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특별대우

슬기엄마 2011. 7. 14. 12:00

9월1일부터 
난 월화수목금 매일 외래를 보게 될 예정이다.
아직은 목요일 진료가 없다.
목요일은 미뤄둔 많은 잡일을 처리하고 각종 미팅, 약속을 잡는다.

그런데 환자들이 다른 과 진료보는데 나랑 같이 보는게 편리하다며 목요일에 같이 봐달라고 요청하시면 난 그냥 진료를 본다.
내 진료실이 없기 때문에
일반 진료실을 이용하거나
진료가 일찍 끝난 다른 방을 이용하거나
진료실이 아닌 공간을 이용할 때도 있다.
대학병원이라는 곳이
한번 접수하고 돈 내고 기다렸다 진료하고 또 돈내고 검사예약하고....
여러 과를 봐야 하는 환자들은 미칠 노릇이다.
난 그래서 가능하면 편의를 맞춰드리려고 한다.

그런데 나의 성의와는 관계없이
내가 이런 식으로 진료하면 외래 간호팀이 힘들다.
자꾸 연락해야 하고
다른 교수님 진료를 담당하고 있어서 바쁜데 나까지 과외로 지원하는게 정신이 없다.
미안하다.
나도 진료를 연속적으로 보는게 아니라 연락받고 가서 환자보고 돌아와서 딴 일 하다가 또 연락받고 가서 환자보고
이렇게 되기 때문에 일의 리듬도 끊기고 여간 어수선한게 아니다.
난 그래도 그렇게 해드리고 싶다.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면.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병원 오는게 큰 일이라 도와드리고 싶다.

오늘도 첫 항암치료를 하고 입 통증이 심해 할머니가 오셨다.
74세.
70세가 넘는 분들께는 설명하기도 어렵고 해서 그냥 명함을 드린다.
뭔 일 있으면 전화하시라고...
3일전부터 할아버지가 하루에 10번씩 전화한다.
입이 아프다고.
병원에 오셔서 진통제 맞고 수액맞고 입원하시라고.
그런데 다인실 병실 아니면 입원안하신다고 한다. 비싼 방 쓰면 자식들한테 미안하다고.
그리고 전화로 아프다고 계속 징징징...
결국 오늘 눈물바람으로 이 비속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셨다.
할머니는 고혈압 당뇨 뇌졸중 위암수술 담당수술 부정맥의 경력이 화려하시다.
그래도 다 낫게 끝까지 열심히 치료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엉엉 울면서 치료 안받고 죽고 싶다고 한다. 너무 아파서.
항암제 성분 중에 구내염이 심할 수 있는 약제가 포함되어 있기는 하다.
통계적으로 천명에 한명 정도 이 약제를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효소 부족으로 약제를 대사시키지 못하니 체내 농도가 높게 작용하여 다른 사람들에 비해 구내염과 통증을 심각하게 겪게 된다. 이 할머니도 그런가 보다.
미어터지는 응급실에 전화해서 할머니 겉보기에 멀쩡하다고 절대 돌려보내면 안되고 꼭 입원시켜주고-비싼 방이라도-, 진통주사 연결해달라고 레지던트에게 당부한다.

오늘은 이렇게 힘들고 아픈 환자들이 5명이 왔다.
한시간에 한두명이 띠엄띠엄 오니
나는 내 방과 외래를 왔다갔다, 심지어 본관도 왔다갔다 정신이 없고 12시도 안 지났는데 벌써 기운이 빠진다. 월화수목금(토) 외래를 보면 과연 나는 날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큰일이다.

그래도
난 내 환자라면 누구나 특별대우를 해주고 싶다.
특히
노인들.
전이성 환자들.
오래 아프고 지친 환자들.
그들에게 항상 특별대우를 해주고 싶다.
이 비를 뚫고 나를 만나면 뭔가 해결될거라고 믿고 온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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