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회진 중 임종

슬기엄마 2013. 5. 31. 11:53


아침 회진을 가니

수축기 혈압이 80mmHg 이다.

몇일전 입원하신 후로 밤에는 수면제를 드리고 있다. 6-8시간 정도 주무시게 한다.

토하느라고 잘 못 드시니 무조건 자는 것이 환자에게 필요했다.  

Terminal sedation.


숨쉬는 것이 어제와 다르다. 

cheyne-stroke pattern.


맥박을 짚어보고 심장소리를 들어본다. 소리가 아주 약하다. EMR 상에서는 아침 맥박이 120회 정도였는데 지금 내가 손목을 잡아보니 60회도 안되는 것 같다. 

다시 혈압을 재 본다. 70mmHg.


내 눈앞에서 환자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는게 느껴진다.

내 또래 환자의 딸과 함께 임종을 기다린다. 

사실 기다렸다기 보다는 순식간에 다가와 버렸다. 

청진하고 동공도 비춰보고 맥박도 짚어보고 꼬집어서 통증반응도 확인하고

뭐 그렇게 몇가지를 확인하는 동안

내 눈앞에서 

맥박이 느려지고

혈압이 안 잡히고

환자의 호흡횟수가 줄어간다.


모니터를 붙였다.

EKG flat 을 찍고 사망선언을 해야 하니까. 


가족들은 이미 다 준비가 되 있었지만 그 날이 오늘일 줄은 몰랐다.

내일 집 근처 요양병원으로 전원가기로 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잠에서 깨어나신 후 얼마 안되었는데 이런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우리 엄마 나이의 난소암 환자. 

복막증이 진행되면서 위에 전이가 되었다. 위장 운동이 잘 안되니 음식을 못 드시고 토하기를 몇달째. 원래 풍채가 좋은 분이셨는데 지금은 아주 몸집이 작아졌다. 아기처럼 아주 작아졌다.


직계 가족을 암으로 보낸 적이 있던 환자는 자신이 어떻게 죽을지 알고 있었다. 

더 이상 쓸만한 항암제가 없다는 말을 듣고도 알겠다고 하셨다. 

외래에 오시면 무슨 증상 말하고 무슨 약이 나에게 잘 맞는거 같더라 그렇게 몇달을 외래로 다니셨다. 

암이 진행하면서 생기는 증상이라 일반적인 약을 먹어도 증상은 해소되지 않았다. 위에 전이가 되어 위장운동이 안되니 암만 소화제를 먹는다고 소화력이 좋아지겠는가. 가능하면 환자 마음에 상처 안 주는 범위 내에서 설명을 하려고 했었다. 약을 먹어도 왜 좋아지지 않는지에 대해. 


그래도 환자는 똑같은 증상을 계속 호소하였다. 나중에는 결국 소화제가 아니라 진통제를 바꾸고, 먹는 진통제가 아니라 붙이는 진통제로 바꾸는 것이 필요했다. 뭘 해봐도 별로 였다. 환자는 속이 거북하다, 음식을 먹고 싶은데 항상 뱃속이 더부룩하다, 가스만 차는 것 같다, 생목이 올라오는 것 같다 그런 똑같은 말을 반복하시니 난 정말 미칠 것 같았다. 

진통제 용량을 올리면 구토가 너무 심해서 증량할 수가 없었다. 항구토제를 주사로 드리면서 조금씩 용량을 올려보지만 토하는게 너무 심해 환자가 진통제를 거부한다. 자기는 아픈데 없다고, 그냥 소화가 안되는 것 뿐이라며 진통제를 안 쓰셨다.  


입원횟수가 점점 잦아진다. 

요양병원으로 가보기도 했지만, 증상 조절이 잘 안되서 결국 다시 오신다. 점점 작아지는 몸집, 이제 말도 잘 못한다. 기력이 없어서. 

 

그런 환자가 어제 밤 주무시기 전 딸에게 그러셨다고 한다. 


선생님 입장 생각해서 여기 계속 입원해 있으면 안된다고. 

토요일날 동네 요양병원으로 가자고. 

꼭 가야 한다고. 


왜 그러셨을까? 왜 어제 밤에 따님께 그런 말씀을 하시고 주무셨을까? 

내가 환자를 너무 쫒아낼려고 했을까? 

우리 병원에서 더 이상 할 검사나 치료는 없었다. 지금 쓰는 수면제와 영양제만 드리면 되는 상태이니 우리 의견대로 치료를 지속해 줄 수 있는 요양병원으로 전원했으면 한다는 내 이야기를 들으신 모양이다. 환자 마지막 가시는 길에 내가 그렇게 불편한 존재가 된 것 같다. 


바쁜 아침 회진 중에 

환자 임종 선언을 하게 되었다.

아침 8시 15분.

따님과 나 둘이서 임종을 지켰다. 

아주 편안하게, 주무시듯 돌아가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에 무슨 위로가 필요하겠는가. 같이 그 순간을 지켜드리면 되는 것이지.


환자의 임종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외래에서 그분이 나에게 했던 주된 호소,

콧줄을 끼우고 편하다며 고맙다고 했던 날

복막증인데 배가 많이 안 아파서 다행이라고 했던 말 

약을 조금만 바꾸면 설사하고 많이 힘들어 하셔서 미안해 하는 나를 보면 

'내가 보기와는 달리 원래 예민한 사람이야' 그렇게 농담을 하며 오히려 내 마음을 위로해 주시던 분.

검사를 하고 나면 사진을 보고 결과를 듣고 싶어하셨다. 

자꾸 나빠지니까 보여주기 싫다고 했더니 그래도 봐야지, 나도 살 날을 알아야지 하셨다. 

그렇게 나와 대면해서 했던 말과 이야기, 그 장면들이 순식간에 스쳐지나간다.

마지막에 품위를 잃지 않고 고요하게 임종을 하신 것 같아 다행이다.


내 앞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심장박동이 멈추는 그 순간을 함께 한 환자.  

그는 나에게 무슨 메시지를 주고 싶으셨던 걸까?

말기 암환자 전원시키지 말라고? 

치료받던 우리병원에서 임종하게 해달라고?

어제 밤 딸에게 했던 마지막 이야기가 

꼭 요양병원으로 전원가야 한다는 말씀이셨다고 하니

내 마음이 찔린다. 

마지막 가시는 길 지켜드린 걸로 죄송한 마음을 대신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