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지금이라도 독감백신 맞을까요?

슬기엄마 2013. 1. 17. 11:43

 

아침 병동 회진을 돌고 연구실로 들어오는데 전화가 온다.

 

여기 누구네 집인데

독감 백신 맞아도 되?

 

다짜고짜 전화를 해서

본인이 누구신지, 그 누구가 누구인지도 모르겠는 질문을 하시니

마음속으로 욱 했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여쭙는다.

 

실례지만 전화하신 분은 누구신지요?

그 누구가 우리 병원 다니는 환자신가요?

저에게 진료받는 분이셔요?

 

말씀을 들어보니

환자는 60대 후반의 유방암 수술받은 할머니고 나에게 유방암 치료를 받으셨는데 얼마전 치료를 마친 분이다.

전화를 하신 분은 할아버지고 할머니보다 연배가 높으실테니 최소한 60대 후반은 넘긴 연세겠지. 어떻게 내 연구실 전화번호를 알아내셨는지 모르겠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연세를 고려해서 욱한 마음을 좀 가라앉혀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를 걱정한 할아버지가 전화하신 거라고 생각하고 마음 풀기로 했다.

 

솔직히 개인 연구실로 환자가 직접 전화를 걸어 오면 솔직히 당황스럽다.

나도 내 시간이 필요한데, 일상을 진료의 연속선상에 있게 하면 그 어떤 것도 효율이 떨어진다. 또 다른 일을 하고 있다가 환자 이름만 듣고는 기억이 안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EMR을 열어서 차트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른 일을 하다가 이런 전화를 받고 EMR을 열어서 환자 정보를 확인하는 일이 반복되면, 내 일에 집중이 되지 않고 환자 상태도 전화로 확인하는 셈이 되기 때문에 불법진료에 속한다. 뭔가 궁금하다고 불쑥 나에게 전화를 해서 상담을 하면 나는 어떻게 살란 말인가. 물론 그런 환자들이 많지는 않다.

 

할머니 성함만 듣고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정보를 확인하는게 필요했다. 할머니 병원 등록 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더니 저 멀리 할머니가 계신지 큰 소리로 물으시는게 들린다.

 

임자, 병원번호 몇 번이여? 

 

할머니가 직접 전화를 못하고 할아버지가 대신 전화를 걸어주신 모양이다.

 

 

그런데 새삼 왜 이 시점에 독감백신을 문의하시는거지?

 

작년 말에 필요한 환자들에게는 다 처방을 했었는데, 그 무렵 할머니는 당신 치료가 끝나서 예방 접종 기간에는 병원에 안 오셨었나 보다.

 

할아버지랑 통화를 끊고 보니

질병관리본부에서 오늘자로 전국에 인플루엔자(독감) 유행 주의보를 발령했다는 뉴스가 있다.

예년보다 발생 환자수가 많아 유행 기준을 넘었다고 한다.

 

백신을 맞으면 항체가 생기는데 시간이 한달 정도 걸리기 때문에

지금 백신을 맞는다 해도 한창 발생하고 있는 독감을 예방하는데는 도움이 안되지만,

향후 유행기가 8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하니

백신 접종을 안하신 분들은 지금이라도 하시는게 좋겠다.

 

할머니 할아버지 두 양반이 TV 보다가 뉴스보고 걱정이 되서 전화하신거구나...

나를 주치의라 믿고 전화번호를 찾아 연락을 하려고 했던

그 마음이 애처롭다.

 

 

 

 

 

 

 

 

 

 

 

 

'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 주치의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운 그녀  (2) 2013.01.22
우리의 김자옥씨들  (2) 2013.01.19
토론을 하면 할수록  (2) 2013.01.16
넋두리  (2) 2013.01.15
삭감 이의신청  (3) 2013.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