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암으로 수술하고 방사선치료를 마치셨다.
현재 먹는 항암제로 치료중이며 추가적으로 혈관생성억제제를 투여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지를 보는 임상연구 중이시다.
항암제 주기가 2주기이니 앞으로 4주기가 더 남았다.
내 아버지 정도 되는 연세.
나보다 젊은 딸이 저 멀리 경상도에서 2주에 한번씩 병원에 오신다. 늘 딸이 같이 온다.
경상도 여자라 목소리도 우렁차고 씩씩하다.
아버지한테 쿠사리도 많이 준다. 아버지도 질새라 반박한다. 서로 티격태격.
처음에 뇌수술 후에 환자를 만났을 때는
말씀도 거의 못하시고
걸음도 불편해서 휠체어를 타고 오셨다.
말 하면서도 침이 옆으로 새고 본인의 의사표현도 잘 못하셨다.
그런데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 계신다.
MRI 상으로 뇌에는 더 이상 활성화된 병변이 없다.
이발, 면도 깨끗히 하고
옷차림도 계절에 맞게 잘 바꿔입고 오신다.
이제 본인이 불편한 점을 스스로 말씀하시는데 꽤 많이 알아들을 수 있다.
먹는 항암제를 먹기 시작할 무렵에는 원래 통풍이 악화되어 다리 통증으로 입원도 하고
감기로 지방병원에서 입원도 하셨고
뭐 몇가지 이벤트가 있었지만 다 무사히 잘 넘어갔다.
딸이 워낙 아버지에게 극진하다. 사이는 별로 좋아보이지 않지만 ^^ 도 끈끈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그렇게 몇번의 이벤트와 힘든 일을 거치고
이제 환자는 기능이 90% 이상 정상화되고 일상 생활에 지장이 없으시다.
발음이 약간 어눌하고, 말이 생각한 것만큼 빨리 튀어나오지 않아서 답답해 하는 정도가 남아있다.
나는 내심 만족이다.
그런데 오늘 외래에서 만난 이 환자의 눈가에 눈물이 고여있다.
몸은 좋아졌는데 마음의 속상함은 더 커지나 보다.
뇌 손상 후 재활기간동안
환자들은
자신의 뜻이 언어로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 것에 대해 매우 심한 우울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자신이 노력해서 상태가 호전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고
뇌 수술은 후유증도 크기 때문에
이 수술만 견디면 모든게 좋아질거라고 믿고 싶은 환자의 마음에 상실감이 크다.
말씀을 하시는데 목소리가 떨려서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떨구신다. 눈물 한방울도 같이 뚝 떨어진다.
"쉽게 않 좋아지니까 속상해서 그러세요?
6개월 치료받고 이 정도면 아주 많이 좋아지신거에요.
이만큼 회복이 안되는 환자들이 훨씬 많아요.
맘 약하게 먹고 눈물 보이고 그러지 마세요.
세달 전 생각을 해보세요."
아버지같은 분이 눈물을 보이신다. 병에는 장사없다. 남녀 불문.
하모니카나 다른 악기를 배워보시라고 했다.
신경을 다른 곳으로 분산시킬 필요도 있고
뇌기능을 활성화시킬수 있는 뭔가의 연습도 필요하고 해서.
뭔가를 해보라고 권유하니 환자가 자기 슬픔과 연민의 고리에서 좀 빠져나오시는 듯 하다.
하모니카 연습하면 폐활량도 늘어나고 뇌기능에도 도움이 될 수 있으니
당장 병원에서 나가는 길에 사시겠다고 한다.
근데 이거 맞는 말인가?
환자분이 즐겁게 지내셨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조금씩 좋아지는 것에 조급해하지 않으시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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