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칼슘 하나를 먹었을 뿐인데...

슬기엄마 2013. 7. 22. 20:33

 

정기적으로

매일 하루 15분 이상

피부를 노출한 상태로 햇빛을 받는 것만으로도

하루 필요한 비타민 D 요구량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하지만

매일 그럴 여유가 없기 쉽상이고

매일같이 해가 쨍쨍 날씨가 좋은 것도 아니고

또 얼마나 피부를 노출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썬크림도 안바르고 햇빛을 쬐면 얼굴에 기미가 생길까봐 걱정이 되고

이래저래

실천이 어렵다.

핑계댈 일이 너무 많다.

그래서 우리는 몸을 움직이거나 생활습관을 조절하면서 건강행위를 실천하는 것보다는

뭔가를 먹음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한다.

하루 한알 먹는 신비의 보조제가 이런 자질구래한 문제들을 다 해결해 주기를 바란다.

 

비타민 D는 장에서 칼슘을 흡수하는 대사과정에 작용하는 등 칼슘 대사에 관여한다. 뼈나 치아 등의 구성성분이 되는 칼슘은 주로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부분적으로는 비타민 D 대사의 영향을 받아 농도가 유지된다. 그래서 체내 칼슘 농도를 유지하기 위해 비타민 D와 칼슘을 결합한 복합 체재가 처방되곤 한다. 폐경기가 시작되는 여성은 체내 에스트로젠 농도가 떨어지면서 순식간에 골다공증이 올 수 있다. 그래서 뼈를 튼튼하기 위해 이러한 제재들을 복용할 것을 권장한다. 특히 비타민 D 성분 자체가 장기적으로 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역학 연구들이 보고되고 있어 종양학 최신 연구 분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암환자 진료를 하는 중에

몸의 곳곳에서 돌이 생기는 경향이 있는 결석 환자를 제외하고는

가능하면 칼슘과 비타민 D 복합제재를 처방하는 편이다.

이런 문제를 주로 연구하고 환자를 진료하는 내분비내과에서는 좀더 면밀한 검사와 관찰을 통해 약제를 섬세히 잘 처방해 주지만, 종합병원 진료경력이 화려한 장기 환자들은 협진을 의뢰하여 또 다른 과에 가서 진료를 봐야 한다는 사실에 부담을 느낀다. 그래서 종양내과 수준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검사를 한 후 이들 약제를 내가 처방하는 편이다. 하루 한알, 100원도 안하는 값싼 약이라 처방에 부담이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국가의 영양조사에서도 (분류 기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성인 여성의 70% 이상이 비타민 D 부족 상태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섭취를 권고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는 비타민D와 칼슘의 복합제재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들 제재를 복용하면 칼슘 복용에 따른 부작용이 따라올 수도 있다.

칼슘 때문에 위장장애가 올 수도 있고 변비가 올 수 있기 때문에 - 내가 바로 그렇기 때문에 - 나는 이런 약제를 처방할 때 잊지 않고 부작용 설명을 하고 첫 처방시에는 그 부작용으로 인해 약을 복용하지 못할 수도 있으므로 처음부터 몇개월치를 다량으로 처방하지 않는다. 2주치 정도 처방해서 먹어보고 괜찮으면 3-6개월치를 한꺼번에 처방해 드린다.

 

 

평소 잘 알고 지내는 분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칼슘과 비타민 D 가 대화의 주제가 되었다.

이런 보조제들이 실재 우리 몸에 필요하기도 하고 암도 예방하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는 말에 급 호감을 보이셨다.

나는 내 환자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랬는지, 지인이라 오히려 무심해진건지,

별로 열심히 약 설명을 안하고 칼슘 비타민 D 제재를 처방하였다.

 

그는 칼슘 제재를 먹은지 4일만에 아랫배가 너무 아프고 가스가 부글부글차기 시작하면서 장이 꼬이는 듯한 증상을 경험하였다. 칼슘 부작용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한 그는 왜 이렇게 배가 아픈지 원인을 알 지 못한 채 큰 병이 생긴 줄 알고 놀랐다. 응급실이라도 가 볼 참이었다. 몇 시간을 식은 땀을 흘리며 힘들어 했다.

최근 생활 습관이 좀 바뀌면서 긴장한 탓에 변비가 생긴건가 싶어서 변비약을 사 먹었더니 배가 더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다. (일부 변비약은 복용 후 설사를 하기 전에 장내 가스를 형성하는 것들도 있다) 그는 변비약을 먹고 나서 복통이 더 심해지고 급기야 배를 붙잡고 데굴데굴 구르며 하룻밤 내내 고생을 했다고 했다.

 

응급실이라도 가야하나 싶던 차에

나를 만나 본인 증상을 호소한다.

 

아차 싶었다.

 

칼슘 때문에 그런거 같아요.

따뜻하게 배에 팩 대고 계세요.

칼슘 안 먹으면 다시 좋아질 거에요.

특별히 병원에 가실 필요는 없어요.

 

미안했다.

 

 

 

나는 오늘도 외래를 보면서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에 따라 기계적으로 약을 처방한다.

 

선생님, 변비가 생긴거 같아요. -----> (물 많이 드시고 식이 섬유 많이 드시고 햄버거 같은 정크 푸드 드시지 말고 육식 즐겨하지 마시고 운동 많이 하시고 규칙적으로 식사하시도록 노력하세요 이런 설명을 하지 않고) 네 마그네슘 드릴께요. 별로 부작용없는 변 완화제에요.

 

그런데 선생님 그러다가 설사가 나기도 해요 -----> (항암치료를 하다보면 장 점막에 문제가 생겨서 흡수/배설 장애가 생기기 마련이에요. 규칙적인 식습관이 중요할 거 같아요. 어떤 음식을 먹으면 주로 설사를 하게 되는지 잘 살펴보세요. 이런 설명을 하기보다는) 정장제를 드셔보시고 그래도 멈추지 않으면 지사제를 드셔보세요.

 

그리고 선생님, 자꾸 마른 기침을 하는데 지난번 주신 약은 별로 효과가 없었어요 -----> 그래요? 그럼 이번에는 코데인을 한번 드셔보세요.

 

선생님, 그런데 코데인 먹으면 변비 생기는거 같아요 -----> 그럼 마그네슘 드세요.

 

(돌고 도는 대화)

 

그런데 환자가 뭐가 정장제고 뭐가 지사제고 뭐가 변비약인지 잘 모르면

처방한 약들을 한꺼번에 다 먹어버리기도 한다.

배가 어떻게 되겠는가?     

!@#$%^&* 상태가 되어버릴 것이다.

무슨 코메디 같다.

약 모양과 효능, 그리고 부작용 설명이 안되면 환자가 헷갈려서 약을 잘못 먹기도 한다. 예를 들면 와파린이랑 마그네슘을 헷갈려서 잘 못 먹는 바람에 대량 출혈의 위험 직전에서 발견된 경우도 있었다.   

 

암환자는

치료 때문에, 치료 부작용 때문에, 병 때문에 복용하는 약이 너무 많다.

그 약 각각 마다 제대로 설명을 해야 한다.

그리고 약끼리의 상호작용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칼슘약 3-4일 먹은 것 만으로도 배가 끊어지게 아플 수 있으니 말이다.

 

진료실 안에서 내 힘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문제다.  

암환자를 위한 갖가지 종류의 약물 처방이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종양임상약리 전문가와 시스템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아주대 박래웅 선생님처럼 안전한 투약시스템을 만드시는 분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리고 환자 교육도 잘 해야 한다.

 

지금 당장 준비된 것이 없는 실정이다.

그때까지는 각종 약제들의 투약설명서 (환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내가 처방하는 약들의 모형을 구비해 놓고, 속사포같은 속도라도 한번쯤은 환자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실정이다.

 

원내 처방 뿐만 아니라 원외 처방을 하는 약국에서 약사들이 하는 설명은

내 심정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아직은 힘들어도 그냥 내가 하는게 나은거 같다.  

 

 

 

 

 

 

 

 

 

'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 전이성유방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충격 고백 이후  (2) 2013.08.02
충격고백  (2) 2013.07.27
이번에는 내 감이 틀렸군요  (2) 2013.07.10
영양제라고 다 좋은게 아닐 수도 있다  (2) 2013.07.04
나의 비겁함  (6) 2013.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