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이번에는 내 감이 틀렸군요

슬기엄마 2013. 7. 10. 02:56


전이성 유방암 환자는

항암 치료를 할 경우 2주기 (6주) 혹은 3주기 (9주) 에 한번씩

호르몬 치료를 할 경우는 3개월 (12주) 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영상검사를 하면서 치료의 지속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사진을 찍어서 

안정병변(stable disease)이냐 질병진행(disease progression) 이냐를 판단한 후

이전 치료를 계속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약제를 바꿀지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안정병변이냐 질병진행이냐를 결정하는 것은

국제적인 판정기준에 따른다.

확실하게 나빠졌다는 기준에 부합하기 어려우면 

일단 안정병변에 준해 치료를 유지하도록 되어 있다.

조금 나빠졌다고 약제를 빨리 바꾸는 것이 궁극적으로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다.

약제를 자꾸 바꾸면 나중에 쓸 약이 없어지게 된다.

약효가 조금 늦게 나타날 수도 있고

나중에 보면 병변의 크기가 대동소이한 변화를 보일 수도 있으니

너무 서둘러 약을 바꾸지 않는게 좋다.


CT나 bone scan, 때론 MRI, PET 등을 영상검사로 시행하게 되는데

검사마다 잘 보이는 병변, 특징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병변의 종류가 달라

때론 같은 병변에 대해 반복적인 검사를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bone scan을 찍었는데 애매하면 뼈상태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영상검사인 MRI를 다시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조금 애매하다고 검사를 반복하게 되면

전이성 유방암 환자들처럼 오래 치료받으면서 반복적인 검사를 하는 환자들은 

검사를 너무 많이 하게 되는 경향이 생긴다.

조영제를 많이 사용하게 되거나

방사선 피폭량이 많아 질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최소한의 검사로 최대한의 정보를 끌어낼 수 있어야 하고

의사의 임상적인 판단과 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그러므로 외래에서는 촉을 놓치면 안된다. 


환자는 아무런 증상 변화도 없는데 영상 검사가 나빠져서 병의 진행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반면

영상검사에서는 별로 변화를 보이지 않는데 환자 몸이 먼저 뭔가 변화를 느끼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검사에 백프로 의존할 수 없고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을 열심히 청취해야 한다.

환자의 증상은

지금 치료하는 약 때문에 생긴 것일수도 있고

원래 가지고 있는 병 때문일 수도 있고

그냥 병이나 치료와 상관없이 다른 병 때문에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증상을 청취하면서 판단을 잘 하는게 필요하다.

늘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최소한의 검사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야 한다는 것.

이런 노하우는 경험에서 배우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환자가 증상을 호소할 때 빠른 시간 안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

경과관찰 할 것인가, 검사를 할 것인가.


전이성 암환자를 치료를 오래 하다보면 

환자의 증상을 판단하는 것이 애매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명 한명 촉을 세우고 봐야 한다.

내가 피곤하고 정신이 맑지 않으면 그 촉이 무뎌진다. 

요즘 내 촉이 별루다.



그녀는 

6년만에 유방암에 재발했으나

그 병변이 명확하게 종괴를 형성하지 않고

겨드랑이 림프절 근처의 근육과 섞여서 애매하게 존재하였다. 

그래서 CT를 보여주어도 환자 입장에서는 어디가 병인지 명확히 알기 어려웠다.

방사선 치료 이후에는 치료 이후 발생한 섬유화 증상으로 당기는 증상이 생겼는데

통증이 있을 때 그게 병이 나빠져서 그런 건지 치료 후유증 때문에 그런 것인지 늘 애매하다.

진통제를 먹어보기도 하고

다시 사진을 찍어보기도 하면서

애매한 시간이 1년 이상 유지되었다.

지금 보면 질병 진행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그래서 나는 내심 호르몬제를 바꾸지 않고 계속 유지했던 나의 판단에 만족하였다.



그러나 환자는 생각이 달랐던 모양이다. 

호르몬제의 부작용으로 폐경기 증상때문에 고생을 하는 그녀는 

늘 몸이 찌뿌둥하고 어깨도 아팠다 말았다 도대체 치료가 잘 되고 있는지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애매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외래에서도 그녀는 나를 퉁명스럽게 대했다. 내가 이것저것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하지도 않고 왜 맨날 비슷한 질문을 하면서도 속시원히 증상을 해결해 주지도 못하냐고 나를 비난하는 것 같았다. 대놓고 말하지 않았지만 난 늘 그녀의 불만스러운 시선을 느낄 수 밖에 었었다. 

그렇게 어색한 관계로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몇일 전 

환자는 목 림프절이 만져진다며 예정에 없던 외래를 예약하고 진료를 보러 왔다.

만져보니 동글동글하게 만져지는 림프절이 몇개 있다. 


젠장, 병이 나빠졌나보다. 


환자는 어깨를 비롯해서 목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고 몇일 증상이 지속되니 머리도 너무 아프다고 호소한다. 가지고 있는 진통제를 먹어도 통증이 조절되지 않는다고 한다. 목 림프절에 병이 있던 환자가 병이 나빠질 때 뇌로 전이되는 경우도 흔하다. 


당일 접수를 하여 외래 순번이 제일 뒤로 잡혀 있었다. 시간이 늦어 초음파 검사를 할 수가 없었다. 통증이 심하니 입원을 하고 싶다고 했지만 이미 병실 자리도 없는 상태다. 환자는 통증때문에 외래에서 울고 있었다. 응급실로는 가지 않겠다고 한다. 아파서 CT도 못 찍겠다고 했다. 입원하면 검사해보자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일단 주사 진통제를 맞고 가라며 등을 떠밀어 그녀를 집으로 보냈다. 다음날로 입원장을 주었다. 그러나 그 다음날도 방이 없었다. 환자는 또 외래로 왔다. 주사 진통제를 맞고 좀 나아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불편감을 여전하다고 했다. 참을만하면 일단 검사를 먼저 하시라고 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서 오늘 초음파를 보고 조직검사를 한 후 외래에 다시 오셨다. 


다시 목 림프절을 만져보니 크기가 작아진 것 같다.

조직검사를 이미 하기는 했지만 

초음파 상 모양도 그리 나빠보이지 않는다. 

감기에 걸려 경부 림프절들이 커졌다가 점점 좋아지는거 아닌가 싶었다.

엊그제 찍은 CT에서도 눈에 띄게 나빠진 병변이 없다. 

뇌 MRI는 정상이다. 


감기 걸렸었나봐요.

암이 나빠진게 아닌거 같아요.

최근에 무리해서 무슨 일을 많이 하셨나요?


첫날에는 이런 대화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환자가 너무 통증이 심하다고 호소하며 우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일단 검사 결과가 나쁘지 않다고 말하니 안심이 되었는지

환자도 비로소 대답을 한다. 


집에 일이 좀 생겨서

피곤하게 일을 좀 많이 헀어요. 

신경쓰이는 일이 좀 있었거든요. 


조직검사 결과는 3-4일 후에 나오니 그때 제가 확인해서 알려드릴께요.

일단 지금 가지고 있는 호르몬제 계속 드세요.

통증은 좀 어떠세요?


지금은 하나도 안 아파요.

결과를 듣고 나니 안 아프네요.

검사하면 좋아지나 봐요. 


그녀도 어색한지 웃는다.

나에게는 잘 안 보여주는 웃음이다.



이번에는 검사의 승리다.

아파 죽겠다고 하다가도 검사하고 나면 좋아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환자들이 검사를 원한다고 무조건 검사를 하는 건 의사가 아니다.  

최소한의 검사를 주장하는 나도 환자들과 그 자존심 싸움으로 실갱이를 벌이는 적이 종종 있다.

이번에는 병이 나빠진 줄 알았던 내 감이 틀렸다.

그래도 괜찮다.

환자가 괜찮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