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원망어린 문자메시지

슬기엄마 2013. 6. 18. 22:23


70세 가까운 나이도 나이지만  

워낙 위험요인이 많았다.

20년전 흉선암 수술 후 생긴 심장부정맥, 

그리고 수술 이후 늘어진 심방에 오랫동안 매달려 있는 혈전,

심장기능이 좋지 않으니 수액 공급을 조금만 잘못해도 신장 수치가 나빠지기를 수차례.


온 폐가 허옇게 되어 응급실로 오셨다. 

폐전이가 맞기는 한데 원발병소를 확실히 알 수 없었다.

원발병소를 정확히 찾기위해서는 조직검사와 여러 검사들이 필요했는데

환자는 전신마취를 할 수도 없었고

제대로 누울 수도 없어서

검사를 제대로 하기도 어려웠다. 

 

정황상 난소암 폐전이로 진단명을 붙이고 항암치료를 시작했지만

원발 병소도 백프로 정확하지 않았다.

그래도 난소암으로 진단명을 붙여야 항암제를 쓸 수 있는 폭이 넓었고 

의학적인 범위 내에서 난소암으로 진단할만한 근거들이 있었으니 

난 여러모로 유용하게, 과학적으로 손색없이 진단명을 붙이고

항암 치료를 시작하였다. 


전 폐야에 전이가 진행된 상태라 환자가 제대로 누워서 주무시도 못한 채 기침하고 숨차하면서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항암치료 밖에 증상을 호전시킬 방법이 없어서 죽음을 각오하고 치료를 시작하였다.

항암치료는 6시간이면 되지만 

1주일 이상 입원을 해야 했다. 

6번의 항암치료를 통해 기적처럼 폐전이는 많이 좋아졌고 환자도 편안해 졌다.

그러나 그 6번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 흡입성 폐렴, 뇌경색, 급성신부전 

그런 합병증의 이벤트가 지나갔고

매번 피검사도 아슬아슬, 

환자 상태도 아슬아슬.

그러나 그 고비를 넘겼다.

그렇게 1년 4개월이 지났다.

항암치료는 처음 6번만 하고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돌아가실 가능성이 더 높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 주 돌아가셨다.

내가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 사셨다고 생각했다.

가족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히 임종하시지 못하고

한밤중에 갑자기 호흡부전으로 돌아가셨다. 

그 점이 죄송했다. 

환자가 너무 숨차해서 진통제를 투여하기 시작한 것과 관련이 부분적으로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통제를 드리지 않았으면 더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종양내과 의사로서 

환자의 임종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코스였다고 생각하고

마지막에 진통제를 드린 것은 잘했다고 생각한다.

공식적인 서류로 DNR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수차례 위급한 상황이 왔을 때마다 

난 더 나빠지면 심폐소생술은 하지 말자고 여러 차례 얘기해 왔었다. 

가족도 동의하였다.

그리고 좋아져서 퇴원하실 때 슈퍼맨 할머니라고 칭찬해드렸다.

또 좋아지셨네요. 

난 정말 기적처럼 좋아지는 할머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폐전이는 조금씩 나빠지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환자는 누워잘 수 없게 되었다.

심장 문제가 아니라 폐전이 때문이라는 것을 확정하였다. 


돌아가시던 밤

공식 DNR 을 받았다는 기록이 없으니

당직 레지던트가 환자 상태를 보고 심폐소생술을 시작해 버렸다.

나에게 바로 연락이 되서 

나는 중단하라고, 그냥 돌아가시게 하라고 지시했다.

2-3분의 심장압박이 있은 후 

심폐소생술은 중단되었고 

그 후로 환자는 주무시듯 돌아가셨다. 


아마도 그렇게 험악한 상황이

또 자식들이 임종을 다 함께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이

자식들을 속상하게 했나보다.


삼오제를 지내고 오신 따님이 오늘 문자를 나에게 보낸다.

어머니가 죽는 순간을 그렇게 몰랐었냐고...

정신없이 장례를 치르고 삼오제를 지내고 보니

여러가지로 아쉬움과 후회가 많으신가보다.

 

그 자식들이 얼마나 효자 효녀였는지

얼마나 최선을 다해 어머니를 모셔왔는지 나는 잘 안다.

병원을 왔다갔다 할 형편이 안되서 2달 넘게 장기입원을 해 가면서까지 

여러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드렸고

급한 일이 있을 때는 연락하시라고 내 전화번호도 알려드렸다.

아마 그들도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자식으로서 어머니 가시는 그 마지막 길이 

잘 준비되지 못한 채

황망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나보다. 

연속되는 문자 메시지를 받으니

한편으로는 나도 면목이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도 속이 상한다. 


나는 지금이 좋은 때라고

언제든 돌아가셔도 더 이상 할말은 없는 때라고

마음으로 준비하셔야 한다고 여러차례 이야기해왔다.

늘 환자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안좋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자주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따로 몇번이나 이야기를 하였다.

그들도 그런 나의 설명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동의가 되지 않나보다. 


임종의 순간을 가족과 함께 평화롭게 보내실 수 있게  해드리지 못해 죄송하지만

암환자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는 경우가 더 많다.

결국 암으로 돌아가실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는게 대부분 가족들의 반응이다.

얼마나 더 자주 확실하게 못을 박아야 하는걸까?


그냥 원망을 듣고 마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