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 건 마찬가지.
병원도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여념이 없다.
교수별 교실별 실적평가, 수익율 평가, 논문업적평가....학생 때 보다 더 실존적(!)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지 모르겠다.
실적을 공개적으로 평가하고
각종 성과급으로 이를 장려한다. 보이지 않게 압박한다. 경쟁사회니까 뭐...
병원 운영도 수익율 중심으로 운영되는 존재임을 부인할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병원이 더이상 봉사/자선기관은 아니니까...
예를 들면
암환자 진료의 경우,
병원의 수익율 향상을 위해서는 외래 중심의 치료가 효율적이다.
의사로서 생각하기에도 환자가 외래에서 치료받는 것이 좋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실 암치료라는게 예정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환자의 컨디션이 갑자기 나빠지는 경우
예상치 못한 부작용으로 고생하는 경우
제때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하루 이틀 사이에 환자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천원짜리 생리식염수 한봉지만 맞아도 좋아질 가벼운 탈수상태가 적절한 시기에 해결되지 않으면
쇼크로 진행되어 중환자실에 가야하는 경우도 생긴다.
엊그제 외래에서는 멀쩡했는데 오늘 응급실에서 본 환자 상태가 너무 나쁘게 변해 있어도 놀랄 일은 아니다.
그래서 개별 환자의 상태에 따라서는
입원시켜서
필요하면 검사도 자주 하고 환자를 초집중관찰 해야할 때도 있다.
입원해서 별 검사없이 생리식염수만 맞고 있어도 구토감이 잦아들고 2-3일만 지나면 컨디션이 너끈해져서 퇴원할 수도 있다.
난 우리병원에서 일하며 고마움을 느낄 때는
내가 원할 때,
환자에게 필요할 때
언제든 입원시킬 수 있고
- 응급실에서도 24시간 전후로 병동에 입실할 수 있다
- 환자가 너무 많이 입원이 어려운 병원들에 비해
이렇게 입원해서 치료받는게 환자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환자들은 잘 모를 것이다.
환자의 상태가 나쁘다는 것을 이유로 원무과에 푸쉬하면 잘 받아주고
- 순서가 아니더라도, 담당 의사의 직권으로, 환자의 응급성이나 상황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
원무과 직원들이 이를 이해해주는 것이니까
- 아무리 의사가 급하다고 해도 이게 잘 안먹히는 병원들도 꽤 있다.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으니 허술함도 많지만
그 부족함을 사람들이 메워주니까 인간적이다. 물론 그 사람들은 힘들다.
내가 원하는 이것저것을 맞춰주느라 간호사들이 최선을 다해 협조해준다. 외래조정, 검사푸쉬, 환자모니터링...
첨단이고 합리적인 시스템이라면 푸쉬하고 알아볼 필요없이 클릭클릭으로 모든게 결정되면 좋겠지만, 병원이라는 조직은 너무 복잡해서 그렇게 단일한 흐름으로 일이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전화로 확인하고 알아보고 다른 파트랑 상황을 조정하고... 환자를 잘 보기 위해 간호사들의 역할과 도움이 점점 커지는데, 이들이 나에게 우호적으로 도움을 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사실 난 가끔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한다. 밤새 간호사들이 내 오더 때문에 아주 고역을 치르며 환자 간호를 해준다. 그리고 다음날 아무런 불평없이 나를 맞이해 준다.
사실 병원은
신환 숫자를 증가시키고 지방환자를 위한 fast tract을 만들고
갖가지 아이디어를 내며
보다 많은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고심중이다.
그러나 난 지금보다 환자가 더 많아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환자가 더 많아지면
입원도 잘 안되고
필요한 조치를 받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주치의 만나기도 힘들고
환자 한명한명마다 신경쓸 수 있는 시간도 줄어 들고
적당히 증가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은 반병원적인 생각도 든다.
이런 유치한 생각을 하는 나를 내치지 않고 일하게 허용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이상적으로는 환자도 늘고 시스템도 개선하여 윈윈하자 뭐 그렇게 말하는게 원칙이겠지만
나는 내 환자를 위해
양질의 진료, 최고의 진료를 해 주고 싶다. 지금 우리 병원에서 못할 것도 없다.
지금의 환자로도 최선을 다하기 어려운데 환자가 더 많아지면 더 못하게 되지 않을까...
오늘 문득
서울시내 다른 큰 병원들에 비해
우리 병원의 암환자 풀이 늘지 않아 고심중이라며
어떻게든 신환을 창출하는 방안을 마련해야한다는 주장을 듣고
지금이 더 좋은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 그저 애송이 의사일 뿐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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