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ra 선생님과 기념 사진!
Debra 선생님은 존스 홉킨스 보건대학 교수님이시고 환자와 의사간의 의사소통에 관한 분야에서 권위자이신 분이다. 어제 서울대 병원에서 강연회가 열려 선생님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나는 영광스럽게도 개인적인 면담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조주희 선생님, 선생님과의 면담을 연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분야도
의사와 환자가 처음 만나 병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암과 같이 심각한 병이든
고혈압, 당뇨같이 무시무시하면서도 당장 죽지는 않는 그런 병이든
감기처럼 의사 약처방 없이 환자 스스로가 나아야 하는 병이든
그 순간의 communication은 매우 중요하다.
심지어 수술만 하면 나을 수 있는 병이라 하더라도, 그래서 communication 보다는 외과의사의 숙련된 솜씨가 예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 하더라도 communication 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한두번의 면담으로 끝나지 않고 병의 궤적과 함께, 그리고 때로는 다른 병의 등장으로 인해 지속적인 관계가 되기 쉽고, 또 그렇게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환자 입장에서 보면 여러 모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Debra 선생님의 강의는 선생님의 오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학문적으로 심층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 적용가능한 시사점을 많이 던져주셨다. 내가 예전에 사회학과 대학원을 다니며 고민했던 그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고, 사회 많은 분야에서 자유롭고 창의적인 의사소통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특히 의료현장에서 의사-환자 사이의 의사소통이 치료적 관점에서 얼마나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아마도 내가 외과도 아니고, 내과 중에서도 어떤 특정한 술기를 시행하는 파트가 아니라,
100% 정답이 없는 치료 약제로 항암제를 처방하는 종양내과 의사이기 때문에 더욱 와닿는게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한번의 항암제 처방만으로도 머리카락이 온통 다 빠져버리고, 혹독한 부작용으로 고생하는 환자를 일상적으로 만나 진료하기 때문에
내가 의사로서 수행해야 하는 중요한 행위중의 하나가 끊임없이 환자의 증상을 묻고 회복을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는게 아닐까?
진료 시간에 환자와 이야기 나눌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전날 외래를 예습하면서 CT 사진도 미리 보고
EMR 기록도 예상해서 다 써놓고 (실재 다음날 진료할 때는 지난주번에 비해 달라진거, 환자가 새롭게 얘기한 것만 빨리 추가하면 되게 미리 다 써놓는다)
약을 바꿀 거면 어떤 약으로 바꾸는게 좋을지도 미리 정해 놓는다.
짧은 시간 동안 환자와 충분히 대화를 나누지 못할 수도 있고, 마음 속 깊은 고민을 털어 놓기 어려울 때도 있고, 미처 외래에서 생각이 안나서 얘기하지 못한 부분을 상의할 수 있는 시공간이 필요한 것 같아 블로그도 만들었다.
내가 당위감을 부여하며 하는 일이지만
솔직히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이런 나의 행위에 나 조차 지칠 때가 있다.
한명의 암환자를 진료하는데 내가 평균적으로 쓰는 시간은 5-7분.
환자마다 차이는 있어
1-2분의 대화만으로도
괜찮으시죠? 잘 맞고 가세요! 그렇게 진료를 해도 서로가 썰렁하지 않는 관계도 있고
아무리 시간을 많이 할애해서 설명을 해도 오해가 잘 풀리지 않는 때도 있고
많은 시간을 앞에 두고도 한 없이 눈물만 흘리며 시간을 보낼 때도 있다.
Debra 선생님의 연구 결과는 우리 대한민국 현실에서 진행된 것이 아니다. 초진 환자 한명을 30분 넘게 진료하고 충분한 시간을 쓸 수 있는 미국 병원에서 의사와 환자 사이의 commuinicaton 을 분석한 연구가 주를 이루었다.
그것이 나에게, 우리 현실에 어떤 함의를 줄 것인가?
좋은 말씀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 현실은 아주 다르다는 것, 개별 의사가 환자 한명과 communication을 잘 하기위해 노력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손쉬운 대안이 없다는 것을 항변하고도 싶었다. 그래서 마련된 개인 면담 시간에 그런 질문을 드렸다.
Debra 선생님은 5분 진료라 하더라도 맥락에 따라 얼마든지 그 시간이 효율적이고 보람되게 사용될 수 있다는 말씀을 하신다. 선생님께서 진행한 쿠바에서의 연구를 예로 들면서 쿠바의 일차의료기관에서 환자 한명에 평균적으로 할애하는 진료시간이 3-4분이었는데, 환자와의 효과적인 communicaton이 중요하다는 주제로 4-5시간의 교육을 받기 전과 받고 난 후의 의사들의 진료 패턴을 비교하셨다고 한다.
별거 아닌 교육, 특별한 내용이 담긴 것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의사들에게 환자와의 communication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하며, 현실적인 tip 은 어떤 것이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잠깐의 교육만으로도 의사들의 의사소통 기술은 향상되고 환자 만족도가 증가하는 연구결과를 낼 수 있었다고 한다.
또 28명의 소아과 의사의 외래 진료를 비디오로 촬영하여 분석한 연구를 소개해 주셨는데
소위 효과적인 환자와의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환자가 어떤 정보를 원하는지 알고 그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 보다 긍정적인 방식의 대화를 유도하는 것, 사회성이 필요하다는 것, 환자와 파트너쉽을 형성하려는 노력을 보이는 대화여야 한다는 것, 환자의 의견을 묻는 시간을 얼마나 할애할 것이냐 등 항목을 나누어
의사의 진료시간과 대화 내용을 녹화하고
특정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의사의 언어적, 비언어적 행위를 코딩하고 분석한 연구였다.
자신의 비디오를 보고 나서 진료를 했을 때
그 패턴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알 수 있는 연구였다.
자신의 진료를 비디오로 녹화하여 그 담론에 대해 분석해보는 것,
나에게도 필요한 과정일지 모르겠다.
나 뿐만 아니라
아직 의사가 안된 의과대학 학생,
이제 갖 의사로서의 활동이 본격화되는, 그래서 환자와 적극적으로 접촉하기 시작하는 레지던트,
자신의 이름으로 외래를 개설하여 전문의 진료를 시작하는 펠로우,
이론과 실재의 간극을 경험하면서 외래의 엄청난 로딩과 순발력이 필요한 주니어 스탶,
이미 자신만의 진료 패턴과 세계, 자신을 따르는 환자군이 형성된 시니어 스탶,
의사 생활을 지속하는 그 어느 시점에서도 자기 진료 패턴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재평가 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Debra 선생님은 의사의 성별, 환자의 성별에 따라 진료 패턴이 달라지고 communication 형태도 다르게 나타나는 경향에 대해서도 연구결과를 말씀해 주셨다. 여자 의사인 내가 여자 환자인 유방암 환자를 보며 느꼈던 여러 가지 이벤트와 이슈에 대해 잘 정리해주셔서 내가 모호하게 느끼고 있던 바를 마치 옆에서 지켜보셨던 것처럼 말씀해 주셔서 아주 흥미로웠다.
특히 선생님은 내가 환자들로부터 받는 선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순간적으로 분석해 주셨는데,
환자들이 나에게 도시락과 먹을 것을 선물해 주는 행위는
의사인 내가 환자인 자신과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가까운 관계라고 느끼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고
같이 의사결정을 하는 평행적인 관계라는 것에 만족하고 있고
환자도 의사를 위로하고 돌봐주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의 일환일 수 있다고 하셨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환자들의 마음을 100% 까지는 아니어도
나도 많이 읽고 있다.
새벽 기차를 타고 멀리서 항암치료 받으려고 오시면서도
손수 빚은 만두를 쪄가지고 와서 식어서 맛 없을지도 모르지만 점심식사로 드시라는 그 성의를 내가 어떻게 모를 수 있겠는가.
선생님과 함께 한 대담을 통해
내가 그동안 어렴풋이 나마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그리고 그 중요성에 대해 많이 망각하였던 부분에 대해 다시 한번 성찰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더 깊숙히 고민하지 못했던 의사환자 관계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의료의 본질을 이루는 것에는
지식의 발전도 있고, 뭔가 혁명적인 발견과 발명도 있겠지만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한 고전적인 주제가
바로 의사-환자 관계이고
그 관계를 이어주는 효과적인 communication 이란 단지 skill 이 아니라 철학적 관점이라는 잊고 있던 명제를 떠올리는 시간이었다.
Debra 선생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가르침,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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