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지금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슬기엄마 2013. 5. 9. 17:37

난 천주교 신자지만

믿음이 강한 편이 아니다.

사실은 거의 나이롱 신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순간,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수 밖에 없는 순간을 만나면

묵주반지에 의지해서 주의 기도를 열번 한다. 그것이 그를 위해 하는 나의 최대한의 노력이다.

나를 믿고 치료받았던 환자가

이제 퇴원도 할 수 없는 나쁜 컨디션이 되어 끙끙 거리며 밤을 뜬 눈으로 보낼 때

나는 그냥 기도를 할 뿐이다.

나의 기도로 뭔가가 좋아질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난 왠만하면 입원을 잘 안 시키는 편이라, 입원해 있는 환자들은 여기 저기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은 환자들이다. 그리고 항암치료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항암치료는 걸어 다니는 사람이 외래에서 받는 경우가 많다. 입원을 하는 것 자체가 뭔가 컨디션이 안좋다는 것을 반영한다.

 

그렇게 입원하는 환자들이 늘어나니

레지던트가 힘들어하고 있다.

아침에 먹을 걸 잔뜩 사줬다. 일하면서 계속 먹으라고.

마지막으로 갈 수록 환자들이 불편해 지는게 많아서 이것저것 요구하는게 많다.

앉혀달라고 했다가

눕혀달라고 했다가

덥다고 했다가

춥다고 했다가

환자의 요구를 종잡을 수 없다.

아주 얌전하고 수줍음 많은 그녀가

며칠 전부터 이상해졌다.

말이 많아지고 이것저것 해달라는게 많아졌다. 좋고 싫음이 분명해졌다.

 

임종싸인...

그런게 있다...

뭐라고 카테고리를 나누기 어렵지만

임종을 앞둔 환자들의 특징이 있다.

그리고 돌아가시기 직전에 한번 반짝 좋아진다.

그 시간을 맞이하고 있는 나의 환자.

그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서 가족들이 당황하고 있다.

기도라는 것,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 그 자체의 종교적인 의미를 넘어

인생이라는 것, 내 삶의 운명이라는 것이 비슷한 analogy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와중에

오상선 신부님이 쓰신 글 중에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있다.

종교적인 의미라기 보다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루어지냐 아니냐가 아니라

꿈은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가지고 꾸준히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라는 문장에 마음이 간다.

꿈이 있는지 점검해 볼지어다.

 

 

 

우리는 기도를 하다가도
어떤 때 괜히 심술이 난다.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는데도 하느님께서는 꿈쩍도 하지 않으신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언젠가는 이루어진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듯이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실 주님이 아니시다.
다만 그 시간과 때를 우리는 우리에게 맞추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양 보일 뿐이다.

때론 그것이 금방 이루어질 수도 있고
10년이 걸릴 수도 있고
50년이 걸릴 수도 있다.

우리가 원하는 때가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때
그 기도를 이루어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생전에는 그 성취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노예언자 시메온이 일생을 기도하였지만
생애 만년에 가서야 구세주를 만나뵈 올 수 있었듯이
우리의 기도, 우리의 꿈은 생애 만년에, 혹은 우리가 죽은 후에
이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성취되느냐 안되느냐를 따져서
기도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꿈은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갖고
꾸준히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것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