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유방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From San Antonio (1)

슬기엄마 2012. 12. 5. 14:25

 

 

아무도 말하지 못했던 혹은 말하지 않는

 

예전에 비해 많이 개방적인 분위기가 되었다고 하나

환자들과의 만남에서 성의 문제는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하거나 후순위로 밀리는 것이 아직까지의 솔직한 수준입니다.

 

저도 구차하지만 핑계를 대자면

 

의사인 제 머리 속은 이미 결정해야 할 다른 주제들로 가득 차 있고

안그래도 시간 없는데 환자들 성에 대한 문제까지 내가 굳이 얘기해야 하나 싶은 마음도 들고 --> 사실 이게 제일 큽니다. 이런 문제를 일반 진료시간 내에 상의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괜히 이야기를 꺼내면 대화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에 비해 정답도 없는 문제를 들쑤시기만 할 것 같아 피하고 싶고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고

딱히 내가 대안을 제안할 수도 없고

우리 병원에서 이런 성문제를 전담하여 진료하는 전문 선생님이 계신 것도 아니고

이래저래 복잡한 생각에

그런 문제제기는 아예 하지 않습니다.

 

저도 여자이고

환자도 여자이다 보니

비교적 덜 쑥쓰럽게 말할 수 있기는 합니다만

우리 의식의 맥락 속에서는

시간에 쫒기는 진료시간에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는 어때야 한다는 기준이 있기도 하고

환자도 자기가 물어보고 상의해야 할 여러가지 문제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다보면

성과 관련된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질문을 하지 못합니다.

못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하고 그렇죠.

환자 입장에서는 때론 절실하고 때론 삶의 맥락에서 훨씬 중요한 이슈가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저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부터 미국의 샌 안토니오라는 도시에서 유방암 학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학회는 매년 12월 둘째주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정기적으로 열리는 세계적인 규모의 학회이고 모든 주제가 유방암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단일 질환으로 만명이 넘는 연구자들이 모이는, 유방암 분야에서 손꼽히는 세계적인 학회 중의 하나입니다.

 

오늘은 첫날로 특정 주제에 대한 강의를 중심으로 Education session이 열렸습니다.

두번째 session이 유방암 치료 후 환자들이 겪는 성의 문제, 인지장애의 문제, 이차 유방암 발생등 생존 이후의 이슈들에 대해 다루고 있네요.

 

session의 좌장은 미국 핑크리본연합회 수잔이 맡았는데, 그녀 또한 유방암 치료 후 생존자이며 이후 관련된 활동을 하는 분인 것 같습니다. 수잔이 전이성 유방암을 진단받은 것은 18년전으로, 당시 그녀의 아이는 두살도 채 안된 갓난아이였고 척추로 전이된 유방암을 진단받은 후 당시 시도되었던 임상연구인 자가동종모세포 이식치료까지 시도하였다고 합니다. 18년이 지났으니 이제 괜찮은게 아닐까 제 마음으로는 그런 생각을 해보지만, 사회를 보는 수잔이 짤막하게 자기 소개를 하는데 그 목소리에 눈물이 묻어나는게 느껴집니다.

 

첫 주제는 유방암 치료 후 발생하는 성의 문제였습니다.

수술,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 그 자체가 독성이 강하고 몸에 충격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성기능에 장애가 생기고 그 자체로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젠이 감소하여 1년 이상 에스트로젠 감소로 인한 후유증을 경험하게 됩니다또한 5년간 추가적인 항호르몬제를 복용하는 경우에는 재발 방지를 위해 지속적으로 에스트로젠 생성을 억제해야 하기 때문에 환자는 꽤 오랜 기간 폐경증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수면장애

우울증

전신통

안면 홍조

--> 이런 증상들이 별거 아닌거 같지만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을 정도로 일상을 교란시킵니다.

질 위축증

성기증 장애

--> 이런 사항들은 여성 호르몬이 감소하면 발생하는 생리적 변화 과정입니다.

 

생리적 변화라고는 하지만

사실 환자들에게는 큰 문제입니다.

 

유방암 진단 후 1, 가족들은 이제 서서히 무관심해져 갑니다힘들다는 치료도 다 끝났고 머리카락도 다시 나는 등 외견상 문제가 없어보입니다.. 환자도 예전처럼, 예전보다 더 의욕적으로 생활에 복귀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항암치료의 후유증도 남아있고

폐경기 증상도 시시때때로 찾아옵니다.

환자들의 60%가 질 위축증을 경험하고 50%에서 성기능 장애를 경험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실재 부부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직 젊은 환자, 그리고 아직 여전히 젊은 남편, 아내의 성교 후 통증을 잘 모릅니다부부관계를 힘들어하는 부인에게서  멀어져 바람을 피우는 남편도 꽤 많습니다. 부인은 그 사실을 알고도 남편을 원망하지 못합니다. 원인 제공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남편의 외도를 알고도 자신이 더 적극적으로 변화하지 못하는 자기 탓을 합니다.

 

몸도 많이  흉칙해졌습니다. 전전제술을 한 경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부분전제술을 했어도 몸의 외형이 많이 변했습니다. 환자 스스로 자신의 몸에 점점 자신이 없어져 남들 앞에 자기 몸을 내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 더 이상 환자가 아니건만

여전히 몸과 마음이 불완전한 상태, 불안한 상태입니다.

 

이런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진료하는 성 의학(Sexual Medicine)이라는 분야도 있습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낯선 분야인 것 같습니다.

 

오늘 강의의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일단 국소적으로 바를 수 있는 에스트로젠 크림 등은 전신적으로 흡수되어 유방암에 영향을 미칠 영향을 높지 않으므로 현실적으로 사용해도 무방합니다.

다만 철저하게 사용 후 부작용을 체크하려면 체내 에스트로젠 농도를 체크해보면서 사용량을 결정할 수도 있는데, 이들 연구 대부분이 서양에서 폐경후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나온 수치들이라, 우리나라처럼 폐경 전 여성이 대부분인 경우에는 지침이 다를 수 있겠습니다.

우리에겐 우리의 지침과 치료 원칙, 해결방법을 찾는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미국에는 질 위축증을 치료하고 보조하는 약제들의 종류가 다양해서

약제별로 여러가지 요인들을 중심으로 비교해서 분석해주고 있는데 

어떤 경우에는 어떤 제재가 좋고 어떤 경우에는 다른 제재를 쓰는게 좋고

그런 분석이 많았습니다

솔직한 고백으로 저는 우리나라에서 가용한 약제들에는 뭐가 있는지도 잘 모릅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그것부터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실재 치료기간에도

집중적인 치료가 끝난 기간에도

환자들이 치료 이후의 삶으로 복귀하려면

많은 의학적 지원과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약제보다 성기능 장애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배우자의 관심과 배려라고 하네요.

당연한 말이겠죠.

 

환자가 이런 문제로 힘들어하면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 살고

생존자로서의 삶을

힘들게 보내지 않도록 지원하는

공식적인 네트워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