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기억들
초턴 시절, 지방 병원 파견으로 시작한 한 인턴. 그라목손을 먹고 응급실에 온 할아버지 CPR을 한 후 가족들을 모아 놓고 expire 선언을 하다.
역시 초턴 시절, 입고 있는 가운마저 어색하던 때, UGI bleeding 콜을 받고 병동으로 달려갔지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간호사에게 이럴 때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묻자, ‘그건 선생님이 알아서 해야죠‘라며 자기들끼리 station에 모여 농담을 하는 간호사들을 보고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다.
Liver cirrhosis Child-Pugh C로 입원한 할머니, hemorrhoid가 커져 터지기 직전이지만 수술을 하지 못하고 observation하며 지켜보던 중, 어느 날 아침 갑자기 hemorrhoid가 터져 low GI bleeding 발생, verbal order를 내고 레지던트 선생님을 부른 후 한 명은 ambu를 잡고 한 명은 bleeding focus를 compression하며 지켜보는데 곧바로 shock에 빠지는 할머니, 수 시간만에 expire. 의식이 남아있던 순간까지 허옇게 질린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며 아프다는 환자를 지켜보다.
수술 후 갑자기 develop된 UGI bleeding, continuous irrigation을 하다 arrest가 나자 혼자 CPR을 하며 의사를 불러모으던 중 갑자기 expire. 주치의가 나타나 ‘네가 환자를 죽였다’며 소리를 치다.
2주일간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일 하다가 햄버거를 사서 5분만에 먹고 콜라와 감자튀김을 들고 뛰어 병동으로 오던 중 감자튀김을 떨어뜨리고 나서 갑자기 눈물이 핑 돌다.
입원 예정인 환자 수십명의 차트를 대출해서 prep해 놓았는데, 차트도 안 챙기고 뭐 하냐는 콜을 받다. 허겁지겁 달려가 보니 누가 보다가 내팽개쳤는지 옆방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차트들…. 이 과는 안 해야겠다고 생각하다.
3번의 UGI bleeding으로 VDA도 하고 SB tube도 꽂았지만 vital이 흔들려 ICU care까지 받고 다시 병동으로 돌아와 4번째 bleeding을 해 버린 GI 환자, 결국 TIPS 시행 후 상태 호전되어 퇴원하던 날 환자가 인턴을 불러 곶감을 주며 아플 때마다 달려와주어 고맙다고 인사를 하다.
매일 밤 코피가 나서 멈추지 않는 liver cirrhosis 환자, 1시간 간격으로 vaseline gauze packing을 하느라 잠도 못자고 신경질이 잔뜩 나 있는데 롤케이크를 건네주는 보호자. 그리고 다음날 환자는 expire 하다.
말턴 몇 명이 모여 늘어놓은 ‘가장 기억에 남는 일’들이다. 대개의 기억은 감동적이고 좋은 것보다는 painful하고 슬프고 기분 나쁜 것들이 많아 보인다. 처음 맞닥뜨린 환자의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을 선언하는 것,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게 윗년차가 권위적으로 일을 시키고 닦달하며 결과를 재촉할 때, 아는 게 없어서 상황을 악화시키고 난 후 나의 무지를 한탄할 때, 손이 부족해 도움을 청하자 냉정하게 거절하는 동료에게 실망할 때, 전화통을 붙잡고 입원 예정 환자에게 전화를 걸어 설명하던 일, 수술 스케줄 정리하느라 컴퓨터 앞에서 밤을 새던 일….
물론 수기처방을 하고 X-ray film을 들고뛰던 불과 몇 년 전에 비하면 인턴의 life cycle은 상당히 개선됐다지만, 그래도 억울하고 외로울 때가 많았던 인턴 시절. 이제 끝이 보인다.
1년차 레지던트, 주치의가 되어 일하게 될 앞으로의 1년. 절로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나에게 지혜와 인내와 성실함을 주소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늘 각성하는 자세로 일하게 해 주소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늘 alert하게 병동을 지키는 의사가 되게 해 주소서, 더불어 한 번 본 내용은 잊지 않도록 노화과정을 더디게 해 주소서, 라고.
'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 인턴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연을 마치고 (1) | 2011.02.27 |
---|---|
민서 엄마가 준 커피 (0) | 2011.02.27 |
레지던트 시험이 인생의 전부냐 (0) | 2011.02.27 |
진짜 의사가 된 기분 (0) | 2011.02.27 |
쓰러질 때까지 일하는 의사들 (0) | 2011.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