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환자는 전 존재를 걸고

슬기엄마 2011. 7. 19. 23:27

설명의 의도는 좋았으나
본질은
결국 '나쁜 소식은 나쁜 소식이요 절망은 절망일 뿐'이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기를 꺼려한
타협의 산물. 
구구절절 희망의 언어를 듣고 싶어서
환자는 가슴 졸이며 이제나 저제나 정성스럽게 나의 이야기를 경청하지만
결국 아무런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럴 수도 있다'
이 병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대해
온갖 낙관을 늘어놓는 의사의 설명을 무너지는 가슴으로 듣는다. 
치료 가능성에 중점을 두면 일련의 심리적 안정을 얻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의 질을 운운하는 집행유예.

세포 유전학의 평가가 암 진단에서 결론을 낼 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정보의 생물학 입문같은 어조.
"심각한 병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은 어려운 시련이 될 수 있다"는 하나마나한 소리.
나는 
최고의 언어로 최악의 소식을 전달하는 것은 아닐까.

인생은 완성되어야 하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환자는 이번 공연을 마쳐야 한다.
나만은 특별하다는 자의식이 환자의 오늘을, 지금을 견디게 만들어 준다. 
지금까지 계속 느끼는 분노,
끝내 완전히 사라질 것 같지 않은 이 분노.
분노가 환자를 지지 않게 만들어 준다.

환자는 나쁜 소식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법에 대해
최소한 평온하게 행동하는 법을 깨쳤다.
그러나 여전히 가쁜 숨을 내쉬며 애써 태연한 척 하지만 사실은 점점 무감각해진다.

내 언어의 가벼움
내 존재의 가벼움
내가 쉽게 내뱉었던 말들이 나를 향해 달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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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누군가의 글을 읽고, 누군가의 말을 듣고
나를 되돌아보며
나의 부족함과
나의 부덕함과
내 존재의 얄팍함을 깨닫고 부끄러웠다.
환자는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치료받으러 병원에 오는데...
부끄러운 것이 내 수준이려니
부족한 것이 내 인격이자 실력이려니
날씨가 더워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허약함에 진땀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