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실수로부터 배우는 교훈

슬기엄마 2013. 6. 23. 21:39


다음주 말에 암성통증과 관련된 강의를 하기로 되어 있다.


암성통증의 조절이라는 주제는 강의를 하기에 진부한 소재이다. 

그러나 암환자 진료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중요한 주제를 진부하지 않게, 

간과하고 있던 요인들을 다시 생각할 수 있게, 

효과적으로 강의를 하려면

실례를 등장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다.


특히 의사들은

누군가의 잘못된 의료 행위를 보면 대부분 흥분하며 논의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나는 그런 청중의 속성을 감안하여

과감히 나의 잘못된 과거(!)를 밝히고 

내가 간과했던 사례, 내가 실수했던 사례, 내가 잘못했던 사례들을 공개하여

내가 얻은 교훈을 청중들과 공유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차트를 뒤져서 세 케이스를 준비했다. 


케이스 사례를 정리하고

환자의 병변을 포함한 사진, 암 치료 과정, 

그리고 통증을 조절하기 위해 내가 처방한 약들, 시술의 기록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각 케이스 주제에 맞게 문헌을 리뷰하였다. 

통증 조절이 잘 된 케이스가 아니라

내가 미쳐 간과했던 요인들 때문에 환자가 고생했던 케이스들이라

다시 차트를 보니 나 스스로의 무지에도 짜증이 나고 환자에게도 미안하고 기분이 영 그렇다. 



통증 조절을 위한 원칙과 가이드라인은 있으나

그야말로 개별화된 치료 (personalized therapy) 를 해야 하는 분야이다.


의사들은 마치 혈압, 맥박, 호흡수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분단위로 약물을 조절하고 생체 징후를 반복적으로 측정하듯 정성껏 통증을 조절해야 한다. 사실 통증은 실력으로 조절하기 보다는 정성으로 조절하는 것 같다.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약을 주고 반응을 확인하고 반응이 좋지 않으면 약을 증량하거나 다른 약을 쓰면서 또 다시 반응을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그러므로 환자도 한번에 좋아질 거라는 기대를 하기보다는, 당분간은 의사와 협력적으로 통증 조절을 위해 애써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 들여야 한다.


그런데 사실 진료실에서 외래를 보는 가운데 환자들의 통증을 그렇게 세심하게 조절하고 신경쓰는 일이 어려운 현실이다.  


암환자들에게 가장 좋은 진통제는 마약성 진통제이다. 약 봉투에 '마약성 진통제'라는 설명이 붙은 걸 보면, 이걸 먹고 중독되면 어떻게 하나, 내가 나빠진다는 징조인가, 나중에 더 아플 때 약효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 진료하기도 바쁜데 이런것까지 호소하면 진료하는 의사의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건 아닐까 하는 여러가지 이유로 자신의 통증을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또 마약성 진통제의 부작용 - 메스꺼움, 졸림, 변비 등-을 경험한 환자들은 더이상 마약성 진통제를 복용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므로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할 때는 이러이러한 부작용이 올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설명하고 변비완화제 등을 함께 처방하고 메스꺼움이나 졸림은 72시간 내에 적응하여 좋아질수 있다는 사실도 교육을 해야 한다.


시험적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최초로 투여하는 환자를 대상으로 충분한 설명과 교육을 해 보았더니 최소한 20분, 평균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것은 일상적인 외래 중에는 실현 불가능한 상황이다. 암환자를 진료하는 병원에는 통증전문간호사 등의 보조 인력이 필수적인 것 같다. 


내가 실수를 통하여 얻은 교훈을 중심으로 슬라이드를 만들다 보니

나 때문에 고생한 환자들이 떠오른다.


진통제가 과도하여 신경이 예민해진 나랑 동갑내기 남자 환자.

처음 방광암 폐전이로 재발했던 당시에는 병이 재발했으니 그러려니 했다. 

아프다고 하면 진통제를 올려주었다. 

통증 조절은 잘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안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애매했다.

그는 자기가 원래 성격이 예민하다고 했다. 

속이 많이 쓰리기도 했다가

흉통이 있다고도 했다가

머리가 깨질 것 처럼 아프다고도 했다가

잠도 안 온다고도 했다가

갑자기 화가 버럭 나기도 했다가...

차트를 보니 응급실도 엄청 여러번 다녀갔다.

내시경도 해 보고 심장관상동맥 CT도 찍어봤다.

이약 저약 엄청 많이 써봤다.

정신과 진료도 받았다. 

방광암 폐전이는 치료가 잘 되지 않는 편인데, 항암치료 6번만에 놀랍게 많이 좋아졌다. 

남은 병변에 방사선 치료를 추가하였다. 그리고 지금 2년째 재발없이 잘 지내고 있다. 

원래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중국에 왔다갔다 하면서 사업도 재개하여 열심히 일하며 잘 살고 있다.

그런데 통증은 여전하였다.

나는 병이 좋아졌는데도 통증이 조절이 되지 않는 이유를 고민하였다.

일부러 외래 제일 끝으로 환자 외래시간을 예약하고 환자와 장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아무래도 마약성 진통제 부작용으로 통증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시는거 같아요.


진통제는 중독되는게 아니라면서요?


네 

중독이라기 보다는 독성인 것 같아요. 

뇌신경 세포가 통증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그동안 사용했던 몰핀 진통제를 장기간 사용하면서 생긴 부작용이 아닌가 싶어요. 지금 병은 거의 다 좋아졌잖아요. 병 때문에 아픈게 아닌거 같아요.


그럼 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랑 2주에 한번씩 만나면서

조금씩 진통제 용량을 줄여보면 좋겠어요.

아주 서서히 조금씩 줄이면서 반응을 보는게 어떨까요?


그는 내 말에 따랐다.

자기 사업으로 바쁘고 중국도 왔다갔다 해야하지만 내가 오라는 외래에 꼬박꼬박 왔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조금씩 진통제 양을 줄였다.

처음에는 매우 힘들다고 했지만 환자가 잘 참아주었다.

지금은 하루 한번 최소량으로 복용하고 있다. 

그것도 언젠가는 끊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 이후로 나는 병의 정도에 비해 진통제 용량이 과다한 환자는 없는지 수시로 확인하였다.

놀랍게도 그들 역시 통증에 대해 아주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나는 그들과도 비슷한 노력을 하였다.

성공한 환자들도 있고 그렇지 못한 환자들도 있다.


나는 같은 환자라도 관심을 갖는 만큼 새로운 증상을  관찰,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렇게 환자들의 사례를 통해 배우면서 내가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라고 위로하지만, 

그런 교훈을 바탕으로 다른 환자를 더 잘 치료할 수 있게 된다고 위로하지만, 

그 때 환자들의 고생은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난 환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환자에 대한 신심이 깊어서, 성의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최소한으로 실수하기 위해서 그렇다.   


그리고 

나의 수준은

나의 진료 결정에 대해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할 수 있으려면

여전히 많은 경험과 노력이 필요한 단계라는 것을 깨닫는다. 

또한 의료는 단지 의학적 지식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결심한다. 

다시는 이런 형식으로 강의를 준비하지 말아야지.

창피하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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