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환자가 미워질 때는 '리셋'해 보자

슬기엄마 2013. 5. 29. 22:34

우리 환자들이 알면 깜짝 놀라겠지만

(어쩌면 이미 다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난 가끔 환자를 미워한다.

아주 미울 때가 있다.

회진가기도 싫고 얘기하기도 싫다.

마음속으로 그렇다.


그렇지만 

겉으로는 안 그런 척 한다. 

하지만 내 마음이 그렇다는게 티가 날지도 모른다.

내가 워낙 성격이 욱 하니까. 

난 감정을 잘 숨기지를 못한다.


하지만 그 정도로 날 위선자라고 하지는 않겠지? '

인간이면 어느 정도 그런 면이 있지 않을까 합리화한다. 


그러나 내 직업이 의사인 이상,

마음 속으로 환자가 미울지언정 - 마음 속으로도 모두를 사랑할 수 있으려면 종교적인 힘이 필요- 

겉으로는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고 

최소한 그렇게 환자를 미원하는 자신을 반성할 줄은 알아야 한다.

그것은 본성이 아니고 훈련과 교육에 의해서 습득되어야 하는 직업 윤리이다.


그래서 나는 늘 노력하지만

그래도 미운 환자가 있기는 있다.  

아주 속을 끓이는 환자. 아침마다 그를 만날 생각을 하면 심장 박동수가 빨라진다. 긴장하는 모양이다. 

회진 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공허한 대화를 하지 않으려면 말을 잘 해야 한다. 

암튼 환자를 만나는 내가 편치 않다. 


그러나 나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이렇게 마음을 편치 않게 하는 환자를 만나면

그건 그가 나에게 어떤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그가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는 것은 뭔가 그의 몸과 마음에 균형이 맞지 않는 뭔가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걸 빨리 찾아야 한다. 

그런 느낌이 들 때는 

나를 성가시게 하고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그의 불평에 다시 한번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심기일전하고 다시 들을 수 있도록 마음을 '리셋'해야 한다. 

그걸 놓치면 문제가 생긴다. 


그는 

원래 산을 좋아했다.

암벽등반도 하고

산악 자전거도 타는 사람이었다.

아직 미혼인 그는 자유롭게 여행하고 산에 다니며 바람처럼 가볍게 사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성격이 지나치게 논리적이라는 것이 나를 부담스럽게 했지만

그는 의사말을 잘 따르려고 노력하고, 애쓰는 환자였다.  


이번 입원 후 컨디션 조절이 잘 안된다.

미루어 둔 항암치료는 아마 못할 것 같다.

나는 항암치료를 못할 것 같다는 말을 하면서

앞으로 치료는 어렵고 치료를 하지 못한다면 복수도 잘 조절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내 말을 일관적으로 '부인'하는 태도를 보였다.

내 말이 잘 안통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환자가 미워졌다. 


오늘 그가 왜 그렇게 내 설명을 부인했는지, 내 말을 안 들을려고 했는지 알게 되었다.

죽기 전에 좋은 산악 자전거로 강원도 자전거 여행을 해보고 싶었단다.

그래서 남은 돈을 다 모아 하이킹 장비, 산악 자전거 등등의 장비를 주문해 놓은 상태라고 한다. 그는 새 자전거를 타고 강원도 산맥을 넘어 동해 바다를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내 말을 듣고 싶지 않았나 보다. 

좀 좋아지는 것 같다고, 오늘 내일 좀 먹어보면서 노력하면 좋아질 것 같다고 말한다. 

내가 보기에 배는 점점 불러오고 자꾸 토하고 안색은 창백하고 다리는 자전거 패달을 밟을 수 없을 정도로 이미 너무 가늘어졌고 한끼에 밥 몇 숟가락 먹지도 못하고 있는데

그는 조금만 노력해 보면 좋아질 것 같다고 말한다. 

내 말을 인정하는 순간, 그는 자전거 여행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니까. 


그런 환자를 미워한 내가 미안하다.

환자의 마음에는 

그렇게 이루고 싶은 내일이 있었는데

나는 그저 내 말이 먹히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그에게는 한달의 시간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는게 좋을지 정답은 없다. 내가 그걸 책임질 필요도 없다. 

그렇지만 애써서 노력하고 있는 그의 마음이 안쓰러우면서도 답답하다. 어떻게 도움을 드려야 할까?


난 

이렇게 애쓰며 좋아질 수 있을 거라며 빋고 가까스로 몇일/몇주를 버티다가 

갑자기 나빠져서 돌아가시는 분들을 많이 봤다.

그래서 그나마 주어진 시간 동안

유언도 못하고 

생활 정리도 못하고

가족들에게 아무런 말도 못하고

그냥 떠나간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는데...  

그래도 그것까지 내가 다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자기 운명대로 살다 가는 것이겠거니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