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처음 만남에서 마음의 문 열기

슬기엄마 2011. 6. 21. 15:24


금요일 외래에서 처음 만난 48세 그.
1년전부터 이미 한쪽 유방에서 만져지는 게 있었다는데
그동안 병원에 안 다니다가 이제사 왔다.
겨드랑이에도 만져지는게 있다.
반대쪽 유방에서도 작은 덩어리가 만져진다.
난 영상의학과에 왕푸쉬/부탁를 해서 
당일 오후 늦은 시간이라도 조직검사를 해달라고 의뢰하였다.
금요일에 조직검사를 해도 조직에 대한 염색은 월요일 아침부터 시작되니 수요일 오후 쯤에나 1차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설명하고 입원시켰다.
그리고 입원하여 주말동안 이미지 검사를 하였다.
역시 다른 쪽 유방에도 병이 생겼다. 간으로도 전이가 되었다.
난 사실 이렇게 늦게 오는 환자들, 이해가 안된다. 아니 되긴 된다. 그런데 엄청 화가 난다.
입원한 그녀에게 묻는다.
"그동안 왜 병원 안가셨어요?"
"..."

외부에서 건강검진으로 시행한 단순 유방촬영술. 뭔가 비정상적인 음영이 보인다고 의뢰된 60세 그. 특별히 만져지는 것은 없다. 치밀유방은 아닌데... 초음파를 해보자고 했다. 초음파는 보험이 되냐고 묻는다. 보험이 안되면 하지 않겠다고 한다. 유방 자체를 보기 위해서는 CT보다 초음파가 더 중요한 검사라고 말하지만 뚱하다. 얼마냐고 가격부터 묻는다. 형편이 어려우신가 보다...
오른손에는 장갑을 끼고 있다.
"장갑은 왜 끼셨어요?" 대답이 없다.
"저 좀 보여주실래요?" 싫다고 한다.
"초음파 합시다" 안하겠다고 한다.

6개월전 다른 병원에서 유방암 수술을 하셨다. 림프절이 10개나 전이되어 3기를 진단받은 68세 그.
먹는 항암제로 치료를 하고 계시다는데, 한두달 전부터 전신이 쑤시고 아파서 우리 병원에 와 보셨다고 한다.
전신 뼈전이. 목의 림프절 전이.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랄만큼 전이의 범위는 광범하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뼈와 림프절로만 전이가 되면 예후가 좋다. 나는 그래도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전이성 유방암의 치료약제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ER PR HER2를 알아야 하는데 외부병원에서 가져온 조직검사 결과지를 보니 HER2를 체크하지 않았다. HER2 도 다시 확인해야하고 통증도 심하니 통증 조절도 해야하고 뼈 상태도 확인해서 방사선 치료를 해야할 곳은 없는지도 다시 꼼꼼히 봐야겠고 신경쓸게 많다. 입원하시는게 좋겠다고 말씀드리니 싫다고 하신다.
음... 그럼 그냥 외래에서 해야겠다.
외래에서 첫 항암치료를 시작한다는게 좀 부담스럽지만 환자가 싫다면 할 수 없지.
기왕력을 물으니 10년전에 고혈압으로 약을 먹었는데 그냥 흐지부지 않먹고 있다 한다. 혈압을 재니 240/108 mmHg. 으악! 이건 악성 고혈압. 유방암 때문이 아니라 혈압 때문에 입원해야하는거 아닌가? 10분 뒤 다시 재도 마찬가지. 속효성 칼슘채널블러커를 복용하고 30분있다가 다시 쟀더니 200/100mmHg. 입원해서 혈압을 떨어뜨리고 심장 및 혈압 관련 검사도 하는게 좋겠다고 입원장을 드렸지만, 무조건 안하겠다고 한다. 이유는 말하지 않는다.

다들 사정이 있으시겠지.
어떻게 처음 본 의사에게 마음의 문을 열겠어?
연애할 때도 첫눈에 반하기란 쉽지 않은데...
그렇게 이해하지만 나도 사람이라 결국 혈압이 높은 환자에게는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
그런데도 환자는 끝내 입원을 안한다고 했다. 먹는 약을 가지고 가셨다. 이렇게 귀가시키는게 의료과실이 되는건 아닐까?

다들 병을 처음 진단받으면, 특히 재발을 진단받으면
말 한마디 하고 싶지 않겠지... 이해한다.
내가 의사라는 이유로 환자에게 이것저것 무례하게도 질문하지만
정말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을 수 있다.
환자에게 시간을 줘야겠지. 자신의 상태를 수용할 수 있는 ....
그럴려면
뒤에 환자가 기다리고 있으니 진료를 지연시키면 안된다는 조급함을 보여서도 안되고
환자의 충격과 아픔을 내가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는 표정과 제스처도 보여주고
나는 꽤 괜찮은 의사이니 마음놓고 말해도 된다는 분위기도 풍겨야 한다.
외래에서는 불가능하다.
한번의 만남으로 환자에 관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없다.
환자와, 혹은 환자에게 시간이 필요해서 입원을 하자고 하는 때도 있는데,
환자가 내 말도 듣지 않고 자기말도 하지 않으며 입원을 안하겠다고 할 땐 어떻게 해야하나...
한번의 만남으로도 환자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비법을 아시는 분, 연락주시면 내공 만점 드려요.

다 쓰고 느낀 점.
그래도 의사에게는 다 얘기해야 한다. 안그러면 환자 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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