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사진이 바뀐 줄 알았어요

슬기엄마 2013. 6. 22. 10:36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리던 그녀가 

첫 항암치료 후 중간 점검을 하러 오늘 외래에 왔다.

오른쪽 폐문부에 있는 종양이 커져서 기관지를 눌렀다. 그 아랫 부분은 무기폐 상태.

기침하고 숨소리도 고르지 않았다.

방사선 기계가 고장나는 바람에 당장 방사선 치료를 할 수 없었다.

그녀는 하루라도, 한시라도 빨리 퇴원하겠다고 했다.

집에 있는 어린 두 아들을 더 이상 엄마없이 놔 두고 싶지 않다고 나에게 애원했다.


나는 왠만하면 환자들을 빨리 집에 보낸다. 항암치료 하면서 몸과 마음이 약해져 환자들이 응석받이가 된다. 집에 갈 자신이 없다--> 가시라, 집에 가면 밥 챙겨줄 사람도 없다 --> 그런 이유로 계속 입원할 수 없다, 몇일만 더 컨디션 보고 싶다 --> 앞으로 당분간 컨디션 변할 이유 별로 없다 등등으로 실갱이를 벌인다. 의학적으로 판단했을 때 입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매정하게도 빨리 집으로 가시라고 한다. 응급실 환자를 생각하면 병동 환자를 빨리 퇴원시켜야 한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3일간 항암치료 하고도 몇일간 더 경과를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상태가 안정되면 가자고

산소 안하고도 숨 안차는거 보고 가자고

퇴원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단호했다.

나의 온갖 협박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가겠다고 했다. 그것은 엄마만이 보일 수 있는 단호함이었다.

나는 지금보다 컨디션이 조금이라도 안좋으면 지체없이 병원에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받고 불안한 마음으로 퇴원을 시켰다. 

그렇게 보낸 그녀가 오늘 외래에 온 것이다. 


가슴 엑스레이를 찍고 왔다.

난 처음에 사진이 바뀐 줄 알았다.

그녀 사진이 맞다.


         

                                      2013.6.10                                  2013.6.22


그녀를 만나니 기침도 줄었다.

컨디션도 좋고 백혈구 혈소판 그런 수치들도 정상이다. 객혈도 없다고 한다.


내가 기적의 묘약을 쓴 것인가?

첨단 표적 치료제를 쓴 것인가?

아니다. 

나는 전이성 자궁경부암에서 첫 치료 재발시 두번째로 선택할 수 있는 약제인 topotecan/cisplatin 을 썼을 뿐이다. 신약도 아니고 묘약도 아니다. 웬만한 병원에는 다 있는 평범한 항암제 중 하나다.   

내 지식이나 능력과 무관하게 

그것은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한 여러 옵션 중의 하나이고 

우리나라에서 보험이 되는 약제조합이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런 약제들의 알려져 있는 평균 반응율이 그다지 좋지도 않다. 환자가 많이 힘들어 하는 것에 비해 효과가 탁월하지 않아 그다지 선호하는 요법은 아니다. 

그래서 난 마음 속으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방사선 치료 하기 전에 좀 견디다가 

상황봐서 빨리 방사선 치료를 하는게 낫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참이다. 




그런데 이렇게 좋아져서 온 것이다.

아마도 DNA damaging agent 에 효과가 좋은 cell type 인가보지,

SNIP 같은 걸 해보면 이런 약제들에 특히 반응이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걸 알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이 들기 보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번 치료는 당신이 하신 거네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원래 기도도 안하고

하느님도 잘 안 찾는다. 

나같은 날나리 신자는 하느님을 찾기가 좀 민망스럽다. 

그렇지만 환자들을 진료하는 와중에는 나도 모르게 기도를 할 때가 가끔 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인데

도와주셨다는 생각이 들 때

도와달라고 부탁할 때 

 

오늘 이 젊은 엄마를 위해 다시 한번 기도한다.

내가 처음 그녀의 사연을 올렸던 날 

많은 분들이 같이 기도해 주시겠다고 나에게 약속해 주셨다.


기도...

사실 난 그런 말 부담스러워 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오늘은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 

그녀를 위한 마음이 전달되었다고 믿는다.

앞으로도 계속 효과가 지속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