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혁 선생님이 연수를 가신 후 이어받은 환자들은
사실상 나에게는 모두 신환이나 마찬가지다.
손주혁 선생님은 처음부터 환자를 진료하셨기 때문에 병력을 거의 다 알고 계시지만
나는 과거 병력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일일히 예전 사진, 치료반응, 병이 있던 곳, 좋아진 곳, 나빠진 곳 이런 사항들을
외래전날밤 파악해야 했다.
그래서 지난 한달 매일밤 엄청나게 환자 파악, 정리를 하느라 고3처럼 지냈다.
그리고 이제 한달이 지나가니, 슬슬 환자들에 대한 파악이 되어가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고 한시름 놓게도 된다.
그래도 3개월에 한번씩 사진만 찍으며 경과관찰하는 환자들이 외래에 오고 있기 때문에
아직은 매일, 다음날 외래 명단을 보고 점검해야 한다.
그렇게 경과관찰 중인 환자를 파악하다보면
한번도 본적이 없는 환자를 피검사, CT사진 이런 것들로 상상을 하게 된다.
지난 5년간의 차트를 일일히 칮아 봐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깜짝 놀랄만한 환자들이 등장한다.
꼭 유방암이 아니더라도,
그래서 항암치료반응이 썩 좋지 않다고 알려진 다른 여성암 환자들,
그 독하다는 씨스플라틴을 몇번을 다시 쓰고도
치료를 포기하지 않고 선생님 말씀 쫓아 열심히 치료하고,
갖은 합병증으로 입퇴원이 반복되어도 지치지 않고 열심히 치료하여
최근 2-3년간 병이 진행하지 않고, 흔적만을 남긴채 CT를 찍으며 경과관찰을 하고 있는 그들.
난 그들을 기다리며
그리고 여전히 안정적인 상태로 병변이 유지되고 있는 그들을 CT로만 상상하며
내일을 기대한다.
유방암은 끊임없이 신약이 개발되니 임상연구 등의 기대라도 해봄직한데
그들이 치료하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별로 신약도 개발되지 않고 발전이 더디 암들도 많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신약이 아닌 약으로 치료받고, 지치지 않고 방사선치료도 병행하면서
자신의 삶을 쟁취하였다.
그들 종양세포의 생물학적 특징이었던 것인지
기가 막힌 약제 선정인 것인지 - 그러나 약제 선정에는 한계가 있어 이 요인이 주된 요인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되지만-
그들의 좋은 예후를 판가름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주치의를 믿고
힘든 과정을 넘고 견디고 이겨낸 그들의 신념.
난 그들을 슈퍼맨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쓰고 싶은 다음 책의 제목은
그들의 이야기.
'당신은 슈퍼맨' 책 제목 치고 별로다.
그러나, 그것만큼 이들을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문구가 있을까?
나는 오늘도 설레임으로 내일의 환자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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