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펠로우일기

수술을 거부하는 그 환자의 사연

슬기엄마 2011. 2. 27. 11:49

환자의 마음을 돌릴 수 없을 때

 

58세 여자 환자, 같이 온 아들가 38세라고 하니 엄마와 나 정도 되는 연배다. 이미 6개월 전에 유방암을 조직검사로 진단받았고 한두달 후에 시행한 위 내시경에서 위암도 의심되었는데 그쪽으로는 조직검사를 하지 않았고, 조직검사를 한 병원에서는 위암 가능성이 높으니 큰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라는 말을 들으셨다고 했다.

당시에 찍은 내시경이랑 CT 사진을 가지고 오셔서 CD를 열어보니 다행히 유방암도 겨드랑이 림프절 없이 수술 가능한 상태인 것 같았고, 복부 CT 상으로도 위 근처에 특별히 의심할만한 림프절이 없어 위암이라면 수술 가능한 단계로 발견되신 것 같았다.

그러나 문제는 환자가 암이며 수술하시는 게 좋겠다는 말씀을 듣고도 수술이 가능한 병원-환자 집이 서대문구이니 세브란스병원에 오시는 게 제일 손쉬운 선택이었을 텐데도-에 가지 않은 채 시골 요양원에 가서 6개월 이상을 지내시다가 등이 아프다며 이제서야 병원에 오셨다.

나는 순간 복장이 터져서 이성을 잃을 뻔 했으나, 분명히 환자에게 사연이 있을 거라고 믿고 함부로 내 얘기, 내 주장만 하면 안된다며 끓어오르는 마음을 억누르고 환자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러나 환자는 시큰둥, 별 말이 없다. 그리고서는 지금도 수술이나 조직검사 등 몸에 칼 대는 시술은 하지 않겠다는 말부터 먼저 하신다.

외래에서 이렇게 대화가 안되기 시작하면 큰일이다. 아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말을 못하고 있다. 아드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물어도 아들 역시 명쾌하게 대답을 못한다. 아니, 이럴거면 병원에 왜 오셨나 나는 다시 억장이 무너지려고 했다. 왜 아픈지, 암이 얼마나 진행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검사는 해보시겠다고 하여 나는 입원장을 발급했다. 입원을 해서 대화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해서외래에서 각종 검사를 다 하고 다음 외래를 잡아 내원하시게 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해서는 진료가 겉돌 것 같아서 나는 승부수를 띄우고 환자를 입원시켰다.

 

입원하자 마자 시행한 피검사에서 Hb6.8. 다행히 급성 출혈의 증거는 없고 그동안 혈변을 본 적도 없으시다고 하여 일단 수혈을 하였다. 위에서 출혈이 되고 있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지만 내시경은 안하시겠다고 강력히 거부하신다. 내시경 하러 들어갔다가 조직검사를 할까봐 싫으시다고 한다. 지난번에 유방도 검사하는 줄 알고 초음파실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졸지에 조직검사를 하게 되서 후회하셨다는 말까지 하시며

악성이 의심되는 병변에서 조직검사를 하여 암세포를 확인하는 것이 암환자 진료의 기본이건만, 환자와는 여전히 말이 잘 통하지 않고 대화가 쉽게 풀리지 않아서 그냥 영상 검사를 먼저 해보기로 했다. 사실 영상 검사야 언제든 처방만 내면 금방 할 수 있다. 조직검사를 하는 것 보다 CT 찍는 게 훨씬 쉽다. 조직검사는 스케줄 잡기도 쉽지 않고 조직검사를 하고 나서 염색하고 슬라이드를 만드는 공정이 있기 때문에 결과가 나오는데 최소한 2-3일이 걸리고 세포 타입이 확실하지 않을 경우 특수염색을 하고 다시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서는 목놓아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는게 마음이 편치 않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이제는 복부 초음파도 잘 하지 않는다. 대개 초음파는 비급여이기 때문에 20만원 가까이를 환자가 내야하는 것에 비해 CT는 최첨단 기계로 찍어도 환자는 5%의 비용만 지불하면 되고, 가로 단면을 5mm 간격으로 커팅하여 뱃속을 샅샅이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에 환자를 손으로 만지고 장음을 듣고 이리 저리 검사하지 않아도 처방 한번만 날리면 손쉽게 뱃속 상황을 파악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가슴과 복수 CT를 찍고 보니, 등이 아프다고 했지만 복강 내 림프절 전이도 없고 유방이나 위 모두 병이 아직 자기 자리에서 많이 진행되지 않고 얌전히 자리잡고 있었다. 위 안에 있던 종양의 크기는 6개월 사이에 크기가 많이 커져서 식후에 등이 아픈 것으로 방사통이 생긴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었다. 아직 수술 가능성은 있는 단계! 나는 신이 나서 환자에게 달려갔다. 6개월 동안 치료를 안했는데도 아직까지 병이 많이 진행하지 않고 수술이 가능한 상태로 남아있다는 것은 하늘이 다시 한번 소중한 기회를 주신 것이니 한번 도전해보자고 말할 참으로, 계단을 2개씩 뛰어올라 환자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이게 왠걸! 환자는 병이 별로 진행되지 않아 수술을 해볼 수 있다는 나의 설명에도 여전히 시큰둥하다.

그래요? 그래도 전 수술은 안할거에요

그렇게 수술이나 조직검사를 강력하게 거부하시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한참을 말 없이 침묵을 지키던 그녀가

남편이 18년전에 이 병원에서 위암으로 죽었어요. 건강검진에서 위 내시경을 했는데 암인 것 같 고 조기인 것 같으니 큰 병원가서 수술 받으라고 해서, 이 병원에 왔죠. 내시경 하고 수술한 날까지 2주 정도 시간이 걸렸는데, 막상 수술을 하러 들어갔더니 생각보다 병이 많이 퍼졌다며 그냥 배를 열었다고 닫고 나왔대요. 그렇게 수술을 하고 나니 남편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어요. 건강검진하며 아무 증상도 없었던 사람이 병원에 온 다음부터 급격히 상태가 나빠지고 통증이 생기고 음식도 못 먹고 항암치료까지 했는데 몇 달 못가서 죽더라구요.’

그랬었구나

그때는 지금보다 검사나 각종 시술의 정확도가 떨어지고 항암제도 좋은 약이 별로 없던 시절이었으니 그럴 수 있었을 거라고. 암환자 중에는 그렇게 증상없이 4기로 진단되었다가 갑작스럽게 나빠지시는 분들이 드물지 않게 있으시다고, 그러나 그런 일이 누구에게나 있는 건 아니라고. 그러므로 지금 환자분 상태는 남편이 진단받고 치료받던 시절과는 완전히 상황이라고 말을 꺼냈다. CT에서 보이는 위 종양 덩어리도 모양상으로 보면 일반 위암이 아닐 가능성도 높다고, 진단을 정확히 해야 정확한 치료방법도 제시할 수 있으니 검사라도 해 보자고, 유방암은 아주 국소적으로 존재하고 있으니 수술하면 예후가 좋을 것이라고. 그러니 결국 유방이나 위 모두 완치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상황이니 사람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결과를 기다려 보는게 어떻겠냐고. 만약 환자분이 내 엄마라면 반드시 수술을 하시도록 하루 종일 백날이라도 설득해서 수술하고 싶다고. 물론 지금 그렇게 조기라고 생각되도 수술을 하고 나면 병기가 생각보다 높은 것으로 진단받을 수도 있지만, 일단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보조적으로 하면 재발율을 낮출 수 있으니 지금 수술을 안하려고 하는 것은 교통사고가 무서우니 밖에 안나가는 거랑 비슷한 거라고. 나는 정말 열심히 설명했다. 보통 환자들에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열심히 설명하고 성의있게 보이려고 노력했다. 평소에 이렇게 환자보면 지쳐 나가떨어지고 말 것이라는 생각, 환자에게 이렇게까지 매달릴 필요 없다는 생각, 환자가 선택한 길이니 내가 개입해서 결과를 바꾸려고 너무 애쓰지 말자는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돌다가도, 환자의 CT를 보면, 이건 꼭 수술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드니, 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환자를 설득하고 싶었다.

그런데 결론은 실패.

 

나는 이 글을 저장하고 청년의사에 송신하고 나면,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면담을 해보려고 한다. 모든 환자를 비슷한 농도에서 일관적으로 대하는게 쿨하고 좋은건데, 지금은 마음이 찝찝해서 그렇게 하면 안될 것 같다. 18년전에 남편에게 수술을 하게 할 것이 아니라 공기좋은 곳에 가서 맛있는거 많이 먹이고 사는 날까지 잘 보살펴주면서 죽더라도 고통없이 죽을수 있게 해줬어야 했는데, 자기가 병원가자고 우겨서 수술을 한 다음 남편이 나빠졌다며, 그래서 남편의 죽음이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여 그 이후 18년동안 단 하루도 맘이 편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괴롭게 사느니 내가 죽는게 낫지 싶다는 말을 하며 희미하게 쓴 웃음을 짓는다.

나는 그녀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이렇게 자신의 신념체계를 구축하고 병에 대한 개념, 자신만의 신념을 갖고 있어 행동방식이 달라지는 환자들에게 의사로서 얼마나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적절한 것일까? 정답은 물론 없겠지만, 그리고 경험이 축적되어야 어느 정도 답이 보이겠지만, 아직 답이 안보이는 나로서는 늦은 밤 다 떨어진 에너지를 긁어모아 성심성의껏 환자와 대화를 나눠보는 수 밖에 없겠다. 예전엔 이런 거 잘했었는데, 이제 말주변도 떨어지고 있어 걱정이다. 이럴 땐 하느님, 제게 기를 불어넣어주세요외치는 수밖에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