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검사 처방

슬기엄마 2011. 7. 9. 15:42

엊그제 응급실에 왔다 간 환자.
환자가 힘들어서 응급실 왔다가 루틴 랩을 다했다.
피건사 엑스레이 심전도 소변검사...
큰 문제 없고 증상도 좋아져서 응급실에서 입원하지 않고 기본 사항만 체크하고 귀가하셨다.
그리고 오늘 입원하였다. 항암치료 해야하니까.
인턴은 별 생각없이 신환 오더를 다 냈지만
난 EMR을 들여다 보고 있다가 필요없는 랩을 다 지운다.
소변검사 심전도 엑스레이 ... 피검사 중에서도 화학검사는 별로 달라질게 없는 환자.
환자가 필요없는 검사 하는거 싫고 불필요하게 찔러서 채혈하는 것도 싫다.
그래서 내가 검사를 다 취소했다.

MRI PET-CT 등등 대학병원의 고가검사.
암환자는 5%만 내면 되기 때문에 사실 경제적으로 큰 부담은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불필요한 검사는 할 필요 없다.
내가 환자에게 항암제 설명하고 치료 예후 설명하고 가능한 합병증 설명하고 치료 시 주의사항을 설명하는 1시간은 진료 수가가 없다.
그러므로 내 진료 '성적표'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뭔가 돈이 되는 검사를 하는게 좋다.
내 지적 노동의 성과가 돈으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돈 되는 뭔가의 검사를 하는 것은
나 힘도 안들고
환자도 뭔가 믿을만한 검사를 했다는 거에 대한 안도감도 준다.
그러나 모든 검사는 그 자체로 완결적이지 않으며
검사마다 볼 수 있는 특징적인 상황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영상 검사나 혈액검사가 별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환자들은 고가의 검사를 하면 더 나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기 쉽다.
어떤 검사를 '하는 것'보다 '안하는 것'에 더 노력이 들어간다.

그래도 원칙을 지켜야 한다.

환자가 어떤 증상을 호소할 때
과연 이걸 지켜볼 것이냐
검사를 할 것이냐
결정하는 것이 어려울 때가 많다.
환자를 위해,
전체적인 의료비용효과를 고려할 때,
사실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제대로 된 판단과 결정을 위해서는 의사로서 숙련된 기술과 경험이 필요하다.
그래도 하기쉬운 건, 마음 편한 건
검사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심평원은 검사에는 비교적 후한 것 같다. 별로 삭감하지 않는 것 같다. 최소한 암환자에서는.
이런 이해관계가 맞물려 검사를 자꾸 하는 방향으로 간다. 이런 문화가 환자에게 도움이 될까?

보이지 않게 환자를 세심하게 배려하고 고민하는 것에는 노동의 댓가가 부여되지 않고
그냥 검사 처방하는게 댓가로는 효율성 100% 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자본의 통제로부터 자유롭기 쉽지 않다.

이번 달 진료실적을 메일로 받았는데
성적이 나쁘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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