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그녀에게 들리는 소리들

슬기엄마 2013. 11. 10. 10:41



나보다 두살 젊은 자궁경부암 환자.

폐전이가 있다.

그런데 아주 조금 있다.

그래서 아무 증상이 없다.

폐전이가 발견된 후 항암치료를 했는데 효과가 없고 오히려 약간 크기가 더 커졌다. 많이 커진건 아니고 3mm 가 5 mm 가 된 그 정도다. 그런 점들이 몇개 안된다. 


그 상태에서 내 외래를 처음 방문하였다. 

이미 표준 항암제는 다 사용한 다음이다.



지금 특별히 불편한 증상이 있으신가요?

혹시 빨리 걸으면 숨차거나 가슴이 답답한 증상 같은게 있나요?



없다고 한다. 



그럼 한달만 더 쉬다가 다음 치료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사실 지금 써볼만한 좋은 약이 없어요.

특별히 몸이 힘들게 하는 증상이 없으니 일단 좀 쉽시다. 

지금 어디 아픈 데도 없는데 

암이 남아있다는 이유로 계속 항암치료만 하면서 살 수는 없어요.

몸도 좀 쉬어야 합니다.



그러는 동안 암이 더 나빠지는거 아닌가요?



아마 조금은 나빠질거에요. 

그렇게 좀 나빠지더라도 항암치료를 하면서 쌓인 독성도 좀 빠지게 기다리고

몸의 정상적인 기능들이 돌아온 다음에 치료를 시작하는게

그 다음 치료를 잘 견딜 수 있게 도와줄거에요.

지금 속도를 보아하니 빠르게 나빠지는 단계는 아니신거 같아요.



알겠어요.



처음 만난 의사가 치료 안하고 쉬자고 하니까 마음이 불안하고 그런가요?



좀 불안하기는 해요. 

근데 저도 사실 좀 쉬고 싶었어요. 



바로 치료를 시작하지 않고 시간을 끄는 내가 내심 못 미덥겠으나

그녀 또한 계속 되는 치료에 지친것 같다.

그녀는 아주 똑똑하게 생겼다. 옛날에 공부 잘 했을거 같은 인상이다. 

환자가 똑똑해보이면 내가 좀 위축이 되는데(!) 

이 환자에도 마음의 부담이 약간 있었다.  

그래도 처음 만나 면담을 하는거 치고는 비교적 내 말에 우호적으로 대답을 해 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 말 중간을 끊고 자기 말을 하는 경향이 좀 있었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감정적으로 약간의 흥분 상태가 느껴지기는 했지만

지금 이렇게 병이 않좋아지는 상황에서 정서가 안정되고 편안한 것도 어찌보면 정상이 아니니, 그냥 그러려니 했다. 



한달 뒤에 보기로 하고 헤어졌는데 3주만에 왔다.



너무 가슴이 답답해서 왔다고 한다. 예약된 외래가 아니라 당일 접수로 해서 진료 마지막 시간에 그녀를 만났다. 

힘들었는지 맥박도 빠르고 얼굴도 붉게 상기되어 있다. 

가슴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큰 변화가 없다.

병이 조금씩 나빠질 수도 있다고 한 내 말 때문에 심리적으로 영향을 받은 걸까? 

괜히 그렇게 얘기했나? 싶었다. 



엑스레이 상으로는 큰 변화가 없어보입니다.

청진상으로도 나쁜 소리는 안 들리는 거 같아요. 

가슴 답답한거 말고 무슨 다른 증상이 있나요?



기침도 하고 가래도 있고 산에 가면 숨도 차고 그래요.



산에 다니시나요?



산에서 살아요.



어디 사시는데요?



봉화에 살아요.

원래는 서울에서 살았는데 암 걸리고 나서 부모님이랑 봉화로 이사가서 산속에서 살고 있어요.



환자 이야기를 치료 기록과 맞춰보니

처음 방사선항암병용요법 시작할 무렵 봉화로 이사가신 것 같다.

봉화에는 인적이 뜸하고 깊은 산골짜기가 많다. 



거기서 병원 다니는거 너무 힘들지 않아요?

오늘 병원 오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가요?



대중교통으로 오니까 5시간 정도 걸려요. 집에서 한참 걸어내려와야 동네버스를 탈 수 있고, 거기서 봉화역까지 온 다음에 무궁화호 타고 서울 와요. 무궁화호가 자주 있는게 아니라 시간이 더 걸리는거 같아요. 



그녀는 내가 질문을 하면 아주 논리적으로 대답을 한다. 

원래 직업이 고등학교 수학 교사였다고 한다.



치료를 받으러 계속 병원을 다녀야 하는데 너무 외진 곳에서 살면 

병원 다니기가 너무 힘들어서 지칠거 같아요. 

오늘처럼 힘들면 병원에 빨리 와야 하는데, 병원에 오느라 힘 다 빠지겠네요.



그래도 괜찮아요. 이 정도는 다 견딜 수 있어요. 

정신만 좀 차리고 살면 좋겠어요. 



정신이 없나요?

항암치료를 받으면 신경계도 영향을 받아서 환자가 좀 그렇게 느낄 수도 있어요.



그게 아니구요, 저 정신분열병이 있어요. 

증상은 환청이구요. 

그래서 늘 정신이 없어요.

너무 여러가지 소리가 들려서 그러는거 같아요. 



환자가 딱부러지게 말한다. 

보통 환자들은 이런 방식으로 딱부러지게 얘기하지 않는편인데 그녀는 툭 던지듯,  대놓고 얘기한다. 



무슨 소리가 들리나요? 



너 그렇게 해 봤자 낫지 않는다. 결국은 죽을 거다. 치료받아도 소용없다. 

저를 쫒아다니면서 그런 얘기를 계속해요.



지금도 들리나요?



네. 제가 선생님 얼굴 안 쳐다보고 다른 벽 같은델 보면 계속 얘기하는게 들려요. 

병원 다녀봤자 소용없다고. 넌 결국 죽을꺼라고 말해요.

부모님은 제가 산속 공기 좋은 곳에 가 있으면 좋아질거라고 봉화로 이사를 하셨지만

조용한 산속에 들어가 있으면 더 크게 들리고 절 괴롭혀요.

가파른 곳에 가면 뛰어내리라고 명령하고 그래요. 



그런 얘기 들은지 얼마나 되었나요?



4-5년 된 것 같아요. 그때 이혼했어요. 처음에는 이런 얘기가 들린 건 아니었는데, 암 진단받고서부터는 나를 괴롭히는 소리가 더 심해진거 같아요. 요즘에는 매일 환청이 들려요. 



환청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나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런 소리 계속 들으면 너무 힘들지 않나요? 



힘들어요...



정신과에 가서 진찰을 받고 약을 먹어봤냐고 물었더니

한달 먹어봤는데 효과가 별로 없는거 같았다고, 부모님은 정신과 다닐 필요 없을 것 같다고, 공기좋은데 가서 마음 다스리면 될거 같다고, 더 이상 병원에 보내시지 않는거 같다. 

우리 병원 정신과 협진도 한번 보기는 했다.

차트에 환청 얘기는 없다. 주요우울증이라고 판단했던 거 같다. 환청 얘기를 안한 걸까?



오늘 정신과 진료를 같이 봤으면 좋겠는데 

이미 정규 진료시간이 끝나서 협진을 낼 수가 없다.

내가 입원하자고 했더니 집에 가서 돈을 가지고 와야 한다고 한다. 오늘 가지고 온 돈이 얼마 안된다며.  부모님이 돈 관리를 잘 못하시기 때문에 자기가 해야 한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일단 오늘 흉부 CT를 찍고 가시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 외래에 오면 우리 병원 정신과 진료를 같이 좀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녀는 지금 너무 정신이 없어서 다음에 와서 얘기하자고 한다. 

기침약이랑 가래약만 타가지고 갔다. 

그녀를 진료한 시간이 오후 5시가 넘었으니 집에 돌아가면 캄캄한 밤중이겠다. 산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환청이 그녀를 또 괴롭힐텐데...



정신분열병 증상은 약을 먹으면 훨씬 좋아질 수 있는데...

이렇게 힘들지 않게 지내도 되는데...

가족의 사랑과 지지를 받아도 시원치 않을 판에

환청까지 그녀를 괴롭히고 있으니

그녀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당하는 고통이 너무 클 것 같다. 



다음주 외래에서 보자는 내 말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입을 꽉 다물고 고개만 끄덕이고 나간다. 



그녀에게 사방이 적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