에게 전화가 왔다. 내 환자라고.


얼마전 전과받은 환자이다.

이미 표준 항암치료를 다 받은 상태였다. 

나는 항암치료를 서두르고 싶지 않았다.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좀 기다렸다.

나를 만나고 한달이 넘었을 때 배에 복수가 차고 빵빵해지기 시작한다. 

반응율이 좋은 약이 아니라 내심 이거 해봤자 별로 도움도 못 받고 괜히 항암제 때문에 환자가 고생만 하는 거 아닐까 우려가 되었지만, 컨디션이 더 나빠지면 항암치료를 못하게 될거 같아 그나마 지금이라도 항암치료를 해보는게 마지막 시도가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치료를 시작했다.


2주기 항암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임상적으로 별로 차도가 보이지 않는다. 

남편과 먼저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 보는 남편은, 그동안의 경과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치료를 적극적으로 하고 싶지 않다는 내 말을 수용하지 못했다. 두달전까지 등산도 다니고 밥도 잘 먹고 집안일도 잘 했는데, 왜 그런 말을 하냐고 하였다. 행여라도 환자에게 그런 말을 하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환자도 뭔가 많이 불편해 보이는데, 잘 참는다. 그리고 말끝마다 열심히 치료하겠다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내가 너무 최선을 다하지 말자고 하는 것에 대해 매우 실망한 눈치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 주기를 맞춰서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노력하였다. 힘든 몸을 운동도 하고 고기도 열심히 먹으려고 애썼다.

얼마 안되는 기간 내에 몇번 입원을 반복하였다.

쉽게 컨디션이 떨어졌다. 


그러던 중 몇일 전 3주기 치료를 시작했다. 

전신쇠약감이 너무 심해서 오늘 일반외래를 통해 입원하신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아직 보고를 못 받은모양이다.

입원 당시 피검사를 보니 백혈구, 혈소판 수치가 매우 낮다. 호중구 감소상태에서 열도 있었던 거 같고 감염증이 동반된 것 같다. 


그렇지만 정작 응급상황이 발생한 것은 소변 보면서 힘주다가 미주신경성실신 (Vasovagal syncope)을 한 탓인 것 같다. 순간 의식을 잃고 혈압도 떨어지고 그랬나보다.

기관삽관을 막 하려는 찰나에 우리 똑똑한 치프가 가서 기관삽관을 하지 않고 경과관찰을 하게 되었다.

환자가 실신 후 의식이 깨었고 좀 좋아졌다. 

기관삽관을 안하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기관삽관을 했으면 영락없이 중환자실 행이다. 


처음 나간 동맥혈 검사에서 pH가 7.1 이다. 

여하간 큰일날 뻔 했다. 

앞으로 몇일은 마음 못 놓겠다. 


남편은 오늘 상황을 보고서 

그동안 내가 했던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는 모양이다. 

항암치료를 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10 인데 예상되는 손해가 10 이상으로 더 크다면 

굳이 열심히 항암치료 하고 싶지 않다고 한 나의 말.

그 손해가 이렇게 심각하게 나타나는 걸 보니 

최선을 다해 끝까지 항암치료를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말을 이제야 이해하시는 것 같다. 


환자 나이가 별로 많지 않으니

가족된 마음으로 얼마나 안타깝겠는가.

그런 사람을 앞에 두고 내가 더 치료를 안하고 싶다고 했으니

만난지 얼마안된 주치의가 원망스럽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나에게 이들 가족은 뚱한 반응을 보였었다.


이번 고비를 잘 넘기고 

환자가 회복되면 

당분간 항암치료하지 않고 좀 쉬자고 했다.

고비를 잘 넘겨서 이 가족에게 의미있는 시간이 주어지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