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제가 외판원은 아니구요...

슬기엄마 2013. 11. 19. 20:37


의사의 의료행위는

급여가 되는 항목과

비급여가 되는 항목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렇게 정해져 있는 항목 이외의 어떤 처방이나 의료행위는 다 불법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환자가 심평원에 민원을 제출할 경우 해당 진료비를 환자에게 모두 다 환급해 주어야 합니다. 

사안에 따라 벌금을 내는 경우도 있는것 같습니다.

그런 항목을 '임의비급여'라고 합니다. 

그래서 절대 임의비급여로 치료하거나 약을 쓰거나 검사하면 안됩니다.

그건 불법이 되는 셈이니까요. 

(대표적인 사건으로 소아 백혈병 치료 중 사용한 백혈구 생성 촉진제를 임의비급여로 과다하게 사용했다며 민원을 제기한 서울성모병원 사건입니다. 그 사건을 보며 비슷한 환자군을 진료하는 의사로서 매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절대 소신대로 진료하지 말고 법대로 진료해야 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죠.)


그런데도 전 가끔 불법을 합니다.

환자들이 민원을 제기하거나 소송하면 100% 다 제 책임입니다. 

그래서 덜덜 떨면서 불법행위를 합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약을 썼는데 성적이 좋지 않아 환자가 나를 고소하면 어떻게 하지 그런 공포심을 느끼면서도 

가끔 불법을 합니다.

제가 불법 행위를 하면 불법 처방이 병원에 보고가 됩니다.

이제 절대 안하려구요. 


다행히 의료행위가 아닌 것은 괜찮습니다.


전 가끔 비의료행위에 관해 환자들에게 소개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소심하게도 저에게는 단돈 10원 한장 들어오는게 없다는 걸 먼저 밝히면서요


예를 들면


항암치료 중에 손발톱이 찌글찌글 해지는 경우가 흔한데요

그런 증상을 예방하거나 완화시키는 매니큐어나 보호제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특정 회사에서 개발된 거라 공공연하게 밝히기는 그렇네요)  

예방용으로는 한달에 한병, 치료용으로는 한달에 2병정도 쓰게 되는 이 매니큐어는 

본인도 의사이면서 항암치료 중인 제 친구가 자기가 발라보니 영 손톱이 멀쩡하다며 환자들에게 알려주면 좋을거 같다고 소개해 준 것입니다. 

의약품이 아닌 것으로 분류가 되어 있어 병원 처방이 안되고 우리병원 의료기 상사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격도 매우 비쌉니다. 한병에 56000원 정도 하는거 같습니다. 보험이 안되니까 비쌉니다. 비싼 걸 소개하려니 영 그렇습니다.

 

학교가는 아이들 옷 매무새도 봐줘야 하고, 딸애 머리도 빗겨줘야 하는데

손톱이 거칠어서 애기들 볼에 상처날까봐 노심초사하는 엄마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저는 젊은 엄마들에게 이 매니큐어를 소개합니다.

샾 같은 곳에 가서 한번 네일케어 받는데도 3-4만원 하니까 

한번 이거 발라보라고 말이죠. 


또 같이 쓰는 손 보호제도 일반 보습제나 제가 의약품으로 처방하는 스테로이드 크림보다 효과가 더 좋은거 같더군요. 비싼것만 빼면 훨씬 좋아보입니다.


그 회사에서는 이렇게 항암치료 중인 환자의 피부- 헤어, 두피, 손발톱 등을 포함 - 부작용을 예방 치료할 수 있는 제품을 많이 개발했더군요.


소심하게 다시 한번 밝히지만 그 회사와 저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오늘은

우리 학교 후배이며 본인도 의사로 일하고 있고 

지금 항암치료 중인 엄마의 보호자 역할을 하는 분께 메일을 받았습니다.


탈모로 스트레스를 받는 엄마를 위해

피부과 친구를 통해 도움이 될만한 약을 알아봤다며 

저에게 추천해 주더군요. 

역시 처방전없이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제품들입니다.

그래서 역시 가격도 만만치 않습니다.

(아마 전 세계적으로 한국만큼 병원에서 처방하는 약이 질이 좋으면서도 싼 나라도 없을 것입니다.)


이 약들이 어떤 약인지 제가 먼저 알아보고 공부를 해야겠지만

괜찮다고 판단되면 

저는 환자들에게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그런데요

환자들에게 이런 설명을 할 때 

기분이 좀 묘합니다.

제가 마치 외판원 같기도 하고 특정 제품을 취급하는 회사와 뒷거래가 있는 약장사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혹시나 나를 그런 사람으로 볼까봐 우려도 됩니다.


그런 눈치를 보면서 진료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자꾸 경고 먹으니까 그런거 같습니다.

전 아직 관련 소송을 당한 적은 없는데요

한번 그런 일을 당한 선생들 얘기를 들으면 

환자를 위한다는 소신 진료가 뭔지 원칙도 모르겠고 환자를 진료하는 것도 덧없게 느껴진다고 하더군요. 


저도 그런 날을 맞이하면

새가슴이 되겠죠.

어떻게 하는게 잘 하는건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 일들이 점점 많아지는데

분노하지 않고 의사로서 최선을 다하는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자꾸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암튼 전

특정 회사와 전혀 관련이 없음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