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세달 되었나? 환자가 비특이적인 증상을 호소하였다.
환자는 항암치료 8차 후 수술과 방사선치료를 마치고 허셉틴을 맞은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았다.
기운도 없고
의욕도 없고
몸도 여기저기 아프고
밤에 잘 때는 항상 수술한 반대쪽으로 누워자는데 팔이 너무 저리고
몸이 굳어지는 거 같고...
항암제를 맞고 나면
젊은 여자 환자들은 난소기능이 억제되기 때문에
이렇게 비특이적인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비특이적인 증상이라 어떤 검사부터 해야할지, 어떻게 아픈 곳에 접근하는게 좋을지 난감한 경우가 많다. 아프다는 곳을 다 검사하기 시작하면 과다 검사가 되기 싶다. 항암치료를 마치고 일단 몸에 병이 없는 경우에는 별로 큰 일이 없기 때문에 한두번의 외래는 그냥 경과관찰 해보자고 말한다.
환자도 힘들다고는 하면서도 잘 견디고 있었다.
그래서 지난 번 외래 때 갑상선 기능검사를 하였다.
결과가 당장 나오지 않아
일단 허셉틴 맞고 가시라고 하고
다음날 아침 갑상선 검사결과를 확인하여전화를 드렸다.
"갑상선수치는 괜찮으시네요. 왜 이렇게 힘드실까요?"
"운동해볼께요. 좋아지겠죠 뭐."
3주만에 환자가 왔다.
난 외래 정리를 미리 하면서 이 환자의 갑상선 호르몬 검사결과가 정상이 아닌 것을 발견했다.
갑상선저하증. 기능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앗, 그땐 분명히 정상이라는 걸 확인하고 전화한거 였는데... 어떻게 된 일이지?
아니나 다를까, 환자는 정말 너무 힘들다면서, 허셉틴 더 이상 못 맞겠다면서 거의 울기 직전이다.
"제가 그날 검사결과를 잘못 확인한 것 같아요. 갑상선기능이 떨어져서 이렇게 힘드신것 같습니다. 하셉틴과는 관련이 없어요. 갑상선기능저하증이라면 모든게 다 설명됩니다.
내분비내과 선생님 만나고 약 먹으면 좋아질겁니다."
"..."
환자는 나의 이런 간단하고도 썰렁한 설명을 이해해 줄 정도로 몸 상태가 양호하지 않았다.
너무 화가 난 모양이다.
날 잘 이해해주는 환자이고, 내가 쓴 책 읽고 감동받았다면서 초콜렛도 선물로 안기고 간 환자였다.
그런 그녀도 나에게 단단히 화가 났다. 나도 할말이 없다.
전화를 걸어 일부러 확인까지 했는데 내 눈에 뭐가 씌웠나...
좀더 일찍 약을 먹기 시작했으면 훨씬 덜 힘들었을텐데...
환자의 말에 주의깊게 귀를 기울이고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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