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회진
여유롭게 회진을 돈다.
평소에는 오전 9시에 외래가 시작되기 때문에, 바람처럼 회진을 돌아야 한다.
사실 입원한 암환자 회진은 그렇게 바람처럼 도는게 좋지 않다.
환자가 표현하는 증상, 불편함 등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 목소리에 귀기울이는게 필요하다.
그렇지만 현실은 현실.
일단 아침 회진을 빨리 돌아야, 레지던트도 오더 정리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일처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검사 푸쉬도 하고 결과도 챙기고 그래야 오후 일을 하기 전에 레지던트도 밥 먹을 틈이 있다.
충분한 면담이 필요한 환자는 오후에 따로 본다.
가족들이 모일 수 있는 저녁 시간에 환자의 상태에 대해 설명해야 할 때도 많다.
오늘은 천천히 회진을 돌았다. 환자 질문에 설명도 충분히 해 주었다.
내 설명에 좋아하는 환자, 낙심하는 환자. 그렇게 환자마다 장면이 바뀌면서 나의 역할도 달라진다.
나는 환자가 좋아지면 환자보다 더 좋아하는 티를 낸다.
종양내과 의사는 그렇게 자기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면 좋지 않다는 걸 아는데도
난 표정관리를 잘 못한다.
그래서 환자가 나빠지면 그것마저도 얼굴에 드러난다. 내 표정을 읽는 환자들이 있다.
내가 어두운 표정으로 별 말 안하면 그들도 별 질문을 안한다.
유방암 수술한지 얼마 안되 재발한 환자,
항암치료하면 5-6개월 약효가 유지되다가 다시 나빠진다.
재발한 후 세번 약을 바꿨는데, 이번에는 뇌막으로 전이가 되었다.
스테로이드를 2-3일 썼더니 일단 뇌부종이 좋아졌는지 환자 컨디션이 좋아졌다. 식사도 잘 하시고 어지러움증도 좋아졌다.
다음주 월요일에 뇌실로 카테터를 넣기로 했다. 그리고 뇌막에 대한 치료를 시작할 예정이다.
나는 환자에게 그간 치료에 대한 경과 및 현재 상태를 설명해 드렸다.
"솔직히 걱정이에요. 자꾸 나빠지셔서..."
"쓸 약이 없나요?"
"HER2 양성이라, 거기에 대한 표적치료제를 두번 다 썼습니다.
현재 HER2를 타겟으로 하는 약은 추가로 더 쓰기가 어렵습니다."
"그럼 전 어떻게 되나요?"
"원래 뇌나 뇌막으로는 항암제가 잘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뇌막 공간에 항암제를 주입하는 치료를 먼저 하겠습니다. 그리고 뇌 이외의 병변에 대한 항암치료는 그 이후에 얼마나 잘 견디시는지 상태봐서 하려고 합니다"
"뇌막 치료는 힘든가요?"
"네 좀 힘드실 수 있어요. 퇴원도 빨리 하시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병은 있지만, 환자분 전신상태가 양호하셔서 다행입니다.
지금 정도면 잘 이겨내실거라 믿습니다. 저도 마음으로 걱정이 되는건 사실입니다"
"선생님도 피곤하신가봐요. 입술주위로 뭐가 많이 났네요."
"네 요즘 좀 피곤한가봐요. 저까지 걱정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전 환자분이 걱정인데..."
"선생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 원래 항암치료 별로 안힘들었어요. 잘 될거에요."
스테로이드 치료 후 컨디션이 좋아진 환자가 나를 걱정해주며,
다 잘 될거라고, 너무 걱정 말라고, 열심히 치료 잘 받겠다고, 나에게 힘내라고 하니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평균적으로 암환자에서 발생하는 뇌막 전이는 예후가 좋지 않다.
그러나 데이터 정리를 해보니, 이런 평균 통계치를 넘어 장기간 생존하시는 분들도 꽤 있었다.
전신상태가 좋아, 뇌막치료 후 항암치료를 받고 안정적인 상태로 병을 유지하시는 분들이 있었다.
내가 뇌막전이 논문을 쓰면서 리뷰했던 수많은 환자들의 예후. 다양한 궤적.
그렇지만 난 유방암 환자 뇌막전이 논문을 쓰면서 유방암 환자 진료에 신념을 갖게 되었다. 그것이 내가 유방암을 전문으로 진료하는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되었다.
이 환자에서도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도한다.
치료의 최종적인 결과는 환자 내부의 힘에서 나오는게 아닐까.
긍정적인 마음,
너무 걱정많이 하고 슬퍼하고만 있지않는 마음,
지금 자신이 처한 형편에서 최대한 노력하려는 마음,
나는 그 마음에 더하여 최선의 항암제를 선택함으로써 도움을 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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