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유방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처방 오류

슬기엄마 2012. 11. 17. 18:41

 

 

그래서는 안 될 일이지만, 처방오류가 종종 발생합니다.

 

항암제의 경우

저희 암병원 항암제 약무국에서

오류의 심각도에 따라 처방오류 발생율을 조사하여

6개월이나 1년에 한번씩 종양내과와 간담회를 갖고 처방오류의 실태를 점검하고 있습니다.

오류의 빈도와 종류를 분석하고 오류를 감소시키려는 노력이 얼마나 필요한지,

또 그 노력의 성과가 어느 정도인지도 보여줍니다.

 

물론 매일 외래에서 제가 항암제를 처방하면 항암제 조제실이나 약무국에서 내 처방의 오류를 미리 점검하고, 뭔가 의심되는 사항이 있을 경우 진료실로 전화하여 처방사항을 직접 확인하여 사고와 오류를 미연에 방지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몇 번을 거르고 확인하여 오류를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제가 처방을 낼 때 잘 내야 하는 것일텐데요

 

처방이라는 것은 의사의 고유 권한입니다.

그러므로 처방오류라는 것은 결국 의사의 잘못입니다.

그러므로 일단은 제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제가 

오류를 줄이고 환자 진료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노력을 한번 해 보았습니다.

 

일단 전날 외래 준비를 충분히 다 해야 합니다.

의무기록을 미리 다 작성해 놓고 다음날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이나 검사결과만 추가하면 되게 정리를 해 놓습니다.

CT 나 MRI 등 영상검사를 한 환자들인 있으면 미리 사진을 다 봐 놓습니다. 전번에 찍은 CT와 비교해서 보고 변화사항을 미리 기록해 놓습니다.

사진이 나빠져서 질병이 악화된 것으로 생각되면 다음 치료 약제를 선정하기 위해 논문도 좀 읽고 고민을 해 봅니다.

 

환자의 컨디션이 대략 예상이 되면

기본약, 항암제, 다음번 검사처방까지 다 미리 오더를 내 놓습니다.

원래 항암제는 환자 진료 후 처방을 내는게 원칙입니다. 환자 몸무게가 변해서 항암제 총량이 변할 수도 있고 환자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용량을 감량하거나 항암제를 투여하지 않고 휴약기를 갖는게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외래 보기 전에 약 처방을 내는 것은 원칙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그래도 외래 당일 처방을 내는라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미리 내 놓는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준비에 만전을 기하면 꼭 외래를 보는 만큼의 시간이 투자됩니다. 외래를 5시간 보면 준비하는데도 5시간이 걸립니다.

 

그래도 이 정도 준비를 해 놓으면 다음날 외래 때 여유가 있습니다.

환자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고 이 얘기 저 얘기 더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외래가 끝나고 나면

그날 외래에서 문제 해결이 안된 환자들의 케이스를 정리합니다.

 

지방 환자나 다음주 외래까지 기다릴 여유가 었는 상태가 급한 환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과 선생님들에게 메일이나 전화로 환자 상황을 설명드리고

미리 필요한 검사나 챙길 사항이 뭐가 있는지 문의합니다.

병원에 여러번 방문하지 않게 하려고 그럽니다.

몸도 불편한 환자를 와라 가라, 가능하면 안 그렇게 할려고 검사와 외래를 하루에 볼 수 있게 하려고 애씁니다.

최신 지견이 필요하거나 나의 판단이 확실하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사례에 대해서는 다시 공부를 해보고, 필요하면 환자에게 연락하여 상황을 알려줍니다.

매일 외래를 보고 나서 이런 보충학습을 하는데 3-4시간이 또 걸립니다.

 

 

하루 외래가 끝나면 외래 후 점검 - 다음날 외래 준비- 외래- 외래 후 점검의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황을 반복하게 됩니다

 

 

이렇게 준비를 해도

외래에서는 매번 의외의 상황이 발생하고

내가 예상치 못한 일들도 발생하고

그래서 외래 시간이 지연되고

모두가 멘붕이 되고

그렇습니다.

 

 

이렇게 외래 준비를 철저히 해보니

너무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의사의 구두 처방을 대신 내주는 전문간호사, 의무기록을 미리/사후에 작성해주는 전문간호사 등의 지원 인력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저 혼자 이 일을 다 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준비와 진행에 2배 이상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의 하루는 외래 및 외래준비로 끝나고, 그 외 다른 일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더 이상 최선을 다할 수 만은 없다, 나도 살아야겠다'는 포기적 심정으로, 외래 준비를 최소한의 준비만 하고 최소한의 마무리만 하면서 면피하듯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다소 준비를 슬렁슬렁 하다 보니

정작 외래 시간에

의무기록쓰고 처방 내느라 환자 얼굴 한번을 제대로 쳐다보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우리 환자들은 진료실 의자에 앉아

'잠깐만요, 제가 앞 환자 처방을 다 못내서요. 죄송합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라는 저의 변명을 들으신 적이 많을 거에요. 다음 환자를 앉혀 놓고 바삐 처방을 내는 제 모습을 여러번 목격하셨을 거에요.

의무기록도 좀 소홀해 지고

처방 오류도 많아 집니다.

 

항암제가 아닌 일반 약들의 처방 오류는 환자들이 많이 이해해주고 계십니다.

한달치 줄 약을 하루치 주거나

두배로 올려서 드시라고 설명해놓고 처방은 지난번이랑 똑같은 양을 처방하거나

심지어 무슨 약을 준다고 해놓고 아무 처방을 안 하거나

정말 저의 처방 실수는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눈치를 보아하니,

우리 환자들은 진료 후 처방전 발행기에서 처방전을 뽑고 나면 꼭 확인을하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처방전에서 이상을 발견하면 제 방에 다시 옵니다.

선생님, 그약 준거 맞아요?

선생님, 그약 용량 조절해서 먹으라며요, 근데 안 바뀌었어요.

선생님, 항생제 준다고 해놓고 안주셨어요.

제 처방때문에 환자들이 똑똑해지는 것 같습니다. 부끄러울 노릇입니다.

 

당신이 약 처방을 잘 못해서

내가 일주일간 약을 못 먹게 되었는데

그렇게 일주일간 못 먹은 약 때문에 내 병이 나빠질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입증해보라고 요구하거나 고소하는 환자가 없어서 다행입니다.

(제 환자들은 정말 참을성이 많고 저를 많이 봐주시는 거 같습니다 ㅠㅠ)

 

다 제 잘못이지만

 

지원 인력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자기 약은 자기가 챙기는 똑똑한 우리 환자들이 고맙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더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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