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가슴으로 사랑하기 1020

전 언제까지 항암치료 해야하나요?

다행스럽게도 유방암에 쓸 수 있는 항암제는 많다. 암 연구의 시초가 유방암에서 기원하는 일도 많았고 수 많은 신약 개발도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암의 특성도 다른 암에 비해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는 편이다. 쓸 수있는 약제의 옵션이 많다는 점에서 환자분께 다행이기도 하다. 전이성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항암치료의 원칙은 가능한 단독약제를 연이어서 쓰는 것이다. 복합으로 한꺼번에 2가지 약제를 쓰는 경우도 있는데 두가지 약을 한꺼번에 쓰니 반응도 좋고 생존률도 향상될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만큼 독성이 강하여 전체적인 생존률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이론적 가설을 만족시키지 못하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교과서적인 대원칙은 단독 약제로 가능한 오래 - 병이 나빠질 때까지 - 쓰다가 병이 진행..

미리 예상하지 말자...

어제 내내 오늘 환자 만날 일에 대해 고심했었는데... 환자가 오면 어떻게 대할까... 그런데 오늘 만난 환자.. 얘기를 전해들은 것에 비해 훨씬 괜찮다. 1. 구토감 지난 1주일 동안 많이 토하고 힘드셨다는데 그게 항암제 자체 때문이 아니라 항암치료 후 어지러움증이 심해서 2차적으로 토하신 것 같다. 또 항구토제로 들어갔던 약이 있는데 오히려 이 약의 부작용으로 어지러움증도 심하고 진정 효과가 심해서 불규칙적으로 많이 주무시고 정신도 맑지 않으셨던 것 같다. 2. 항암제 독성 이번 항암 약제가 환자랑 잘 맞지 않았던 모양이. 항암 약제의 부작용이 아주 예민하게 나타났던것 같다. 항암제를 맞고 집으로 돌아간 그 날 저녁부터 어지러움증, 신경 과민증 (차가운 물건을 전혀 잡을 수 없을 수 없었다 함) 등등..

호르몬약, 이거 만만치 않네

이제 힘든 일은 거의 다 지나갔습니다. 수술도 끝나고 방사선치료도 끝나고 항암치료도 끝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루에 한알, 호르몬제만 드시면 됩니다. 이렇게 힘든 치료를 다 잘 견뎌내신 분이니, 호르몬 하루 한알 먹는것 쯤 별거 아닙니다. 그런데 막상 연구를 해 보니 전체 유방암 환자 중 5년간 호르몬제 복용이 필요하다고 처방받은 환자 중 50% 이상이 이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는다고 조사되었습니다. 저는 내심 충격적이었습니다. 짧은 외래에 오셨을 때 '약 잘 드시고 계시죠?' 라고 물으면 '네'라고 대답하시는 걸 다 믿고 있었는데... 사실 이 호르몬제를 매일 꾸준히 5년 혹은 10년간 복용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단지 약 복용을 잊지 않고 꼬박꼬박 먹는 것이 힘들다는 뜻이 아니라 호르몬제도 부작용..

가까운 사람과 호스피스에 대해 얘기를 시작하며

오늘 환자분을 뵙기로 했다. 가까운 분이라 입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 본인 생각이 어떤지도 전혀 알수가 없다. 어제 저녁 내 오늘 이분을 어떻게 만날지, 만나면 무슨 얘기를, 어떻게 시작할지 고민이 되었다. ... ... ... 최근에 환자분 상태를 돌이켜본다. 진료실에서는 환자의 얘기를 듣기보다 내 얘기를 하기가 바쁘다. 현재 내 진료에는 하자가 없고 최선의 선택이고 그렇게 했더니 지금 경과는 어떻고 이런 상황을 쭈욱 나열하듯 설명하고 그러므로 다음번 치료는 어떻게 하겠다고... 그 사이에 환자는 몇 가지 힘들었던 육체적 증상만을 얘기한다. 그러세요? 그러면 그 증상은 이걸로 해결보고 저 증상은 저렇게 바꿔보면서 경과봅시다. ... ... ... 오늘은 항암치료를 하러 오시는 날이지만 아마도 못 하..

수술 전 항암치료를 시작하는 당신께

수술하기 전 내과의사인 저를 만나게 되셨습니다. 외과 선생님께서 환자분께 항암치료를 먼저 하고 오라고 하신 건 수술을 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하기 때문이 아니라 수술하기 전에 항암치료를 하면 유리할 수 있는 몇가지 이득이 있기 때문에 저에게 먼저 보내신 겁니다. 그러니까 너무 많이 속상해 하지 마세요. 겨드랑이 림프절 검사를 해서 거기서 악성 세포가 나오거나 종양세포가 너무 커서 크기를 줄여서 수술을 하는게 더 나을 것 같으면 항암치료를 먼저 시도해봅니다. 겨드랑이 림프절 검사에서 악성세포가 나올 때 반드시 항암치료를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과서적인 기준에 의하면 수술을 먼저 해도 되고 항암치료를 먼저 해도 된다고 되어 있어 병원마다 스타일의 차이가 있으며 저희 병원은 항암치료를 먼저 하고 있습니..

수술 후 항암치료를 시작하는 당신께

유방암 진단에 가슴 덜컹 내려앉아 여러날 고민하고 걱정이 많으셨던 당신, 이제 수술도 끝나고 눈으로 보이는 병변을 모두 제거해 버렸으니 속 시원하시죠? 큰 일 하셨습니다. 수술이 전체 치료과정 중 매우 중요한 단계입니다. 일단 한숨 돌리셔도 되겠습니다. 눈에 보이는 병은 다 없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세포들이 잔존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우리는 수술 후 항암치료를 시작하게 됩니다. 항암치료를 추가하는 것이 전체적인 재발율과 생존율을 높인다는 연구가 2000년대 초반 공식화되었습니다. 수술을 하고 나면 비로소 병기가 정확하게 확정됩니다. 1기, 2기, 3기 이렇게 병기를 나누는 이유는 병기마다 예후가 다르고 치료약제나 방법이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조기일수록 재발율이 낮고 예후가 ..

어떻게 호스피스를 환자에게 설명할까...

신장에 생긴 암. 그런데 신장암은 아니고... 원격 전이는 없었지만 주위 림프절 전이가 있었고 병리학적으로 진단하는데 2주가 걸렸다. 진단이 어려워 다른 병원의 병리학 선생님들까지도 돌아가면서 의견을 교환해야 했을 정도로 세포의 모양과 분화도가 좋지 않고 특수했다고 한다. 여하간 수술로 주된 종양은 제거했지만, 주위 림프절은 남아있는 상태로 수술은 끝났고 수술 후 항암 및 방사선 치료를 동시에 진행하셨다. 나이는 이제 갓 60세를 넘긴 상태인데 생각보다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다. 외래에서 항암 방사선 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의사인 나는 "오늘 피검사가 회복되지 않았으니 한주 쉬어야 겠습니다. 다음주에 다시 피검사하고 봅시다." 이렇게 간단하게 말하고 말았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환자는 집..

작아지는 나

환자가 적어온 다이어리. 먹은 음식 종류와 양 운동량 몸 컨디션 아이들 학교에 학부모 총회 참석 친정 식구들과 외식 이런 사건들로 가득차 있는 그녀의 항암제 다이어리. 외래 중 나는 그녀에게 말을 시키고 눈으로는 다이어리를 잽싸게 훑어 본다. 그러다가 들어온 문구. "내가 자꾸 작아지는 것 같고, 사람들이 나에게 잘 해주는 것 같지만, 외롭고 고립되는 느낌이 든다" 난 몸 컨디션을 물어본다. 4기 유방암을 진단받은 36세 젊은 엄마. 우리 병원에 처음 올 무렵은 어딘가 모르게 몸이 힘들어서 잠도 잘 못자고 음식도 잘 못먹고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그럴 것이다. 병이 깊었다. 그녀의 증상은 병의 분포와 관련하여 다 설명될 수 있었다. 그런데 항암치료를 시작하니 생각보다 독성을 심하지 않고 컨디션은 ..

그래도 참아야 하는가?

의사보다 환자가 욱 할때가 더 많다는 거 잘 안다. 환자는 의사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1:1 관계로 정정당당하게 맞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환자나 보호자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그에 맞대응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환자는 나름대로 근거와 이유를 대서 나에게 문제제기를 하지만 -이성적일 때는 문제제기이고 이성을 잃을 때는 따지는 것이 되지만 - 의사인 나로서는 그의 문제제기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반박할 수 있다. 그러나 당장 그 앞에서는 그 질문에 의학적인 결함이나 논리적인 정합성을 설명해도 별로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 이미 많이 분노하고 그걸 참다가 왔기 때문에 내 설명을 별로 들으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시간차를 두고 설명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되..

학생실습 시작

오늘 본과 3학년 학생이 실습을 나왔다. 그는 나의 첫 실습학생인 셈이다. 종양내과에는 2주에 한번씩 학생들이 실습을 나오고 작년까지도 실습강의, 회진 같이 돌기 그런 걸 했었기 때문에 별로 특별한 일도 아닌데 오늘 내 앞으로 배당된 학생이 나오고 보니 새삼스럽다. 그리고 내가 학생 때 처음 만난 환자, 병원, 레지던트, 교수님들은 어땠는지 그 첫 느낌이 생생하게 떠오르는데 10년이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말았다. 얼마전 우연히 입수한 본과 1학년 시절의 사진들이다. 신경해부학 실습 시간 중 쉬는 시간인것 같은데 교과서를 보지 않고 족보를 외우고 있는 나의 모습을 동기 누군가가 찍었다가 엊그제 보내주었다. '누나, 학생들에게 족보 보지 말고 교과서 보라'고 말하나요? 라는 제목과 함께. 웃음이 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