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호스피스 보험시대

슬기엄마 2013. 5. 8. 20:21


내년부터 호스피스 행위에 수가가 붙어서 

돈을 받을 수 있는 의료행위가 될 것 같다.

수가가 잘 책정되서

많은 병원이 적극적으로 호스피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아직까지 호스피스는 그 자체로는 수가가 매겨져 있지 않다. 환자를 위한 자원봉사 수준으로 제공되는 서비스이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는 전문적인 호스피스 프로그램이나 임종 관련 간호 등이 제대로 개발되지 않은 형편이다. 전문가도 많지 않다.


우리 병원의 경우

호스피스 병동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각 과에서 호스피트 팀으로 협진을 의뢰하면 호스피스 전담 간호사가 환자를 방문하여 상황을 파악한다. (이 대목에서 호스피스 전담 의사가 있으면 좋지만 아직은 아쉬운 실정이다. 나도 아주 부분적으로만 활동하고 있는 형편이다.)

간호사는 여러 차례 면담을 통해

환자와 가족에게 어떤 부분에서 지원과 도움이 필요한지 이야기를 나눈다. 

의료진의 치료 계획이나 앞으로의 예후에 대한 입장에 따라 어떤 지원이 가능할지 상의한다. 

그렇게 만난 환자와 가족은

나빠진 병 때문에, 많이 지쳐서, 상심해서 

면담하는 간호사도 여러모로 어렵다.

또한 너무 나쁜 상황에서 호스피스가 의뢰되면 다소 고역스럽다.

죽음이라는게 그렇게 한 순간에 받아들여지고 준비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또 환자의 컨디션이 아주 나쁘지 않은 경우라면, 우리 병원에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 계시면서 임종을 맞이하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적절한 협력병원을 소개하는 일도 하게 된다. 그래서 일부 호스피스를 잘 모르는 의사들은 협력병원으로 가는 걸 설득하기 위해 호스피스에 협진을 내기도 한다. ㅠㅠ   


이렇게 쓰고 보면 호스피스팀 하는 일이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과정 과정에서 우리 병원 호스피스 팀이 하는 노력과 

환자 및 가족을 위한 실질적인 도움은 엄청나다. 


(나는 이런 말 쓰는거 정말 어색한데) 

이들의 심성은 정말 천사같고 환자에게 헌신적이고 어떻게든 도움을 주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 이해가 안될 정도이다. 자기 가족에게도 그렇게 하기 힘들다. 돌아가시는 순간을 함께 하는 것은 물론이요, 그 순간에 가족과 함께 기도하고 장례식장도 방문하고, 사별 후 가족까지 면담하여, 그 슬픔을 극복하고 다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돌아가신 분을 가슴속에 잘 새기며 평화롭게 지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오랜 기간 병원 다니며 의료진에게서 받은 상처, 분노, 갈등 등을 이들이 다 풀어준다. 경우에 따라 의료진이 잘못한 것일수도, 환자와 가족이 오해한 것일 수도 있다. 무엇이 사실이냐를 밝히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완충시키고 지금의 자신 상태를 평온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준다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러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호스피스 담당자들을 만나보면 한결같이 숨통터지게 착하다. 심지어 가정방문을 다니는 간호사들은 자기 돈으로 환자 약을 사가지고 가서 돈 받기가 뭐해 그냥 드리고 오기도 한다. 


나는 호스피스가 자원봉사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마음이 없다면 호스피스를 할 수 없겠지만, 그런 인간적인 마음만으로는 좋은 호스피스 프로그램이 발전, 확대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서비스가 얼마나 현실적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버는 조직에서 돈이 안되는 일을 얼마나 성의있게, 지속적으로, 잘 할 수 있을까?  

마음만으로, 성의만으로 이런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병원 입장에서도 

호스피스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최소한 손해는 안 보게 해 주어야 하고, 

환자와 가족 입장에서는 편안한 임종을 준비할 수 있게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제공되어야 한다. 


병원 입장에서는 돈도 안되는 호스피스 프로그램을 운영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말기 임종 환자들이 돌아가실 때까지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 병상 회전율이 떨어지고 검사 처방이 감소하며 신환을 받을 수가 없어서 수익율이 떨어진다. 그러니까 임종 예상 환자는 빨리 집으로 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현실적인 요구 때문에 호스피스에 수가를 책정하여 활성화하려고 하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병동형

협진형

가정형

지역과 병원 규모, 환자들의 분포 등에 따라 호스피스 서비스가 제공되는 맥락애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 형편과 차이에 따라 수가와 제공되어야 하는 표준 서비스 등이 달라질 것이다. 


곰곰히 생각해 본다.

사실 나이 많이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임종이 가까와 오면, 사실 의사가 말을 안해도 본인에게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짐작하신다. 그래서 집에 가고 싶어 하신다. 자기 물건, 자기가 살던 집, 동네 등을 보고 싶기도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고, 어디 아픈데만 없으면 삭막하고 정신없는 병원보다는 집에서 지내다가 임종하고 싶어하신다. 


그러나 가족들 입장은 다르다. 환자가 갑자기 호소하는 증상에 대처할 수 없어서 힘들게 응급실에 가야 하는 건 아닌지,  환자가 아파하면 어떻게 해야할지, 사람이 죽는다는 걸 한번도 본 적이 없는데 그걸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집이 좁아서, 간호를 잘 할 자신이 없어서, 집에 환자 곁에서 전담하여 간호를 담당할 사람이 없어서, 등등의 이유로 가족들은 집에서 환자를 모시는 것이 두렵다. 


그런 장애요인들을 다 극복할 수는 없겠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는 시간과 대화와 노력이 필요하다. 예상되는 죽음인 것에 너무 집착하고 연연해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마음을 먹으려면 혼자 기도하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삶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가족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생의 의미란 무엇인가, 나에게 남은 과제는 무엇인가..... 수많은 철학적 주제들, 거대한 주제들에 부딛힐 수 밖에 없다. 결국 잘 죽는 법에 대해, 임종을 앞둔 가족을 잘 보내는 법에 대해 우리는 배우고 교육받고 고민해서 깨닫는 하나의 숙제인 셈이다. 


환자와 가족들은 걱정한다.

지금의 내 병 상태, 내 스타일, 내 검사결과 등을 제일 잘 알고 있는게 지금 주치의 선생님인데 이 병원을 떠나가면 다른 선생님이 그걸 다 알 수도 없고, 혹은 알려고 하지도 않은 채 무관심하게 진료하는 거 아니냐 그런 진료의 연속선상에 대해. 


지역별 거점병원이 있고 연계병원들이 있어 이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한 후 정기적으로 텔레컨퍼런스를 하여 환자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면 가능하겠지. 연계 병원으로 가서 잘 지내시다가, 필요한 시술이 있거나 응급상황이 생기면 원래 다녔던 큰 병원, 거점병원으로 가셔서 필요한 조치를 받으시고, 또 다시 연계 병원으로 오시고, 그렇게 환자도 왔다갔다 하고, 의료정보도 따라서 왔다갔다 할 수 있으면 환자나 가족들의 걱정을 덜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의사들이 의견 교환하는 것에 대해서도 수가를 책정하면 좋겠다.

검사하는 거에만 수가를 책정하지 말고, 의사들이 환자를 위해 고민하고 논의하는 그런 프로세스에도 수가를 책정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환자도 양질의 medical care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임종을 맞이하는 환자와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에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지 안다면 호스피스 일반 수가 이외에도 임종간호수가를 따로 책정해 주어야 한다. 응급으로 환자를 방문하게 될 경우에는 응급에 해당하는 기준으로 만들어서 그만큼의 수가가 주어져야 서비스의 질이 좋아진다. 


아마 행위별 수가제가 아니라 포괄수가제로 책정할 가능성이 높다. 

착한 사람들이 많으니 돈이 안되도 열심히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질의 저하는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수가만 메기고 실재로 환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양과 질은 형편없이 낮게 제공될 수도 있다. 호스피스 같은 프로그램은 그렇게 되기 쉽다. 그건 모랄 해저드라고? 이미 모랄해저드는 의사와 환자, 양 집단에서 공히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는 일들이다. 어떻게 이런 일을 개인의 선악에 근거하여 결과가 나오게 하는가. 그것은 시스템이 아니다. 


거점 병원과 연계 병원 사이에 환자를 의뢰할 경우, 이 환자에 대한 토론과 원격 협진 등을 위한 의료진들의 지식노동에 대해 수가를 매겨달라고 건의하였다.

그게 이루어지면

우리나라는 선진국일거라고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