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희승이 치킨값 좀 보태주세요

슬기엄마 2013. 5. 10. 13:50


희승이는 Ewing's sarcoma 로 항암치료 중인 고2 남학생입니다.


작년 8월에 병을 진단받고 다른 병원에서 항암치료랑 방사선치료를 받았습니다. 

이 병은 항암치료과정이 특이합니다. 

엄청 오래 치료하고 스케줄도 복잡하고 약도 엄청 독합니다. 

한번 치료를 시작하면 1년 이상은 계속 치료를 하는거 같아요. 

저는 이 병을 치료해 본 경험이 없어서 치료 과정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뭏튼 엄청 힘든 병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희승이는 치료가 잘 안되고 있는것 같습니다. 

척추로 척추로 병이 계속 진행되고 있어요.

이전에 치료받았던 병원에서는 약제 반응이 좋지 않고 자꾸 전이가 되니까

앞으로 예후가 안 좋고 더 이상 항암치료를 하는게 큰 의미가 없다고 했었나 봐요.

어찌어찌 해서 지금은 우리병원 소아청소년과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오늘 호스피스 팀 미팅을 하는데, 소아청소년 담당이신 황애란 선생님이 희승이가 의뢰된 사연과 상황을 발표해 주셨어요. 


저는 솔직히 

늘 진료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암환자고, 

치료가 안되면 막판에 힘들어 하는거 당연한 거고, 

제 환자 중에 그런 환자들이 많아서 환자들 사연을 들어도 별로 특별하다는 생각은 잘 안합니다. 

가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내가 해드릴 수 있는 만큼 잘 해드려야지 그냥 그런 마음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모든 환자들 때문에 가슴아프고 속상해하면 제가 소진되서 일을 할 수도 없어요. 

적당히 거리를 두고, 그냥 좀 무덤덤해 하고 그렇게 살고 있죠. (종양내과 의사 않 좋아요)


그런데 오늘 희승이 사연을 들으니

비록 내가 희승이를 본 적은 없지만

희승이를 위해 최소한 치킨 한마리는 사줘야겠다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처음 희승이를 찾아간 황애란 선생님은 

희승이가 지금 가장 원하는게 치킨을 먹는거라고 해서, 당신 돈으로 치킨을 사다주셨대요. 

치킨을 먹으며 희승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걸 보니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며 

황애란 선생님도 눈물을 글썽거리십니다.

희승이네 집이 지금 너무 어려워서 그런 주전부리를 사줄 여유가 없나 봅니다. 


희승이 아버지는 사업이 안되 돈도 못 벌고 자주 술을 드십니다. 평소에는 가족들에게 잘 하시는 편이지만 술만 드시면 폭력적으로 변하신대요. 희승이 어머니는 본인도 암 수술하고 투병기간이 길었습니다. 또 그 와중에 결핵 때문에 돌아가실 뻔 하시기도 했대요. 그러는 와중에 우울증이 생겨 그것도 치료하고 계십니다. 하나뿐인 아들이 암에 걸려 우리나라에서 유명하다는 병원을 찾아다니며 치료를 받았지만 낫지 않고 나빠지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치료 가능성이 없다, 병원이 해줄 게 없다, 그런 말을 듣고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셨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희승이 엄마는 나보다도 나이가 젊군요.  


우리는 '인생에서 돈이 문제가 아니다, 돈을 많이 버는게 중요한게 아니다' 그렇게 말하지만, 돈이 없는 건 너무 큰 문제입니다. 희승이 어머니는 돈이 없어서 핸드폰 요금도 못내서 지금 정지당한 상태입니다. 

희승이는 병원 생활을 하면서도 친구들이 오는게 제일 좋다는 해맑은 아이입니다. 희승이 어머니는 항암치료 중이면서도 치킨을 너무 먹고 싶어하는 아이에게 치킨 한마리 사줄 돈이 없어서 속상해 하십니다. 


그런 사연을 들으니 내가 최소한 희승이한테 치킨 한마리는 사줘야겠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저는 성인암환자를 진료하기 때문에 소아, 청소년 암환자들의 상황을 잘은 모릅니다. 그래도 어린 아이들이 암을 치료받는 과정은 아이가 육체적인 것도 힘든 문제지만 정서적인 측면도 다스리는게 힘들고, 그 가족도 너무너무 힘이 들어가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병 치료 자체 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 형제들과의 문제, 젊은 부모의 문제, 장기간 치료로 인한 경제적인 문제 등등 훨씬 상황이 복잡합니다. 


늦은 나이에 베트남 부인을 얻어 첫 아이를 얻었지만 그렇게 태어난 아이에게 기형이 있어 생후 8개월이라는 기간을 병원에서 내내 보내야 했던 아버지, 아이도 죽이고, 나도 죽겠다던 그 아버지가 우리 병원 호스피스 팀을 통해 여러 심적, 물적 도움을 받고, 삶의 희망을 찾아 얼마전 아이와 함께 퇴원하였습니다. 부인과 사이도 좋아지고 둘째도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좋아지려면 아직 갈길이 멀지만, 가족의 응집력이 높아지고 사랑하는 관계로 재정립되는 것을 보면서 기적은 우리가 만들 수도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우리병원 황애란 선생님이 기적을 만들어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요.


내일 저녁 사랑의 리퀘스트 (저녁 6시, KBS)에 희승이 사연이 나간다고 하니, 방송 보시고, 모금 전화 한통 걸어주세요. 


그리고 

우리은행 001-020662-61-002 

예금주 : 연세의료원 

앞으로 후원금도 보내주세요. 

보내실 때 보내는 사람 이름 뒤에 (희승) 이라고 표시해서요. 


희승이는 완치되기 어렵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잘 살 수 있게 한정우 선생님이 진료해 주실 겁니다.


저는 그 어려운 여정에 치킨 한마리 값만 보태려고 합니다. 많은 돈, 기부금 사절하구요, 치킨 한마리 값만 보태주세요. 희승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음식이니까요. 그에게는 한 순간의 기쁨, 하루의 평화가 중요할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