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보며 고민한만큼 배워가는 학회
SABCS (San Antonio Breast Cancer Symposium) 는 유방암을 진료, 연구하는 의사, 인접 분야의 연구자, 간호사 등 관련 인력 1만명이 넘게 참여하는 학회다. 가장 큰 학회가 미국영상의학과학회 (ARA, American society of Radiology Association)로 매년 5만명 이상, 그 다음으로 큰 학회가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American Society of Clinical Oncology)로 3만명 이상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유방암’이라는 단일질환 학회에 1만명 이상이 참여하는 SABCS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유방암 학회라고 볼 수 있겠다.
넓디 넓은 ASCO 학회장에서 홍수처럼 쏟아지는 강의와 발표를 쫓아다니며 허덕거리는 것에 비해, 큰 강의실 4개에서 오밀 조밀 열리는 SABCS은 세션을 선택해서 듣고 공부하기에 훨씬 안정감이 있다. 모든 발표의 주제가 유방암이기 때문에 내가 평소에 환자를 보며 궁금해 했던 것, 공부했던 내용들이 종합되는 자리다.
원래 SABCS은 34년전 San Antonio에서 일하는 의사 7명이 모여 시작한 작은 공부모임이었다고 한다. 내과, 외과, 병리과, 영상의학과 등 유방암 진료와 관련있는 의사들이 모여 학제간 경계를 넘어 유방암이라는 질환에 대해 종합적인 시각으로 진료,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며 서로간의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 이 학회의 창립정신이었다. 그 취지를 살려 등록비도 다른 학회에 비해 싸고 (심지어 대학원생은 등록비가 무료이며), 학회 기간 내내 음료수, 커피, 간단한 식사거리가 계속 제공된다. 공부하는데 그만큼은 지원해주겠다는 창립정신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학회장 내에서 물 한잔 마시기 어려운 ASCO랑은 매우 대조되는 느낌이다.
Big applause!
이번 학회에서 큰 박수를 받은 연구는 단연코 CLEOPATRA다. 이 연구는 HER2 양성인 전이성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표준요법인 Taxane 과 Trastuzumab 에 HER2 와 HER3의 dimerization 을 막는 Pertuzumab 3상 연구였고 1차 연구목표인 질병진행기간이 표준요법에 비해 6개월 이상 연장되는 놀라운 효과를 보였으며 2차 연구목표인 전체 생존기간에 대한 중간분석에서도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생존기간을 연장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추가적인 독성도 없었다. 생존그래프가 화면에 비춰지자 강의를 듣던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보냈다. 보통 수백, 수천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전이성 암의 임상연구에서 질병의 진행기간을 2개월 이상 늘리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6개월 이상 연장은 치료의 획을 긋는, 일반적인 의사의 처방패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우수한 연구 결과이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현재 Pertuzumab을 수술 후 환자에게 투여하는 임상연구도 이제 막 시작되었다.
대규모 임상연구에서 입증된 약을 우리 현실에 적용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지금 표준 약제로 쓰고 있는 Trastuzumab의 적용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약제를 보험으로 인정받기까지, 혹은 보험이 아니라 비급여라도 처방이 허용되기까지 수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그 수년의 시간 동안 우리나라 환자에게는 약을 처방할 수 없다. 보험으로 그러한 기준을 승인하기 전에 이런 약제를 처방하는 것은 불법이며, 고소 대상이 된다. CLEOPATRA 임상연구에 가장 많은 환자를 등록한 기관 10곳 중에 3곳이 우리나라 기관이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매일 환자를 진료하는 내 머리 구조는 약제의 우수성과 효능이 아니라, 보험 기준에 맞추어 구조화된다. 물론 보험이라는 것은 전체 의료비용 증가가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 국가의 경제 규모를 고려하여 기준이 제정될 수 밖에 없다. 비용-효과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그럴싸한 약이 하나 나왔다고 당장 쓰게 해달라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의학적으로 충분한 의미가 있고, 생존율 향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약이라면 보다 적극적으로 보험 기준을 재조정하고 현실적으로 처방이 가능한 구조의 유연성을 보여야 한다. 소소한 감기약 비용을 낮추어 국민의 환심을 사는 것 보다는, 중요하고 의미있는 약들이 보험 구조 내에서 커버되고 보다 많은 환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정책적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아직도 많이 경직되어 있다.
나를 사로잡은 강의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들은 강의는 Eric Winer의 Plenary session. 그는 Hormone receptor 양성 그룹의 다양성 (heterogeneity), late recur, hormone resistance의 다양한 메커니즘에 대한 강의하였다, 내가 평소에 환자를 보면서 느꼈던 궁금했던 점, 치료가 지지부진해 답답했던 마음, 도대체 이렇게 치료해도 누구는 이러한 치료의 이득을 얻지 못하는가, 진료실의 현실적인 고민을 이론적으로 잘 설명해주었다.
그 다음으로 인상적인 강의는 O’Shauqhnessy 구연발표. 전이성 삼중음성 유방암 환자에서 MAPK, PI3K/AKT pathway에 대한 Whole genome sequencing으로 refractory triple negative breast cancer 환자 26명의 유전자를 분석하여 환자별로 유전자 변이에 따라 target therapy를 한 결과를 발표하였다. 표준치료에 실패한 그들, TNBC가 refractory 해지기 시작하면 얼마나 대책없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바, 그들의 연구결과는 아주 드라마틱하였다. 소위 가이드라인에 맞게 표준치료를 하지만 나빠지기만 하던 나의 환자들을 보며 느꼈던 무기력감이 떠오른다. 내가 그렇게도 외면하고 싶었던 DNA analysis에 나도 도전해야 하는 걸까?
호르몬 수용체 양성인 전이성 유방암 환자에서 항호르몬 치료 단독보다 Everolimus를 병용투여했을 때 질병 진행기간을 연장했다는 BOLERO 2, Bisphosphonate의 anti-tumor effect에 초점을 맞춘 여러 연구들 –폐경전 여성으로 대상으로 ABCSG-12의 long term follow up data, 폐경 후 여성에서 Estrogen 발현 정도가 낮은 경우 Zolendronic acid가 survival outcome에 도움이 된다는 ZO-FAST, 폐경 후 여성에서 bisphosphonate가 종양의 성장을 억제하는데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인 NSABP B-34 재분석, 비슷한 형태로 독일그룹에서 Ibandronate로 진행한 GAIN study-의 발표가 눈에 띈다. 전이성 유방암에서 1st line hormone therapy로 anastrozole 단독보다는 fulvestrant를 병행한 dual blockade 그룹이 질병진행기간을 연장시켰다는 SWOG 0226 study는 2009년 FACT 스터디와 결과가 상충되어 아직까지 확고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 외에도 이번 SABCS 2011에는 좋은 연구결과, 공부해 볼만한 주제가 많이 발표되었다. 발표를 들으며 끄적거렸던 메모도 지금에 와서 보니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유방암 분과에서 2월에 준비하는 SABCS 2011 Review conference에 참석하시면 되겠다.
학회를 내 것으로 만들려면
아직 이런 국제 학회에 참석해서 발표와 강의를 듣는다고 해도 솔직히 내 머리에 많은 것이 남아있지는 않다. 영어 학회라는 것도 한 몫 하겠지만 아직 유방암 분야의 초심자이기 때문에 고민의 정도가 얕아서 그런 것 같다. “나: 작년에는 5% 정도 이해한 것 같은데, 올해는 10%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임영혁 선생님 : 앗, 저는 3% 밖에 이해못했는데 대단하세요.” 선생님은 이렇게 농담으로 날 위로해 주셨다. 내년 한해 좀더 고민하면 다음 학회에서는 더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겠지? 학회장에서 SABCS 2010 Best questioner로 상을 받은 뉴욕의 private physician Dr Vogl, NIH의 breast part Head인 Jo Anne, 삶의 질 연구로 유명한 UCLA의 Patricia Ganz가 모여있길래 가서 인사하고 사진한장 찍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년에 만나자고 했다. 나도 내년에는 좋은 질문 하나 해야겠다.
잠깐 맛집 순례
1. Shilos
학회장 앞에 로터리가 있는데 그 한쪽 코너에 있는 아침 식당이다. 1917년에 문을 열어 미국 전역에 체인점처럼 흩어져 있는 식당이다. 일단 맛이 있다. 아침 식사라서 별로 비싸지 않고 맛도 해비하지 않다.
매일 아침 가서 맛있고 담백한 커피를 마시면서 하루는 팬케익-팬케익 종류가 다양하고 그에 따른 시럽도 다양하다-, 하루는 토스트, 하루는 세트메뉴 그렇게 먹어봤는데 다 만족. 아침 7시에 문을 연다. 문 두드려서 점원 푸쉬에서 문 열어달라고 하고 아침 먹고 학회 갔다. 학회장에도 가벼운 아침거리라 제공되지만 정식으로 아침을 먹고 하루를 시작하니, 몸과 정신이 개운해서 강의들을 때 집중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2. Acenar 식당
학회장에서 걸어서 15분 정도에 위치한 Houston street에 있는 발렌시아 호텔 바로 옆에 있는 멕시칸 식당. 정통 멕시칸 식당으로 위치상 학회를 찾은 외부인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멕시칸 음식은 향이 다소 강한데, 이곳 음식은 그런 향을 조금 약하게 하고, 먹기 쉽게 변형하였다. 멕시칸 식당에 가면 식사가 나오기 전에 나오는 나초, 그리고 살사 소스도 맛있고, 음식 나올 때마다 따라 나오는 아보카도 소스가 진짜 맛있어서 모든 음식을 아보카도 소스에 찍어먹어도 좋다. 그냥 종류별로 이것저것 시켜 먹어봤는데 다 괜찮다. 내가 샌안토니오에서 마셔본 마가리따 중에 이집 마가리따가 제일 맛이 있었다.
3. 리버 워크 주위의 Tax-Mex 식당들
텍사스 음식과 멕시코 음식을 fusion 식으로 만든 음식을 Tex-Mex라고 하는데 학회장 앞에서 가장 눈에 띄는 Casa Rio 라는 식당이 외지인들이 가장 접근하기 좋지만, 여기 음식은 생각보다 별로. 각종 음식들이 지글지글 뎁혀져서 나와야 하는데, 그냥 맨 접시에 식은 채로 나와서 제맛을 못 낸다. 난 작년에 아무것도 모르고 호텔에서 젤 유명한데 어딘가요 해서 이 집을 가게 되었는데 실망이었다. 강가를 따라 걸으면 비슷한 음식점이 많은데 RioRio Cantina라는 곳은 따뜻하게 튀겨져서 나온 나초가 맛있다. 이집 퀘사디아 괜찮다. Tex Mex는 다 그만그만 하다. 한국 관광지에 가면 있는 ** 가든하고 비슷한 형국이다.
4. River Walk 중심가에 있는 이탈리아 국수집
(가게 이름이 생각안남, 옆가게 이름은 Cefa Ole 텍스멕스 가게인데... 학회장 앞 맥도날드 가게에서 시작하는 River Walk으로 내려가면 바로 있음)
이집 국수 양 완전 많고 전체적으로 아무거나 시켜도 괜찮다. 세명이 가서, 이 집에서 가장 popular 한게 뭐냐고 물어봐서 세가지 국수를 먹었는데, 다 맛있다. 가면 레드와인을 한잔 마시고 그 다음에 새우나 닭 그런게 들어있는 스파게티를 먹는다. 멕시칸 푸드에 질리면 한번 가볼만 하다.
5. 못 가봤지만 가보려고 했던 곳
미국식 Rib 요리를 맛 볼 수 있는 County Line. 여기도 미국 식당 체인점이다. 알라모 산책길에서 바로 보이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다. Cadillac이라는 걸 먹어보려고 했지만 불발. 이집은 음식을 엄청 많이 주는 것으로 유명해 4명이 가면 3인분만 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가보지 못했으므로 다음 기회를 노려야지. 알라모 산책가에 있는 즉석 햄버거 집 Fuddruckers. 역시 미국과 북아메리카 일대에 널리 알려진 패스트푸드점이다. 여기는 지글지글 고기를 익히자마자 빵에 끼워서 즉석 햄버거를 만들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학회 기간 내내 변비가 심해서 햄버거는 먹지 않기로 했다. 이것도 다음 기회에.
San Antonio Favorite
마가리따나 모히또 같은 달달한 술
짭짤한 나초와 새콤한 살사소스
난 그게 제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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