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나는 항문 근처의 통증이 반복되어
간단히 직장경으로 들여다 봤더니 모양이 않좋아 보이는 직장 폴립이 발견되었다.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대장내시경과 CT를 찍기로 하였다.
장 점막 자체를 관찰하는데는 CT보다 대장내시경이 더 좋지만
폴립이 암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CT도 같이 찍기로 했다.
대장내시경을 하기 위해
전날부터 음식을 조절하고 콜라이트를 먹어 장에 있는 변을 다 배출시켜야 했다. 오전 회진을 돌고 대장내시경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회진 시간 내내 배가 아팠다. 중간에 화장실도 다녀와야 했다.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콜라이트를 먹으라고 해서, 회진 끝나고도 한두잔 더 마시고 화장실을 몇번 더 다녀온 끝에 겨우 맑은 물이 나와서 내시경을 하러 갔다.
CT를 찍으려고 갔더니 풍차바지를 주면서 갈아입으라고 했다. 앞뒤가 펄럭펄럭한 풍차바지를 입고 CT 대기석에 앉아 순서를 기다렸다. 다들 나처럼 똥을 뺀 탓인지 기운없어 보였다. 조용히 검사 순서를 기다리는 환자들...
CT 기계위에 올라가 누우니, 따뜻한 생리식염수를 항문에 넣겠다고 한다.
이건 예상치 못했던 건데.... 고무관을 통해 항문으로 생리식염수를 400cc 정도 넣겠다고 했다.
CT 기사는 배가 아프고 변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어도 꼭 참으라고 했다.
조영제를 맞는데 가슴도 벌렁거리는 것 같고 눈 앞에 별이 왔다갔다 하는 것 같고 기분이 매우 나빴다. CT 조영제가 이런 느낌이구나.
숨을 들이마셔라 참아라 하는 기사의 명령에 맞추서 숨을 조절하는데 이것도 쉽지 않았다.
기계가 왔다갔다 하면서 내 몸을 찍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움직이는 CT 기계에 몸을 맡기고 똑바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리식염수 때문인지 자꾸 변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걸 참아야 했다.
CT를 찍자마자 기사에서 영상으로 올려달라고 부탁하고, 풍차바지를 갈아입자마자 CT 결과를 확인하였다. 폴립 근처로 작은 림프절이 보인다. 약간 조영증강되는 것 같기도 하다. 3개월 후 다시 한번 CT를 찍기로 하였다.
CT에 누워서 바라보는 세상은 두렵다.
나에게 어떤 통제력도 허용되지 않은 채 시키는대로 지시에 협조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알게 될 때까지 두려움이 계속 된다.
나도 다시 대장내시경과 CT를 찍어봐야 할 때가 돌아왔다.
다시 검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무섭다. 그래서 검사 일정을 계속 미루고 있다.
반복되는 검사와 결과를 알 때까지의 대기시간, 그리고 결과를 들으러 오는 외래.
환자들 가운데 몇년째 이런 일을 반복하며 지내는 분들이 있다.
오랫동안 병이 안정적이라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행이지만
이런 검사를 반복하면서 환자들은 마음이 오그라지고 견디기 힘든 두려움을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CT는 금방 끝나지만
MRI, PET 이런 검사들은 오래 동안 누워있어야 한다. MRI는 땅땅땅 하는 소리가 시끄럽다.
폐쇄공포증이 있는 환자들은 이렇게 몇십분 기계위에 누워 검사받는 걸 견디지 못한다.
검사실 근처를 지나다가 CT를 찍으러 들어가는 내 환자를 보았다.
불안해 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자꾸 가슴이 아프다고 해서 CT를 찍기로 했다.
검사를 마칠 시간 즈음,
나는 내 방에서 CT 결과를 확인해본다. 특별한 병변은 보이지 않는다.
왜 자꾸 아플까? 내일 CT 판독 선생님께 문의해봐야겠다.
시간은 물 흐르듯 흐르는 것 같지만
어떤 시점에서는
긴장과 공포로 정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CT 위에 누울 때 그렇다.. 우리 환자들은 시간을 그렇게 조각조각 경험하고 산다.
'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 전이성유방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칠어진 손을 보며 (0) | 2011.09.18 |
---|---|
진료실 초콜렛 바구니 (12) | 2011.09.15 |
Stock- dale’s Paradox (5) | 2011.09.09 |
환자가 나를 위로해주다 (0) | 2011.09.03 |
병원을 옮기려는 환자의 차트를 정리하며 (3) | 2011.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