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전과한 첫날

슬기엄마 2013. 6. 12. 22:03


28세 여자 

4살 5살 먹은 두 아들의 엄마

자궁경부암 폐전이.

폐전이 후 항암치료를 두번 했는데 효과는 없고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수치만 왕창 떨어져서 고생했다.

다음 치료를 생각하지 못하고 쉬고 있던 중 

갑자기 기침이 나고 열이 나서 병원에 입원하였다.

응급실 오기 전전날부터 컨디션이 않좋았는데 

병원에 오고 싶지 않았다.

어린 두 아들을 맡길 곳이 없었다.

그러나 숨쉬는게 힘들어 결국 병원에 오고 말았다.


오른쪽 폐기관지 근처의 종양이 커지면서 기관지를 눌러

폐가 쭈그러들었다. 무기폐. 엑스레이가 허옇다.


그런 상태에서 나에게 협진이 의뢰되었다. 

일단 열이 계속 나니까

기관지 내시경을 해 보거나 기관지에 스텐트를 넣어보는게 좋을 것 같다.

미리 처방을 내 놓고 검사 스케줄도 가능한지 알아보았다.

그리고 환자를 만나러 갔다.

산소를 하고 누워있는 환자.

애기 엄마인줄 몰랐다.

오늘 종양내과로 전과될거다. 기관지 내시경을 해봐야 할 것 같다.

그런 얘기를 하는데

환자가 강력하게 기관지 내시경을 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나는 젊은 아가씨가 투정부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말해도 검사를 거절했다.

가족 내 보호자와 상의하고 싶다고 했더니 저녁에 아버지가 오신다고 했다.


저녁에 병동 간호사실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는 일용직으로 건설현장에서 일하면서 

그날 그날 일당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고

환자는 두 아이의 엄마이며 남편과는 4년전에 이혼한 상태에서 연락이 두절되었다고.

아이들은 지금 동네 아줌마가 봐주고 있다고.


아버지에게 환자 사진을 보여주면서 상태를 설명하고 자궁경부암에 효과적인 약이 별로 없어서 앞으로 예후를 긍정적으로 예측하기 힘들다고. 스텐트를 넣든 방사선 치료든 뭔가로 환자의 폐를 펴고 항암치료를 잘 해서 효과를 봐야 하는데  만약 그렇지 못하면 아마 앞으로 1년도 어려울 것이라고.


아버지는 산부인과에서 대략 이야기는 들었다고, 눈물을 글썽이면서, 하는데까지 최선을 다해달라고 부탁한다. 내가 들으면 뭐 알겠냐고 그냥 선생님만 믿고 치료하겠다고... 처음 만난 나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움켜 잡을 수 있는 마지막 지푸라기였다. 

그러나 나는 처음 만난 환자의 보호자에게 험악하고 무서운 말을 먼저 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환자가 내 뒤에 와서 내 설명을 듣고 있었다.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한다.

아이들 때문에 빨리 집에 보내달라고 한다.

방사선 기계가 한대 고장나서 치료 일정이 미뤄지는 것 같으니

일단 항암치료하고 퇴원하겠다고 한다.

매일이라도 올테니 퇴원시켜달라고 한다. 


Topotecan + cisplatin

과연 그 약을 맞고 집에서 어린 아들 두명을 돌볼 기력이 있을까?

이미 복부에 방사선 치료를 받은 상태라 혈소판 수치가 떨어지면 출혈이 올 가능성도 높다. 이전 항암치료 받을 때도 보니 간간히 출혈성 이벤트가 있었던 것 같다. 


집에 가서 견딜 수 있겠어요?

이 항암치료 힘들어요. 예전에 받은 것 보다.


힘든거 알아요.

그래도 애들을 보고 있으면 기운이 나던걸요.

병원에 이렇게 맥없이 누워있는 것 보다 나아요. 


어떻게든 방사선 치료 일정을 앞당겨 보려고 했지만 어려웠다.

허연 폐를 그냥 두고 오늘 항암치료를 시작하였다.

너무 아슬아슬하다. 


사회사업팀에 지원을 요청해 본다. 

그곳에서부터 뭔가 도움의 손길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단돈 얼마라도 이 가족에게 필요할 것 같다. 

내일 퇴원하겠다고 하는데

이런 환자를 퇴원시키는게 맞는 걸까?


명함을 줘야겠다. 

컨디션 안좋으면 바로 연락하라고 해야겠다.

그리고 

기도해야겠다.

오늘 어떤 환자로부터

나에게 치유의 기적을 보인 마리아상이 매달린 묵주를 선물로 받았다.

다른 환자가 나에게 준 사랑으로

다른 환자를 위해 기도해야겠다.


나는 신심이 약한데

정말 기도하고 싶을 때가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