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펠로우일기

조직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어댑터

슬기엄마 2011. 2. 27. 11:47

조직과 개인을 연결해 주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을 무척 좋아했고, 그래서 내 꿈은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대학교 4학년 교생실습을 나갔을 때, 여전히 우중충한 학교 건물, 한문 이름의 출석부, 교실 정중앙에 매달린 궁서체의 어색한 급훈, 그렇게 구리구리한 학교 안에는 보석처럼 빛나는 아이들이 살고 있었고, 나는 한달의 실습기간 동안 그들과 신나고도 유쾌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 무렵 아마 난생 처음으로, 그리고 유일하게 요즘 연애하니? 예뻐지는 것 같다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아마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예뻐졌던 시기였나 보다.

 

끝없는 나락 속에 떨어진 자존심, 존재감없는 1년차 주치의 시절을 보내며 몸과 마음이 지쳐가던 11, 나는 한 3년차 선생님을 만나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그 선생님은 나에게 좋은 선배란 어떤 사람인지, 좋은 백커버는 어떻게 후배를 도와주는지 귀감을 보여주었다. 만성기관지 폐쇄증으로 이산화탄소가 몸안에 축적되어 2달 사이에 3번이나 기관삽관을 하고 중환자실을 오갔던 환자가 호흡이 고르지 않고 의식도 흐려지는 새벽 1, 나는 ABGA CO2 retention이 다시 되는 걸 보며 4번째 기관삽관을 해야 하나 고민하였고, 의학적으로 객관적인 적응증의 기준을 따르면 당연히 기관삽관을 하는게 맞겠지만, 전신상태가 아주 좋지 않아 이번에도 기관삽관을 하면 영영 기계호흡을 떼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꾸 망설여졌다. 환자의 횡경막 근육이 조금씩 지쳐가고 의식이 흐려지며 잠에 빠져드는데, 우물쭈물 시간을 보내다간 큰일나겠다 싶어 새벽 2시에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병원 내에 계셨는지, 당장 병동으로 내려와 아침까지 침상을 함께 지키며 환자를 봐주셨다. 힘들고 길었던 밤, 그는 조근조근 뭔가를 많이 가르쳐주었다. 매주 일요일 오전에는 병원내 까페에서 파는 비싸고도 맛있는 까페라떼를 사가지고 평소보다 늦게 병동에 나타났다. 교수님이 안오시는 일요일이라도 천천히 회진을 도는 여유를 즐기자며그를 보며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존재가 되리라, 3년차가 되면 1년차를 진짜 사랑하고 많이 가르쳐주고 도와주는 선배가 되리라결심했었다. 그러나 막상 년차가 올라가니 후배들을 챙기기보다 내 앞길을 챙기는 것조차 벅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전 학회에 갔는데, 예상치 못하게 나보다 2년 아래인 트레이닝 병원 후배들을 만나게 되었다. 내가 3년차일 때 1년차로 일하던 그들이니 내가 오죽 닥달하고 혼내고 괴롭혔겠는가! 그런데도 그들을 보자 어찌나 반갑던지! 그 반가움은 어디서 기원한 것일까? 물론 그들은 나를 그다지 반기지는 않는 눈치였다. 옛날이 생각났겠지

 

같은 대학에서 같이 공부하고 실습하고 인턴, 레지던트로 일하던 동질적 집단에서 벗어나 낯선 병원에서 fellow를 시작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관행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도 다르고 처방 양식도 다르고 응급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notify system, 푸쉬하는 시스템도 달라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해결의 노하우를 적용할 수 없었다. 초창기, 뭔가가 많이 다르고 적응되지 않아 힘들었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낯설고 그래서 마음터놓고 환자에 대해 토론하는 기회를 갖기 힘들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나는 전문의답게 쿨한 fellow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아랫 사람들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며 일을 시키는 사람이 되어서도 안되었고, 무식을 티내서도 안되었다. 말도 우아하고 교양있게, 그들과는 직장인 만큼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윗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내 능력의 부재 탓인지 초반 2-3개월은 참으로 어색하고 마음편치 않게 지냈고, 병동제라 접촉해야 할 1년차 주치의들이 너무 많아 내 방식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혼도 내고 분통을 터뜨리곤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1년차들이 점점 진화하기 시작했고 2년차들은 똑똑해지기 시작했다. 맘이 통하는 후배들도 생겼다. 각자 병원내 어디선가 일을 하면서 EMR 쪽지 시스템을 이용해 환자 관련 오더만 전달하는 관계가 아니라 안부도 묻고 걱정도 해주며 인간적인 교감을 쌓기도 했다. 나를 놀라게 하는 후배들도 생겼다. 저널을 들이대며 얼마전에 죽은 그 환자는 아마 *** 균에 의한 패혈증 때문이었을 지도 모르겠어요. 우리가 ***를 커버하는 안티를 안 쓰고 있는데, 그럴 경우 합병증으로 드물게 **** 증상이 발생하여 사망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라며 나의 코멘트-환자 expire 하기전에 culture 나갔으니까 나중에라도 결과 확인해보세요-를 잊지 않고 있다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인다거나, ‘이제 증상없으니까 이 약은 그만 쓰죠라고 말하면 선생님, 그 약은 *** 이유 때문에 쓴건데요, 그럴 경우 일단 쓰기 시작하면 1주일 이상 써주는게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요라며 당당하게 나의 근거없는 주장을 받아치기도 하고, 내가 안티를 바꿉시다. 환자 상태가 좋지 않네요라고 하면 지금 마지막 안티 들어간지 48시간이 안되었고 환자 vital sign도 안정적이며 임상적으로 특별히 악화상태를 보이는 것은 아니니 배양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바꿔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라며 조목조목 내 오더를 따지기도 한다. 내심 어려울 거라 생각하며 부탁했던 일들을 어떻게든 처리해 놓고 오후 회진 때 가서 깜짝 놀라며 어떻게 해결했나요?’ 라고 물으면 제가 힘좀 썼어요라며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씩 웃는다. 별 공치사는 하지 말아달라는 제스쳐와 함께.

 

이곳 삼성서울병원의 전공의들은 성균관 의과대학 출신의 인턴, 레지던트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전국 여러 대학의 각계 각층에서 모인 의사들이 더 많다. 그래서 누군가가 일 하는게 맘에 안들면 제 어느 학교 출신이니?’라며 쉽게 개인의 특성이나 한계를 집단으로 귀속시키는, 역사와 전통이 오래되었고 비교적 균질한 집단으로 구성된 대학병원에서 가장 먼저 족보를 따지는 관행이 자리잡기 힘들어 보인다. 그저 누구누구가 열심히 일하고 똑똑하고 누구누구는 게으르고 말도 안듣는다는 평가는 있을지언정, 개인의 특성을 그가 속한 조직의 특성으로 함부로 환원시켜 일반화시키는 나쁜 문화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게 다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달리 보면 보다 친밀한 선후배 관계,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밀도있게, 생활속에서 형성되기 어려워 보인다. 자칫 형식적인 관계, superficial한 관계로 전락해 버릴 위험성도 있다. 의사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선생님보다는 가까운 선배의 조언이 필요할 때, 환자 관련, 내 진로 관련 여러 의논할 일이 생겼을 때 이곳 전공의들이 선배를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기 혼자만의 생각으로 너무 쉽게 꿈을 포기하고, 자기가 알고 있는 만큼의 세상 경계 안에서 미래를 결정해버리는 모습을 보면 참 아깝다 싶다. 너무 끈끈하고 얽어매는 지겨운 인간관계도 문제고 싫지만, 쿨하다는 미명하에 서로에게 싫은 소리 안하고 관심보이지 않고 일로만 연결되는 썰렁한 인간관계를 받아들이기도 싫다.

여하간 이미 형성된 기존 사회의 질서조차 재빨리 쫒아가기도 힘든, 유연성이 굳어버린 나이에 바뀐 조직에서 내가 잘 적응하게 도와주는 후배들이 고맙다. 콘센트에 플러그가 꽃히지 않으면 어댑터를 써야 하는데, 조직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어댑터는 역시 또 다른 사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