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나의 비겁함

슬기엄마 2013. 6. 28. 20:34



그녀를 만나러 가고 싶지 않았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그동안 그녀에게 모진 말, 못할 말 많이 했는데

이제 더 이상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협진이 났는데도 가서 만나지 않고 EMR로 답신만 썼다.

난 도저히 그녀를 다시 만날 용기가 없었다.

나의 비겁함...



그녀는 유방암을 시작으로 지난 2년 동안 세번의 암을 진단받았다.

유방암 진단 1년후 갑상선암 

그리고 1년 후 백혈병


첨에 유방암은 2기초인 줄 알았다.겨드랑이 림프절도 없었다.

그래서 PET 등과 같은 영상검사도 하지 않고 바로 수술을 하였다.

(원래 임상적으로 겨드랑이 림프절이 의심되지 않는 조기유방암은 초음파검사, mammo 만 검사하고 수술하는게 원칙이다.)


당시 임상연구가 있었다.


일종의 골다공증 치료의 목적으로 개발된 Denosumab 이라는 약이 뼈 속에 숨어있는 종양세포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 재발율을 낮출 수 있다는 가설하에 항암치료와 병용요법으로 진행되는 임상연구였다. 위약군과 실험군이 있지만 위약군에 배정되어도 환자에게 손해볼 것 없고 실험군이 되면 실재 항암치료 후 골다공증이 많이 생기니까 그걸 예방할 수도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그녀는 나의 설명을 듣고 임상연구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나랑 동갑내기인 그녀는 나보다 덩치도 좋고 성격도 밝고 시원시원한 충청도 아줌마였다.

 

이 임상연구에서는 항암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흉부 및 복부 CT를 찍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찍은 흉부 CT에서 폐 전이가 발견되었다.

너무너무 미세한 입자들이 있었다.

조직검사까지 하였다.

폐전이가 맞았다.

겨드랑이 림프절도 없는데 폐전이가 동반되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환자는 갑자기 4기 유방암 환자가 되었다.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나도 이해가 잘 안가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항암치료를 시작하였고 

다행히 폐병변은 별 변화없이 조용히 자리잡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년이 지나 PET-CT를 찍었다.  

증상도 없고 만져지는 경부 림프절도 없는데

이번에는 갑상선암이 진단되었다.

경부 림프절까지 진행되었으니 어쩔 수 없이 수술을 하였다. 

그녀는 갑상선 전절제술 후 갑상선 호르몬제도 같이 먹는 사람이 되었다.

그녀는 갑상선 수술을 하고 내 외래에 와서 펑펑 울었다.


나는 속으로 갑상선암은 치료하면 완치되는 것이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유방암 폐전이가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또한 상처가 되는 말이니 그냥 그녀가 우는 걸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괜히 PET-CT를 찍었나 싶었다. 갑상선 암이 나빠지는 속도보다 폐전이가 나빠지는 속도가 더 빠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1년이 지났다. 

올 초, 갑상선 암의 추가 치료를 위해 요오드 치료를 받았다.

그때부터 기운이 없고 힘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병원에서 피검사를 했는데 원래 다니던 병원으로 가라는 말을 들었다며 예약을 앞당겨 외래에 오셨다. 

결과지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백혈구가 십만개가 넘고 혈소판은 만개 밖에 안되었다.

이건 백혈병이다.

당장 입원시키고 그날 밤 혈액내과로 전과하였다.

급성 백혈병 중 일부 세부아형은 한시를 앞다투어 치료해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유방암 항암치료와는 상대도 안되는 고용량의 항암치료를 받았다.

거의 한달간 기껏 치료를 받았는데 골수검사에서 완전관해를 이루지 못해

약을 바꾸어 다시 유도요법으로 치료를 하였다.

그리고 다행히 완전관해가 되었다. 

보통은 

그 다음에 이식을 해야 한다.

언니가 있어 골수이식이 가능한지 알아보고 있다. 

그러나 유방암 폐전이가 있는 상태에서 골수이식을 하는 것이 그녀의 상황에서 맞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지금 폐전이 상태는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화없이 안정적인 상태이지만

일반 항암치료와는 달리, 골수이식은 치료 합병증이 심각해서

어쩌면 생명을 걸고 새생명을 얻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 만큼 위험하고도 힘든 과정이다. 

기껏 힘들게 이식을 해도

폐전이가 나빠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석달 가까이 힘든 병원 생활을 하고 퇴원한 그녀가 

유방암 클리닉 외래에 왔다. 

입원했을 때 협진이 났지만 가보지도 않았는데...



고생많았어요.


유방암 치료는 암것도 아니드만요.


맞아요. 

그래도 안색도 괜찮고 살도 별로 안 빠졌네요.


내가 이 살집으로 견딘거에요. ㅎㅎ


2번에 걸친 백혈병 항암치료로 까맣게 타들어 간 그녀의 얼굴, 

난 모른 척 하였다.


나 이제 유방암 치료는 어떻게 해유?


일단 다행인 것은 

폐전이 상태가 안정적이고 원래 전이 상태도 심각하지 않았으니

유방암보다는 백혈병 치료에 주력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유방암 치료로 먹었던 호르몬제는 끊었던 거에요. 


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말문이 막혔다.


언니 골수랑 맞는지 알아볼려구요.


네.

저도 고민 중이에요.

이식을 하는 것에 대해서...


왜요?


힘들게 이식하고 유방암 나빠지면 어떻게 해요.

보람이 없잖아요. 


아.... 네....


순간 그녀에게 뭐라도 의지할 것을 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녀가 삶을 놓치지 않고, 흔들리지 않도록, 움켜 잡을만한 뭔가를 줘야 할 것 같았다.

둘러본 진료실에는 그녀에게 줄 게 없다.


내가 가운에 달고 다니는 유방암 뱃지를 그녀의 스웨터에 달아주었다.


이걸 달고 다니면

유방암을 다 물리칠 수 있을지 몰라요. 


맞아요.

백혈병 치료해주는 선생님도 그랬어요.

이번에 백혈병 치료하면서 유방암도 다 같이 치료해 버리자고 하셨어요.   

저 7월 둘째주에 입원해요.


그래요.

그때는 가볼게요.

지난번에 못 가봐서 미안해요.


괜찮아요.

다른 환자들 열심히 봐주세요.

저는 열심히 치료받고 있을게요. 


그냥

눈물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