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인턴일기

진짜 의사가 된 기분

슬기엄마 2011. 2. 27. 21:41

진짜 의사가 된 기분

 

물론 나는 올해 초에 의사국가고시를 보고 8만번대 국가가 인정하는 의사면허를 부여받았다. 하지만 인턴 생활을 하는 중에 진짜 의사가 된 기분을 맛본 것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지금 전공의 인력이 부족한 과 중의 하나인 방사선종양학과에서 일을 하고 있다. 대학병원인 만큼 방사선 치료를 필요로 하는 암환자들이 많은데, 레지던트가 부족하기 때문에 인턴에게도 몇몇 중요한 임무가 부여된다. 그리고 이런 임무들은 이제까지 다른 과에서 내가 주로 해 왔던잡일과는 달리 머리를 써야 하는 고차원적인 노동을 요구한다는 면에서 새삼 낯설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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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가장 신나게 하는 일은 타과에서 의뢰된 환자들의 old OPD chart, chemochart, previous RT chart 등 우리 병원에 존재하는 환자의 모든 chart review하여 staff 선생님들께 notify하는 일이다. ‘인턴 주제 staff에게 direct notify하는 것도영광스러운일이지만, 선생님과 환자의 상태에 관해 토론을 하고 선생님께서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을 consult 용지에 받아적는 것, 그래서 마지막에감사합니다. ○○○/이수현 배상이라고 마무리짓는 그 행위가 나는 정말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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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병원 이전을 앞두고 EMR(electrical medical record)을 통해 모든 기록과 자료들을 digitalized data로 통합하는 것이 대세를 이루지만, 나는 인쇄된 consult 용지에 나의 필체로 answer를 적고 어슷하게 접어 차트에 끼워두는 그 행위가 참 맘에 든다. 비록 그 answer의 내용을 내가 결정한 것도 아니고, 언제 어떤 방식으로 planning해서 RTx를 시작하겠다는 단순한 것일 때도 있지만, consult를 내놓고 answer를 기다릴 각 파트 주치의와 환자들을 생각하면 왠지 내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른 과 의사들을 대상으로 내 이름이 적힌 기록이 나간다고 생각하니 글씨는 내 얼굴인 셈, 글씨는 깔끔하게, 내용은 단순하면서도 정확한 guideline을 제시할 수 있는 방식으로 쓰려고 매번 노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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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환자에 대한 review consult가 난 이유에 대해 선생님께 notify하면 선생님들께서는 이 환자는 이렇게 치료하는 게 어떤 의미에서 도움이 될지, 선행하거나 병행되어야 하는 다른 검사 및 치료방법은 없는지, 다른 case에서 이렇게 치료해봤더니 예후가 좋았다든지 하는 말씀을 해주신다. 때론왜 이 환자의 stage Ⅲb라고 생각하지?’ 혹은 ‘Lymph node enlargement가 보이는 cut은 어떤 image인가?’하는 등의 질문을 하시기도 한다.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내가 환자 진료에 전념하는진짜의사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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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consult 마감 시간이 지난 후에 1∼2년차 선생님들로부터 call이 온다. “무슨 무슨 환자인데, 다른 검사를 하느라 chart prep이 안 되서 제시간에 consult를 못 내 미안하다. 하지만 이러이러한 연유로 한시라도 빨리 RTx를 시작하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으니 오늘 consult가 꼭 해결될 수 있게 해달라는 식의 push 전화다. 그런 push도 나는 신난다. 내가 부지런히 해주면 환자에게 도움이 되겠구나 하는 그런 소박하고도 착한 마음이 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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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미 진짜 의사인데 왜 이제서야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되는 걸까? 아마도 내가 지금 하는 일에 대한 의미부여가 자리를 잘 잡았기 때문 아닐까? 지금 이 마음을 내내 잊지 않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